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의 해설 - 초상집 상주의 얼굴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4-12-18 17:45:54    조회 : 351회    댓글: 0

(3) 초상집 상주의 얼굴

-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사람의 얼굴 역시 기쁨으로 넘쳐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울하고 슬픈 표정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은 초상집 상주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 결코 안 됩니다”(10항).

교황 권고 가운데 제일 처음으로 우리를 사로잡는 표현이다. 부활 시기 없이 사순 시기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그리스도인도 있다고 했다. 복음의 본질은 기쁨을 동반하고 있고, 이웃에게 그 기쁨을 나누는 것이 그것의 속성인데, 우울하고 슬픈 표정으로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느냐는 완곡한 표현이다.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은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교황이 지니고 있는 생각을 일상의 표현으로 옮긴 것이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선교이다. 세상 끝까지 하느님의 구원 소식을 전하여 믿는 이들은 누구나 구원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명을 받은 자들이 초상집 상주의 표정으로 우울하게 살아간다면, 그 복음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작용하겠느냐는 말씀이다. 억지로 사람을 성당으로 끌고 와 신앙인으로 만들 수 없다. 교황은 복음 자체가 지닌 매력을 통해 사람들이 교회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쁜 소식 전하는 사람의 얼굴

「복음의 기쁨」 국제 심포지엄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발달 장애인들의 국제 공동체 ‘라르슈’(L’Arche)를 만든 장 바니에(Jean Vanier)가 첫 발제자로 나서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어느날 브라질의 장애인 보호 시설을 방문했는데 40개나 되는 침실의 아이들 가운데 누구도 울지 않았다고 했다. 모두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울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고 했다.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상태라면 우울증에 걸린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의 많은 사람이 이런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적 우울증 상태인 것이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세상의 한가운데서, 그리고 변두리까지 복음의 기쁨을 선포해야 할 사명을 지닌 사람들이 우리 신앙인들이다. 우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의 울음과 웃음을 들어주고,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장 바니에는 마법의 마지막 말은 이것이라고 했다. “당신은 내게 필요합니다.” 존재 가치를 일깨워 주는 말이다. 상대에게 위로와 위안이 되도록 만든 사탕발림의 언어가 아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깨닫고 고백하는 말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성이 진실을 바탕으로 이 수준까지 올라와야 한다. 누구나 존엄하며 구원으로 초대되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복음은 이렇게 누구에게나 선포되어야 할 복된 소식이다. 기쁨 덩어리인 것이다. 그런데 복음 선포하는 사람이 초상집 상주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말이 되겠는가.


마음이 식은 이들을 도와야

극심한 소비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탐욕과 피상적인 쾌락에 빠져 지내는 신앙인들이 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 수 없는 상태이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그분 사랑의 고요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선행을 하고자 하는 열정도 식은 사람들입니다. 많은 이가 이러한 위험에 빠져 진정한 삶을 잃어버리고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찬 사람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2항).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냉담자라고 부른다. 이런 그리스도인에게 교황은 기도하기를 강권하였다.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어디에 있든 바로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그분과 만나려는 마음, 날마다 끊임없이 그분을 찾으려는 열린 마음을 가지도록 권고합니다. 그 누구도 이러한 초대가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시는 기쁨에 배제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3항).

냉담자에게 이 말씀이 감동적으로 작용하여 회개를 불러일으키면 좋겠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적극적 도우미가 필요하다.


복음화, 새로운 표현 · 방법으로

교황은 참된 신앙인들의 적극적 도움을 요청하였다. 복음의 기쁨을 냉담자에서 회복시켜주기 위해 새로운 복음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에 했었던 방식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면 새로운 방법과 표현을 찾아야 한다.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원천으로 돌아가 복음 본연의 참신함을 되찾고자 노력할 때마다 새로운 길들이 드러나고, 창조적 방식들이 보이며, 또 다른 형태의 표현들과 더욱 설득력 있는 기호들과 오늘날의 세계에 새로운 의미를 갖는 어휘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모든 참다운 복음화 활동은 언제나 새로운 것입니다”(10항).

[평화신문, 2014년 12월 7일, 홍기선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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