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제4장 - 통합의 생태 ① 생태의(자연) 환경요소, 경제요소, 사회요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상호 작용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한 재앙은 두 개의 별도의 재앙, 환경의 재앙과 사회의 재앙이 아니라 하나의 재앙이다.
맑은 정신으로 우리의 공동 가정(하늘, 땅, 물, 생명, 사람, 사회,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은 보면 가히 ‘재앙’(위기)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회칙 제1장). 교회는 인류가 제기하는 고뇌에 찬 물음에 응답할 사명을 가진다. 하느님께 대한 교회의 신앙 때문이며(제2장), 게다가 “인류를 자멸하지 않도록 보호해야”(79항) 하기 때문이다.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회칙은 ‘십자로’에 도달한 인류가 가야할 길을 찾는 대화와 토론에 협력을 아끼지 않으려 한다. 교종은 재앙의 근본원인으로 윤리와 도덕을 무시하는 무차별적이고 일차원적인 과학기술주의와 과도한 인간 중심주의를 꼽으며, 실천적 상대주의와 고용의 문제, 새로운 생물학적 과학기술의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주목하고 그 윤리적 함의에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뜻을 밝힌다(제3장).
이제 회칙은 재앙에 직면한 인류가 가던 무모함의 길을 잠시 멈춰 통합의 생태를 다시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제4장). ‘생태’라는 용어 그 자체로 이미 ‘통합’이란 의미를 담고 있음에도, ‘통합’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재앙에 대한 우리의 의식과 접근 방식이 단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경계하기 때문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하나의 (통합) 생태는 (자연) 환경,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일상생활의 요소들을 갖고 있는데, 이 요소들은 불가분의 상호 작용을 하며, 인간 차원과 사회 차원을 분명하게 존중한다. 회칙이 강조하는 것을 요약하면서 우리 모습을 성찰한다.
생태의(자연) 환경 요소 : 자연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작용뿐만 아니라, 사회의 체계들(경제, 행동양식, 실재를 파악하는 방식들)과 자연계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고려해야 한다. 자연은 사회와 분리될 수 없으며 단순히 사회의 무대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우리 역시 자연을 구성하고 있으며,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자연 생태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자연) 생태계라는 실재를 기반으로 해서 살고 행동한다(139-40항 참조).
생태의 경제 요소 : (자연) 환경 보호는 발전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발전 과정을 통합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생태는 경제의 요소를 지니게 된다. 또 그 때문에 경제학은 경제 성장만을 위해 절차를 단순화하고 생산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상이한 여러 지식들을 함께 고려하는 인본주의를 따라야 한다. 즉 사람과 사회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경제가 되어야 한다(141항 참조).
우리도 어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환경영향평가라는 것을 시행해야 한다. 회칙은 이를 ‘환경충격평가’라고 부른다. 회칙은 이 충격 평가를 위해 연구자들의 합당한 역할, 다양한 연구의 상호 작용 촉진과 폭넓은 학문적 자유 보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의 이 환경충격평가는 대부분 ‘경제적 관점’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대표적 사례로, 4대강 사업, 동계올림픽 경기장 건설, 핵발전소 건설, 케이블카 사업 따위를 들 수 있다. 백번 양보해서 경제 발전에 ‘유용’하다고 하더라도, 자연 환경이 갖는 본래의 가치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윤리 요소’를 고려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실정이다.
생태의 사회 요소 : (자연) 환경과 사람의 삶의 질에 중요한 결과를 낳는 것은 사회 제도이므로, 생태는 필연적으로 사회(제도)의 요소를 갖게 된다. 가정에서부터 국제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 제도는 인간관계들을 규정하므로, 중요한 것은 모든 사회 ‘제도의 건전성’과 ‘유효성’이다. 낮은 수준의 건전성과 유효성(제도의 불안정함)은 불법의 일반화를 불러오는데, 회칙은 특히 이를 우려할 만한 현상으로 제시한다. 낮은 수준의 제도적 유효성은 소수에게는 혜택을, 절대다수에게는 고통을 안겨주고, 불법과 탈법의 일반화는 사람과 사회와 자연을 지속적으로 황폐화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142항 참조).
대표적 사례로 최근의 ‘노동 개혁’을 들 수 있다. 노동 개악이라는 비판을 받는 배경에는 제도의 건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경험상의 회의가 자리하고 있다. 소수 기업의 경제적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절대다수 노동자의 삶의 질을 황폐화시킬 것이라 우려하는 것은 지난 수십 년 우리의 노동 정책(제도)이 (대)기업 편향적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노동 개혁이 이른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는 명분을 내세워 또다시 ‘노동’과 ‘사회’의 희생(양보)을 제도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바로 그 제도의 불건전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