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분노까지 기도로 바칩니다.

작성자 : admin    작성일시 : 작성일2014-04-28 07:05:58    조회 : 422회    댓글: 0


세월호 아픔을 함께- 기도 봉헌
 

절망과 분노까지 기도로 바칩니다


발행일 : 2014-04-27 [제2892호, 1면]

▲ 제발… 한국교회 안팎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기도가 이어지고 있다. 침몰 5일째인 20일 밤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들고 실종자들의 생환을 기원했다.
(연합뉴스)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을 위해서도, 버리지 못했던 희망을 위해서도, 그리고 남은 상처와 절망이 증오와 분노로 바뀌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서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고난을 이기는 지혜이고, 잘못을 뉘우치는 통회이고, 그것을 고치는 결단이며, 주님과 서로에게 위로를 받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귀한 줄 모르고, 인간의 생명과 품위를 업수이 여기는 무책임을 방관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정의와 함께 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치를 따져 책임을 물을 때에도, 기도는 필요합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청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위로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힘을 주시기를 청합니다. 결국, 사람이 온전히 의탁할 곳은 오직 그분뿐입니다.

기도 안에서 용서를 청합니다. 누구 하나 책임을 면할 수 없기에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함께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남 탓만 하기에는 우리들 각자의 방관과 조장의 잘못이 너무 큽니다.

기도 안에서 정의를 청합니다. 특별한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의 잘못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됩니다. 잘잘못을 따져 다시는 사람이 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나쁜 어른들의 잘못이 가져온 죄없는 아이들 죽음의 책임을 묻는 일은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기도 안에서, 좌절과 상처가 분노만으로 남아있지를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절망과 상처는 불신과 분노로 이어집니다. 주님과 함께 바치는 기도로써도 타오르는 분노가 사그라들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기도 안에서, 불신과 분노가 정의를 위한 단호한 결단으로 바뀔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아픔을 어찌 감히 헤아리겠습니까마는, 자식 둔 부모는 누구나 압니다. 자식을 앞세운 것이 어떤 것인지. 십자가 밑 성모님의 고통을 안 것도 사실 자식을 두고부터였습니다.

꿰매지지 않는 상처, 헤어나지 못할 절망, 불신의 늪에서 치솟는 분노는 오래 계속될 것이고, 어쩌면 평생 가슴 속에 품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더욱이 함께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간절한 기도 안에서, 비틀거리면서도 서로 부둥켜 안아 위로하며, 정의와 공정으로 불의와 무책임을 헤아려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도록 애써야 합니다.

성주간에 맞은 참담한 비극. 고통은 모두의 것이었습니다. 따사로운 햇살 조차 화살처럼 가슴에 꽃히던 부활대축일 오후, 울컥 붉어진 눈시울을 돌리다 옆사람도 눈가를 훔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금요일,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당신이 사랑하시던 사람들에게서 배신을 당하시고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하고 부르짖으십니다. 부활의 영광을 이미 아시지만 그 절망과 고통은 예수님 조차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도 앞바다에서 물 속에 갇힌 아이들 곁에서, “어찌하여 이들을 버리십니까?” 하고 부르짖으시며 함께 고통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는 희생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고통을 나눌 것입니다. 꼭 그렇게 할 것을 약속합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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