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만 가야 할 교회개혁의 길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9-09-11 16:18:21    조회 : 141회    댓글: 0

멀지만 가야 할 교회개혁의 길!


경동현 안드레아 /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1980년대 천주교사회운동은 교회쇄신과 사회복음화라는 두 개의 깃발을 세웠다. 그리고 40여년이 흘렀다. 사회복음화 측면에서는 교회사를 넘어 한국사에 길이 남을만한 발자취를 남겼으나, 교회쇄신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인듯하다. 걸음마 단계여서 문제가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것이 너무 어렵고 복잡하고, 힘겹다.
천주교개혁연대라는 이름으로 몇몇 평신도 단체 활동가와 신학자, 수도자가 모임을 시작한 것은 2017년 연말에 발표한 “종교개혁 500주년 한국종교개혁 선언”이 계기가 됐다. 발표 이후 선언문 작성에 참여했던 천주교 선언자들이 천주교 개혁을 과제로 후속 모임을 갖자고 한 것이다. 지난해 9월 1차 토론회 이후 지난 2월 23일 3차 토론회까지 3차례의 토론회가 열렸다. 1차 토론회 자리가 희망원 사태를 계기로 대구대교구 관내에서 전개된 반복음적, 비복음적 사실과 의혹에 대해 문제 제기한 언론사 기자와 시민단체 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였다면, 2차 토론회는 교회개혁의 해법은 무엇일지 대구교구의 사례를 중심으로 신자들의 지혜를 모으는 자리였다. 토론회마다 대구를 포함해 부산, 포항, 광주, 마산,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 관심있는 신자분들이 모였지만, 광야에서 외치는 고독한 외침과도 같았던 이유는 정작 대구교구의 책임있는 자리에 계신 분들은 개혁의 방향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천주교개혁연대가 꾸려지고 논의와 토론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개혁을 주장한 교구의 사제들은 정직, 대기와 같은 문책성 인사 발령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주도적 역할을 했던 평신도 한 분은 교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를 당했다. 교구의 이름으로 신자를 고소해 사회 법정에 서게 한 것은 한국 교회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당혹스러운 상황은 결국 무혐의로 결론이 났지만, 이에 대해 교구는 아직까지 아무런 답이 없다(‘임성무 대구 정평위 전 사무국장 무혐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9.01.07. 기사).

공공의 이익에 복무하는 교회 사업장에 문제가 생기면 교구를 불문하고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은 유사한듯하다. 믿고 맡긴 종교 기관이어서 완벽해야 한다는 도덕적 기준과 실제 사업장이 보여주는 모습 사이의 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조직들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신뢰에 금이 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다. 무엇보다 애초에 ‘교구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다 보니 그 과정에서 이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이들로부터 감정을 상하게 되고, 그 결과 이제는 본말이 바뀌어 진실은 간데없이 그런 일들에 괘씸한 생각만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제3차 토론회 마치고 참가자들과 찍은 사진. 2019.2.23]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교회 사업장 문제는 앞으로도 반복해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교구 운영 사업장이 수도회처럼 식별 과정을 거쳐 규모에서의 차별성이 아니라, 운영 방식을 어떻게 복음적으로 할 것인지 식별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이미 대형 사업장이 된 터라 이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교회 사업장 문제는 문제가 불거지는 과정에서부터 우리 사회 공론장의 주요 이슈로 부상해, 관계기관이나 시민단체의 대응으로 바로 연결되곤 한다. 반면에 교회 내부의 쇄신, 개혁 요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쇄신과 개혁의 주체의 문제를 논하지 않고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이유다.

이런 점에서 지난 2월 23일 열린 3차 토론회의 주제 “공동합의성에 따른 교회운영”은 개별적인 사안에서 벗어나 전반적 교회 운영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면서, ‘공동합의성’의 실현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공동합의성(Synodality)’ 개념은 멀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말한 ‘하느님 백성의 교회론’을, 가까이는 프란치스코 교종과 국제신학위원회가 최근 자주 언급하고 있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얼핏 들으면 현재 교회법의 틀(교구장 중심, 교황 수위설)은 건드리지 않은 채, 기존의 기구(교구사목평의회, 본당사목평의회)에 평신도의 참여를 더 늘리는 방식을 고민해보자는 뜻으로 보일 수 있다. 그래서 토론회 자리에서는 교회법 개정운동까지 가야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구조가 바뀌어도 의식이 따라주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는 의견이 좀 더 우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4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교종이 한국의 주교들과 만나 ‘한국교회는 부자교회가 되었고 번영의 신학을 추구한다는 점, 교회는 사교 모임으로 전락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불편한 곳이 되었다’는 지적에 한국교회는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일상을 바꾸는 실천이 없으면 교회 개혁에 왕도는 없는 셈이다. 그래서 복음적 가치를 중심에 놓고, 기존의 사목 관행에 질문할 줄 아는 평신도가 많아지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들의 교회운영 참여가 교회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공감대를 넓혀가야 한다. 공동합의성에 근거한 리더십 양성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3차 토론회는 많은 과제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3차 토론회에서 고무적이었던 것은 소수의 가톨릭청년들도 함께했다는 점인데, 교회개혁을 말하는 이들도 늘 같은 사람,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청년들의 참여로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토론회 주최측이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다.

이 글은 천주교인천교구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정의평화>135호 / 2019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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