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제3장 - 생태적 재앙의 근원들
⑤ 실천적 상대주의와 고용보호 우리 자신의 열망과 즉각적 욕구 충족을 부추기는 무질서의 문화 노동(고용)의 악화와 정치권위의 속임수
자연, 사람과 사회, 경제와 정치를 무차별적으로 지배하는 기술주의
교종은 오늘날의 생태 재앙이 저절로 발생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지난 2세기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여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하늘과 땅, 사람과 사회, 그리고 지구촌 차원에서 목격되는 부정적 모습을 ‘발전과 성장’에 따른 부작용쯤으로 가볍게 볼 수는 없다. 치명의 재앙 수준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교종은 그 재앙의 원인을 그동안 인류가 지녀온 마음의 태도, ‘과학 및 과학기술주의’와 ‘인간중심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근대 정신’ 혹은 ‘근대성’에서 찾는다. 이는 역사에서 시대를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 즉 새로운 세계관과 인간관을 대변한다. 오늘날 생태의 재앙은 ‘무차별적이고 일차원적인’ 과학기술주의 패러다임을 쫓은 결과이며, ‘과도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맹목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회칙은 극복해야 할 “최근 몇 세기의 잘못된 주장들”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교종은 교회가 ‘실천적 상대주의’ ‘고용의 보호’ ‘생물학의 새로운 과학기술들’에 대해 계속해서 성찰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다(121항).
실천적 상대주의: 마음의 태도는 생활 양식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회칙은 ‘잘못 인도된 인간중심주의’라는 마음의 태도가 ‘잘못 인도된 생활 양식’, 곧 ‘실천적 상대주의 문화’를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이는 “당장의 편의를 절대적으로 우선하고 다른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만들어버리는”(122항) 생활 양식이며, “우리 자신의 열망과 즉각적 욕구 충족 말고는 객관적인 진리들이나 건전한 원리들을” 부정하는 생활 양식으로서, 하나의 “무질서”다(123항).
이 실천적 상대주의 문화는 ‘환경의 타락’(재앙) 뿐만 아니라, ‘사회의 부패’를 불러온다. 교종은 ‘사회의 부패’ 현상으로 ‘강제노동’ ‘노예노동’ ‘아동 성 착취’와 ‘노인 유기’ ‘인신매매’ ‘조직 범죄’, ‘마약 거래’, ‘피의 다이아몬드 거래(무기밀매)’, ‘멸종위기 동물의 모피 거래’, ‘사람 장기매매’, ‘아이들의 제거’ 따위의 행위를 구체적 사례로 들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시장의 볼 수 없는 힘’에 대한 맹신을, 문화적 측면에서는 ‘사용하고 버리는 문화’를 실천적 상대주의의 논리와 같다고 비판한다. 이렇게 사회와 문화 자체가 부패하면, 이를 바로잡으려는 정치적 노력이나 법 집행은 ‘독단적 강요’나 ‘장애물’로 보일 뿐이다(123항).
고용 보호: 교회가 성찰해야 할 시급한 과제의 다른 하나로서 회칙은 ‘고용 보호’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계량(규모)의 경제들”(129항)과 “기업의 한정된 이해 관계와 모호한 경제적 추론”(127항)을 앞세워 “단기적으로 보다 많은 재정(금융) 소득을 얻기 위해,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을 그만 두는 그런 기업” 활동과 “노동자의 해고와 기계화로 생산 비용을 절감하려는 경제적 진보”(128항)를 묵인하고 있다. 그 대가는 “많은 사람의 경제적 자유”는 가로막히고, “고용의 가능성들은 계속해서 악화되는” “현실적 조건”(129항)이다.
교회는 변함없이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선성’을 가르쳤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사람의 모든 활동이 갖는 목적과 의미에 관한 물음”(125항)을 오로지 ‘경제적 관점’으로만 해석하는 ‘환원(축소)주의’에서 그 근본 원인을 찾는다.
인간 노동(활동)은 “창조된 세상을 신중한 방식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세상을 돌보는 가장 좋은 방식”(124항)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다른 무엇과 맺어야 하고 맺을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개념”에서 이해해야 한다(125항). 인간 노동은 “영적으로 의미 있는”(126항) 활동이며, “인격적 성장을 위한 무대”(127항)가 되며, “지상 생활에서의 성장과 인간적 발전과 인격적 완성을 향한, 곧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하려는 경로”(128항)가 되어야 한다. 바로 그 때문에 “모든 사람을 위한 안정된 고용 보장”을 오늘날 ‘최우선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127항)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산의 다양성과 사업의 창의성을 옹호하는 그런 경제를 촉진시켜야 한다.” 그래서 회칙은 “소규모 생산자들과 차별화된 생산물을 떠받쳐줄 분명하고 확고한 수단을 취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더 큰 자원과 재력을 가진 이들을 억제해야 할” 정치 권위의 “권리와 의무”를 강조한다(129항).
“현실적 조건들은 많은 사람의 경제적 자유를 가로막고 있으며, 고용의 가능성들은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는데도, (당국이)경제적 자유를 주장한다는 것은 정치의 평판을 떨어뜨리려는 그런 속임수(a doublespeak)를 쓰는 것입니다”(129항). 우리 현실을 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