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착각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1-02-25 17:19:00    조회 : 147회    댓글: 0

[박종성 칼럼]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착각

박종성 논설위원


피자를 두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누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누가 칼을 쥐던 완벽하게 피자를 두 쪽으로 나눌 수는 없다. 보는 사람에 따라 피자의 크기가 다르다. 남의 떡이 크게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의론>을 쓴 철학자 존 롤스는 이런 방법을 제시했다. 칼을 쥔 사람이 피자를 자르고 어느 쪽 피자를 가질지 선택권을 상대방에게 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정의로운 방법이라고 했다.

박종성 논설위원

박종성 논설위원

그는 ‘정의로운 절차’를 정해두면 결과물은 정의롭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는 여러 원칙 가운데 하나로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유산이나 재산 등 우연히 얻은 덕을 가장 받지 못한 사람(최소 수혜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사회정의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일어난 일이다. 경기 성남의 한 노숙인 무료급식소에 벤츠를 탄 모녀가 도착해 노숙인들 사이에 도시락을 받기 위해 끼어들었다. 급식소를 운영하는 신부는 “도시락이 모자란다”고 했다. 하지만 모녀는 “공짜이니 자신도 가져갈 수 있다”며 버텼다. 모녀는 최소한의 혜택조차도 받지 못한 이들의 생명줄을 빼앗으려 한 것이다. 신부는 “모녀에게는 한 끼일지 모르나 노숙인 한 명에게는 마지막 식사일 수 있다”고 했다. 최대 수혜자들이 최소 수혜자들에 대해 가져야 할 도덕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공정과 정의를 말할 수가 있겠는가.

최근 재난지원금을 놓고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과 정치인 사이에 논란을 빚었다. 정치인은 특혜의혹을 제기했다. 아들이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재난지원금 신청서 가운데 하나인 피해사실 확인서에 단 4줄만 썼고, 당초 선정기준으로는 탈락했는데 중간에 대상자를 늘리면서 아들이 선정됐다는 것이다. 아들은 반박했다. 아들은 피해사실 확인서는 심의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심의를 담당한 서울문화재단은 신청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지원금 지급 대상자를 늘린 것이라고 했다.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해 특혜가 있었는지는 제쳐두자. 다만 아들이 재난지원금을 신청해 받은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웠는지 보자. 아들은 재난지원금이 코로나19 피해 예술인 지원 차원에서 ‘유능한 예술가들을 돕기 위한 것’이며 자신은 능력으로 지원금을 받았다고 했다.

아들은 자신의 주장대로 훌륭한 스펙을 갖추고 있다. 그는 미국 명문 디자인스쿨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수십 차례 국내외 전시회에 출품했고, 여러 차례의 수상 경력도 있다. 그의 학력과 경력만을 본다면 스펙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스스로도 ‘제 작품은 대통령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예전부터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번 더 생각해보자. 요즘 대학에서 장학금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주지 않는다. 상당한 학업적 성취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장학생 대상에서 제외된다. 왜 그럴까. 그건 그가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배경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안 여건이 좋아 하루종일 책과 씨름할 수 있는 경우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알바를 하며 주경야독을 해야 하는 경우를 동일한 출발선에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들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왔나. 그의 뛰어난 스펙에는 좋은 환경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이 근작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문제제기하는 부분이 바로 ‘능력 만능주의’다. 주변환경으로 인해 ‘우연히’ 좋은 능력을 가진 이들이 ‘본인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사회는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능력이 유일한 평가의 잣대는 아닌 것이다. 샌델은 ‘능력으로 비롯된 혜택을 온전히 누릴 자격이 있다는 판단은 실수이자 자만’이라고 했다.

아들은 지원금을 함께 작업했던 영세 예술가들에게 주었다고 했다. 자신이 챙긴 것은 없다고 했다. 그것이 전부인가. 물론 아들과 함께 일했던 예술가들에게는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더 절실히 지원을 필요로 했을 예술가들이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는 사실은 몰랐는가. 한국 사회의 주류라면 관심이 내 주변에서 그쳐선 곤란하다. 더 넓고 두텁게 배려와 공감 능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어려운 시기다. 피자가 식탁에 놓였다. 모두 배가 고프다. 유혹이 있더라도 아사 직전의 동료를 위해 포크를 내려놓은 것이 미덕이 아니겠는가. 대통령의 아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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