신음하는 모든 피조물을 대신해 인류에게 보내는 편지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5-07-01 20:19:19    조회 : 304회    댓글: 0

식별을 위한 성찰 - 교황 새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 1장을 중심으로

신음하는 모든 피조물을 대신해 인류에게 보내는 편지

 

“우리는 아무도 제기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 대답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면서도 “다른 사람의 삶에 참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아보는 폭넓고 심오한 감수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복음의 기쁨」 155항)고 호소한 교황이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다녀간 프란치스코 교종이다. 그는 자신의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의 강론 부분에서 이같이 밝혔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특히 ‘사목자’들에게 한 호소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보낸 편지

프란치스코 교종이 6월 18일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를 발표했다. 우리는 ‘회칙’이라고 부르지만, 모든 사람이 돌려가면서 읽으라고 보낸 편지(encyclical letter)라 할 수 있다. 그날 저녁 어느 뉴스 보도는 교종의 이 회칙을 두고 미국의 어느 정당이 즉각 반발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놓고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교종의 회칙이 길어서 읽는 데 힘이 들기는 하겠지만,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다면 평화신문 독자들도 꼭 읽어보면 좋겠다. 왜 그 회칙이 그렇게 즉각적으로 반발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더 바란다면, 우리의 현실, 우리 교회는 어떤 태도를 취할까 자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교종은 오늘의 우리가 “자기 파괴적 악행을 키운다”고 본다. 어떻게? “(우리가 키우는) 그 악행들을 보려 하지 않고, 그 악행들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며, 중요한 결정을 미루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가장함으로써”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교종은 이를 한 마디로 “회피”의 면허증이라고 부르면서, 이 면허증으로 오늘의 우리는 “지금의 생활 방식과 생산과 소비 모델을 지속”(「찬미를 받으소서」 59항)시키려 한다고 지적한다.


신음하는 대지

프란치스코 교종의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는 절규에 대한 응답이다. 그것도 ‘사람들의 삶에 실제 영향을 주는’ ‘폭력’ 때문에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고 하는 응답이다. 교종은 편지에서 우리의 누이와 어머니가 울부짖으며 우리에게 탄원하고 있다고 알린다. “이 누이가 지금 우리가 그녀에게 입힌 상처 때문에 울부짖습니다.…우리는 그녀에게 [그것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있습니다”(「찬미를 받으소서」 2항). 누이란 누구인가? 나와 피를 나눈 혈육이 아닌가? 그 누이는 또 누군가의 어머니이다. 그 어머니가 또 자식들이 입힌 상처 때문에 고통스럽게 울부짖는다. 이 누이이며 어머니는 바로 ‘대지’이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교종의 편지가 ‘환경’에 관한 것이라 대뜸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럼 자연을 보호해야지!” 할 수도 있겠으나, 그분은 그렇게 대충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지금 “환경의 악화와 인간의 타락과 윤리의 퇴보”(「찬미를 받으소서」 56항)가 긴밀히 결부돼 “끔찍한 불의”(「찬미를 받으소서」 36항)를 저지르고 있지만, 대다수 우리는 “회피”의 면허증을 가지고 그 불의에 침묵한다. 그러는 사이에 누이이며 어머니인 대지는 신음하고, 하늘과 땅과 물에서 자신의 존재로서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무수한 피조물의 찬미 노랫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고, 무수한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들은 배제되고 버려져 존재하지 않게 된다(「복음의 기쁨」 53항 참조).


구조적 원인은 어디에서?

교종은 「찬미를 받으소서」 회칙 제1장에서 ‘우리의 공동 가정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고 묻는다. 오염과 기후 변화, 물 부족, 생물 다양성 상실, 인간 삶의 질 저하와 사회의 붕괴, 지구의 불평등 문제들에 대한 검토를 제안한다. 교종은 이 문제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이를 “더 이상 카펫 아래에 쓸어 넣을 수 없다”고 언명한다. 그리고 이 검토가 우리의 “고통스러운 자각” “세상의 고통을 인격적 고통으로 전환시키기”, 그리고 “행동의 길 찾기”를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찬미를 받으소서」 18항).

교종은 이어 지구가 앓고 있는 ‘병의 증세’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소개하면서, 문제를 야기한 배경 곧 구조적 원인을 밝힌다. 그러면서도 그에 따르는 ‘불편함’이나 ‘비난’을 회피하지 않는다. 좀 지루하지만 회칙이 언급하는 내용을 옮긴다.

△ 진보와 인간 능력에 대한 비이성적 신뢰(19항) △기술과 기업 이익의 결탁(20항) △ 내다버리는 문화와 자원 보존 능력을 결여한 산업 시스템(22항) △ 환경 문제를 악화시키는 악순환(24항) △ 환경 악화로 야기된 고통에 대한 광범위한 무관심과 동료에 대한 책임감 상실(25항) △ 일부 더 많은 자원과 사회적 정치적 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의 이기적 관심(26항) △ 물 자원을 사유화하여 시장 규칙에 종속된 상품으로 만들려는 경향(30항) △ 거대 다국적 기업의 물 관리 시도(31항) △ 경제와 무역과 산업에의 근시안적 접근(32항) △ 기업의 이익과 소비에 기여하는, 악순환을 가져오는 인간의 자연 개입(34항) △ 거대한 경제 세력, 초국적 기업들의 경제적 이익(38항) △ 환경 파괴에 영향을 미치는 현재의 발전 모델과 내다버리는 문화(43항) △ 지난 200년 간 성장이 가져다준 부정적 측면들(46항) △ 가난한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지금의 분배 모델을 합법화하려는 시도(50항) △ 구조적으로 부당한 거래 및 소유 시스템 (52항) △ 정치뿐 아니라 자유와 정의 문제까지도 장악하는, 기술-경제 패러다임에 토대를 둔 새로운 권력 구조들(53항) △ 경제와 기술의 결탁 그리고 이에 대한 나약한 정치적 대응(54항) △ 투기와 금융소득을 우선하는 경제 권력(56항) △ 충돌에 대처하려는 정치적 노력에 강하게 저항하는 막강한 금융 세력(57항).

교종은 이렇게 기득권 세력이 거북해 하고 불편해 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왜?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 예수님의 가르침, 그리고 성령의 인도에 따르는 교회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의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종은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를 통해서 약한 존재, 약한 사회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윤이나 무분별한 착취에 휘둘리는 또 다른 힘없고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존재들, 피조물 전체”(「복음의 기쁨」 215항)의 신음에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신문, 2015년 6월 28일,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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