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생태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 해설] 3. 서론과 1장 ③
세계적 환경 악화, 50년 전 ‘핵위기’와 비견… 새롭고 보편적인 연대 통해 ‘처방’ 모색해야
2015. 07. 12발행 [13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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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환경 악화, 50년 전 ‘핵위기’와 비견… 새롭고 보편적인 연대 통해 ‘처방’ 모색해야
대화하려면 먼저 서로 만나야 한다. 그리고 처지를 털어놓아야 한다. “사실들을 정직하게 바라보기”(61항)가 그것이다. 의사가 아픈 사람을 꼼꼼하게 봐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교종은 ‘사실들’과 함께 “지금 상황에 대한 생생한 분석”(17항)을 제시한다. “땅에서, 물에서, 공기에서 그리고 모든 형태의 생명에서 볼 수 있는 병의 증세들과 그 분석”(2항)을 말이다. 과학적으로나 일상의 경험으로 볼 수 있는 증세들은 ‘사실들’이다.
왜 그런 증세가 나타난 것일까?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처방’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회칙은 그 처방에서 양극단이 있다고 본다. “진보의 신화를 집요하게 붙잡고 있으면서, 생태 문제들은 어떠한 윤리적 고려들이나 근본적 변화 없이도, 그리고 단순히 새로운 과학기술을 적용하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이 그 하나다. 이는 ‘진보’가 만병통치약이라며 먹으라는 식이다.
“사람들과 사람들의 모든 개입은 이 행성에 위협일 뿐이며, 생태 시스템을 위태롭게 한다. 따라서 이 행성 위에 사는 사람의 수를 줄여야 하고, 모든 형태의 개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른 극단이다(60항). 이는 ‘삶’이 곧 ‘죄’라는 식이다. 물론 “오염과 타락을 보여주는 몇몇 분명한 표지를 멀찌감치 떨어져서 피상적으로 보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보지 않는” ‘태연한 회피’, ‘문제의 부정’, ‘무관심’도 있다(14, 59항 참조). 양극단도, 무관심도, 병을 치료해 증세를 없애는 길이 아님은 분명하다.
왜 ‘새로운’ 대화인가? 그 이유를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해보았다. 우선, 인류는 ‘새로운 사태’를 맞았다. 인류는 “여러 면에서 인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불균형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다(17,18항). 이 ‘세계적 환경의 악화’는 “50여 년 전 ‘핵위기’에 임하여 비틀거렸을 때”(3항)의 상황과 견줄 만하다.
다음으로, ‘환경 악화’라는 증세를 완화하고 중병의 뿌리를 치료하기 위해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나름대로 칭송할 만한 결실을 내기는 했지만(26, 37, 38, 55, 58항), 문제의 “심각성과 시급성, 광대함”(15항)에 비하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환경 위기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실효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14항).
셋째로, 지난 호에서 소개한 바대로 “방해자들의 강력한 저항” 때문인데, 여기서는 두 가지 정도만 소개한다. 하나는 사회의 여러 영역이 “진보와 인간 능력에 대한 비이성적 자신감”을 갖고 “보다 위험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데(19항), 이는 ‘인간 삶의 질 저하와 사회 붕괴’ 그리고 ‘세계 차원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과학기술-경제적 패러다임에 기초한 새로운 권력 구조들이 우리의 정치뿐만 아니라 자유와 정의를 압도”(53항)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는 더 큰 병을 주면서 효과는 덜한 약을 주는 셈이다.
넷째로, ‘리더십의 부재’와 ‘국제 차원이 정치적 대응의 나약함’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경로를 밟을 수 있는 리더십이, 다가올 세대를 향해 편견 없이 그리고 모든 이를 위한 관심을 갖고 지금의 요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없습니다”(53항). “환경에 관한 지구 정상 회담의 실패는 우리의 정치가 기술과 금융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54항).
마지막으로, “절대로 우리는 지난 200년 동안 우리의 공동 가정에 상처를 입히고 학대한 것처럼 그렇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교종은 그냥 이야기만 나누자는 것이 아니다. 교종은 “새롭고 보편적인 연대”(14항)의 길을 나서려 한다. 소극적으로는 “끔찍한 불의에 대한 침묵의 증인”(36항)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하느님의 기대를 저버리지”(61항) 않기 위해서, “자기 파괴적 행동”(55항)을 멈추기 위해서다. 적극적으로는 “대지의 울부짖음과 사회적 약자의 울부짖음을 같이 듣기”(49항) 위해서 “차별화된 책임”(52항)을 짊어지기 위해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