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인간중심주의 벗어나 하느님께 돌아가야
회칙 2장의 ‘성경의 지혜’(65~75항)와 관련, 우리가 진지하게 성찰할 내용 몇 가지만 소개한다.
1. (구약 성경은) 인간 실존과 그 역사적 실재를 ‘관계’로 이해한다. “인간의 생명(생활)은 하느님과 관계, 이웃과 관계, 대지(세상)와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이 세 관계는 근본적인 것으로서 서로 밀접하게 엮여 있다. 이 세 가지 결정적 관계는 인간 안팎에서 파괴되며, 이 관계의 결렬이 죄다”(66항). 회칙은 성경에서 밝히는 이 관계의 참된 뜻이 무엇인지, 동시에 어떻게 그 관계들이 파괴되며,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웃과 관계가 파괴될 때, 어떻게 그것이 하느님과의 관계와 땅과의 관계는 물론 인류 전체에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한다.
“이웃과 적합한 관계를 가꾸고 유지해야 할 의무를 경시하는 것, 즉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에 대한 돌봄과 보호를 경시하는 것은 나와 나 자신, 나와 다른 이들, 나와 하느님, 그리고 나와 대지와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성경은 이 모든 관계가 무시될 때, 즉 정의가 더 이상 땅에 남아 있지 않게 될 때, 우리의 생명(생활)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노아의 이야기에서 봅니다”(70항).
2. “단호하게 배격해야 할 태도가 있습니다…[성경을 잘못 이해해서] 우리 인간만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우리 인간에게만] 땅을 지배하라고 했으므로, 이는 다른 피조물들에 대한 인간의 절대 우월(지배)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입니다”(67항). 이를 회칙은 ‘왜곡된 인간중심주의’(69항)라고 비판한다. 이 왜곡된 인간중심주의는 “창조주와 인류와 전체로서의 창조(피조물) 사이의 조화”를 붕괴시켰는데, “우리가 주제넘게 하느님의 자리를 취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피조물로서의 한계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66항)에 다름 아니다.
3.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인류에게 새로운 시작(쇄신)의 기회를 주신다(71항). 하느님께서 재촉하시는 이 쇄신의 삶에는 “창조주의 손으로 자연에 새겨 놓은 리듬을 되찾고 존중하는 것”(71항),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찬미(72항), 하느님께 대한 관상으로 얻어야 할 새로운 힘(73항)과 희망(74항)이 포함되어 있다.
4. “성경에서 해방하시고 구원하시는 분과 창조하신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의 창조 행위와 구원 행위는 거룩한 행동 방식으로서 밀접하게 그리고 분리할 수 없이 결합되어 있습니다”(73항).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바로 하느님께서 창조주이시며 해방자이심을 기억하고 고백하며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 교회가 “지상의 권력들을 숭배하는 것을 종식시키는 방식”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자리를 강탈하는 것을 종식시키는 방식”이다(75항).
5.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우리 그리스도인과 교회 당국은 스스로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한다. 창조 질서의 보전과 참다운 해방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 정치ㆍ경제ㆍ문화 같은 사회의 제 분야와 그리스도교는 실효적인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는가? 우리 사회의 다른 종교 혹은 종파와 대화를 나눌 의지가 있는가? 혹시 회피 내재주의의 쓴 독을 지금 마시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그리스도인이 ‘왜곡된 (이기적)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하느님(원천)께 돌아갈 때(전환과 회개), 그럼으로써 파괴된 관계(자신, 이웃, 세상)를 회복하여, ‘쇄신의 삶’을 살 때 인류와 세상에 유익하다. 물론 용기가 필요하고,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신뢰와 희망이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우리는 하느님을 신뢰하는가?
“무에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개입하실 수도 있으며, 모든 형태의 악을 극복하실수도 있습니다. 불의는 무적이 아닙니다”(74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