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 해설] 15. 제3장 - 생태적 재앙의 근원들

작성자 : 마태오    작성일시 : 작성일2015-10-19 09:31:55    조회 : 433회    댓글: 0

③ 기술주의 패러다임의 세계화 - 자연, 사람과 사회, 경제와 정치를 무차별적으로 지배하는 기술주의

 

“세계화된 과학기술의 정신에 굴복하지 맙시다. 모든 것의 의미와 목적에 의문을 품읍시다”(113항).

 

지난 호에서 다룬 회칙의 내용은, 인류가 그 고유의 창의력과 그것으로 발전시킨 과학과 과학기술 덕분에 마침내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과, 역설적이게도 인류는 ‘기쁨과 흥분’ 그리고 ‘위험과 공포’ 사이에서 극단의 모험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회칙은 인류가, 정확히는 소수의 막강한 권력자들이 인류를 상대로, 그렇게 무모한 모험을 하는 근본 원인을 ‘무차별적이며 일차원적인 패러다임’에서 찾는다(106항). 이 패러다임에서는 ‘주체’로서의 인간을 외적 ‘객체’로부터 철저하게 분리시켜 극단으로 찬양하는데, 여기서 인간과 물질적 객체 사이는 원래의 우호적 관계에서 일탈하여 ‘대립적 관계’로 진입하게 된다. 인간은 과학과 과학기술로 외부의 객체를 지배하고 소유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가능한 모든 것을 추출하려고” “이 행성을 끝없이 쥐어짜서 말리려” 대든다. 마침내 우리는 세계라는 실재에 대한 지배와 소유와 무한 추출을 ‘발전’, ‘진보’, 혹은 ‘무제한의 성장’이라고 믿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회칙은 단도직입적으로 ‘거짓말’과 ‘거짓 개념’ 때문이라고 밝힌다. 회칙은 이 거짓에 기초한 패러다임을 무차별적이며 일차원적인 ‘기술주의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교종의 회칙은 색깔이 분명하다. 이 기술주의 패러다임에 따른 ‘무제한의 성장’이라는 발상이 “경제학자들과 금융업자들과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너무 매력적인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발상과 권력(힘)의 결합을 다음과 같은 ‘거짓말’과 ‘거짓 개념’에 기초를 둔 것이라고 분명하게 비판한다. “지상의 재화를 무한정 공급할 수 있다.” “무한한 양의 에너지와 자원을 얻을 수 있다.” “그것들을 재빠르게 재생시킬 수 있다.” 그리고 “자연 질서의 착취에 따른 부정적 결과들을 쉽사리 경감시킬 수 있다.”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런 식으로 말했을까? 경제학자들과 금융업자들과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그리고 인류가 무심히 기대하고 있는 그 ‘무제한의 성장’이나 ‘인류의 번영’이 거짓말과 거짓 개념에 토대를 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까지 말할 것까지는 없지 않을까?’ ‘지금부터라도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의 악화를 극복하면 되지 않을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회칙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환경의 악화’는 하나의 표지일 뿐이라고 단언한다(107항 참조).

회칙은 기술주의 패러다임이 사람과 사회까지 종속시켰다고 본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기술을 단순한 도구로 채택하고 다른 문화적 패러다임을 촉진시키겠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의 동기가 인류의 이익이나 참된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주인이 되는 것’ 즉 권력에 있다고 고발한다. 과르디니를 인용한 내용이 오늘 인류의 처지를 대변한다. “인간은 자연도 박탈당하고 인간 본성도 박탈당한 요소(부품)들로 된 (기계의) 손잡이를 움켜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과 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남아 있을까?(108항 참조)

기술주의 패러다임은 경제 생활과 정치 생활마저 지배하려 한다. (경제의 실질적 토대를 무시하는) 금융이 실물경제를 압도하게 된 것도, 세계적 금융 재앙 앞에 속수무책인 것도, ‘낭비적이며 소비주의적인 초발전(superdevelopment)과 탈인간화의 강탈(dehumanizing deprivation)이 지속되는 상황’이 공존하는 것도 기술주의 패러다임이 경제 생활과 정치 생활을 지배했기 때문이다(109항 참조). 회칙이나 교종이나 사방에서 반대 받는 표적이 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어느 월간지는 교종을 두고 ‘악마의 배설물에 맞서는 교황’이라는 제목의 글을 1면 톱으로 다루기까지 했다.

교종은 “과감한 문화적 혁명의 길로 나서는 일이 시급히 필요”하며, “모든 것의 의미와 목적에 관해 의문을 품자”고 호소한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아직까지)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책임과 가치와 양심의 발달과 동반하지 않고”(105항) 있으며, “과학적이며 과학기술적인 진보가 인류와 역사의 진보와 동일화될 수 없기”(113항)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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