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 해설] 30. 접근법과 행동 방식
⑨ 과학(학문)과 대화하는 종교들
2016. 02. 21발행 [13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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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과학(학문)과 대화하는 종교들
“오늘날의 생태적 재앙이 갖는 엄중함은 우리 모두에게 공동선을 향해 길을 나서라고, 언제나 ‘실재들은 관념들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인내와 자제와 관대함을 요구하는 대화의 행로로 나서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201항).
정치와 경제가 사람과 사회와 자연 곧 생태를 보호하고 개선하는 그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오히려 오늘날 생태 재앙을 일으킨 과학기술 만능과 왜곡된 인간 중심주의에 종속될 때, 이를 바로 잡을 힘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교종은 ‘생태적 전환’(216항 이하)을 위한 “과감한 문화적 혁명의 길”에서 우리가 “속도를 줄이고 다른 방식으로 실재를 볼 것”(114항)을 촉구한다. “오늘날 생태 재앙이 근대성의 윤리ㆍ문화ㆍ정신적 재앙을 드러낸 하나의 작은 표지에 불과한 것”(119항)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생활양식과 생산ㆍ소비 모델과 기축 권력의 철저한 변화뿐만 아니라(4항) 대중과 시민사회의 건전한 압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204항 참조).
회칙은 ‘나침반을 잃어버린’ 인류(200항)를 걱정한다. 우리에게 ‘인문학의 고사’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심지어 대학에서 철학과를 폐지한다는 소식부터 대학이 취업을 위한 직업훈련소가 되었다는 자조적인 탄식도 들린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사회가 ‘학문’조차도 철저하게 ‘돈벌이’가 될 수 있는 분야와 그렇지 못한 분야로, 정직하게는 ‘경제’ 혹은 ‘기업’에 활용 가치가 있는 분야와 그렇지 못한 분야로 나누어 버렸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사회에서는 “미학적 감수성이나 시나 혹은 사물들의 궁극적 의미와 목적을 파악할 이성의 능력조차도 설 자리가 거의 없게 된다. 윤리적 원리들조차…순수하게 추상적인 형태”로만 자존하여 공허해진다(199항). 우리에게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려 주는 나침반이 있는가?
이런 맥락에서 회칙은 ‘종교’ 혹은 인문학의 가치와 임무를 재확인한다. 특히 ‘종교’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사상을 자극하고 마음과 정신을 확장하는 영구적인 힘”을 갖는다. 게다가 종교의 언어들은 “모든 맥락을 고려하는 윤리적 원리들”을 담을 수 있다(199항). 종교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조화롭게 살 수 있게 하고, 희생할 수 있게 하며, 다른 것들을 잘 다루게 할 수 있는 위대한 동기들”을 잊지 않게 한다(200항).
그렇다고 해서 교종은 종교가 제 임무와 역할을 언제나 올바르게 실천한 것이 아님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며 각 종교가 그 원천에 충실할 것을 권고한다. “만일 [종교의] 원리들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자연을 학대한 것을 정당화하고, 창조에 폭압을 행사하고, 전쟁과 불의와 폭력을 자행하는 것으로 이어졌다면, 우리 믿는 이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종교적] 지혜의 보고들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각 종교들이 갖는 원천들에로 끊임없이 되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원천 곧 지혜의 보고에 충실하지 않은 믿는 이들의 삶은 곧 “자기들의 신앙과 일치”하지 않는 방식의 삶, “자기들의 행동으로 그 신앙을 부정한” 삶, “하느님의 은총에 개방되어” 있지 않은 삶, “사랑과 정의와 평화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삶이기도 하다(200항).
‘원천으로 돌아가기’는 ‘현대 세계에의 적응과 쇄신’과 함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주요한 정신 가운데 하나다. 마땅히 교회는 초대 교회 신앙 공동체의 삶(성경)을 존재와 생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교종은 한국 교회의 현실 진단과 미래의 방향 찾기에서 언제나 그 기준은 사도 시대의 이상적 교회 모습을 드러낸 우리의 초대 교회의 삶이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5장을 마무리하면서 회칙은 종교 사이의 대화, 학문 사이의 대화, 생태 운동 사이의 대화를 호소한다. ‘대화’는 ‘교회의 끊임없는 정화와 쇄신’ ‘현대 세계의 복음화 사명’과 함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교종은 “자연 보호, 사회적 약자의 방어, 존경과 형제애의 관계망 구축”을 위한 종교들 사이의 대화를 촉구한다. 다양한 학문 사이의 대화도 소극적으로는 지식의 고립화와 절대화를 막기 위해서, 적극적으로는 환경 문제를 효과적으로 대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빈번하게 이념적 충돌이 벌어지는 생태 운동들 사이에서도 개방적이며 존경심을 갖는 대화가 필요하다(201항).
우리의 경우를 성찰한다. 종교는 우리 사회의 ‘나침반’으로서의 임무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자기만족과 자기 몰두의 내재주의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교회는 ‘원천(성경)’을 기준으로 삼아 끊임없이 쇄신하며 복음화와 대화의 길로 나서고 있는가? 우리 사회의 학문은 사물들의 궁극적 의미와 목적을 파악할 이성의 능력을 발휘하는가? 아니면 거꾸로 고립화와 지식의 절대화를 꾀하는 가운데 스스로 ‘경제’에 종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