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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오른쪽)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 연합뉴스
2017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오른쪽)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 연합뉴스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프란치스코(88) 교황이 폐렴과 복합 호흡기 감염으로 위독하다. 지난 14일 입원한 교황은 병상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3주년을 맞아 “모든 인류에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연대를 표한 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미얀마, 콩고민주공화국 등 모든 분쟁지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평화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1282년 만의 비유럽권(아르헨티나)이자 최초의 신대륙 출신 교황이다. 또 아마도 가톨릭 사상 최초로 ‘진보’로 분류되는 교황이다. 사제였을 때부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고, 동성애에도 상대적으로 열려 있다. 그런데 교황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한 적 없었던 ‘마이너 중의 마이너’였던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발탁한 이는 가톨릭계의 ‘정통 보수’인 전임 베네딕토 16세(1927~2022)다. 영화 ‘두 교황’(2019)을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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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는 자주 라틴어를 쓰고, 격식과 전통을 소중히 여기며, 동성애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세속주의와 해방신학 등에 반대했다. 성직자들의 성추문에도 엄정한 조처를 취했다. 그러나 바티칸 내부 비리가 연속 폭로되자, 건강을 이유로 사임했다. 종신직인 교황이 스스로 물러난 것은 598년 만의 일이다. 그러면서 베네딕토는 ‘교황청 개혁’을 위해 자신과는 정반대인 프란치스코를 후임자로 추천했다. 영화에도 나오듯 둘은 모든 면에서 생각이 다르다.

“변화는 타협입니다. 신은 변하지 않습니다.”(베네딕토)
“진리가 중요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견딜 수 없습니다. 교회가 더 이상 세상의 일부가 아닌 것 같습니다.”(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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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생각은 달랐지만 같은 하느님을 섬겼고, 신앙을 위해 늘 고민했고, 서로의 생각을 받아들이진 못했지만 서로 아끼고 좋아했다.

정치인을 감히 교황과 비교할 순 없지만, 바람직한 ‘보수’와 ‘진보’의 관계가 이와 비슷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말 그대로 꿈같은 상상을 해본다. 생각이 다른 두 교황이 공통적으로 지닌 것은 ‘양심’과 ‘책임’이다. 베네딕토는 이미 오랫동안 내려왔던 바티칸의 비리를 자신의 잘못으로 여겼고, 자신이 개혁의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자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또 프란치스코는 베네딕토의 제안에 ‘양심상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는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정권의 폭압에 정면으로 맞서 항거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다. 그는 당시 군부에 쫓기는 사람들을 몰래 숨겨주고 해외 도피를 도와주긴 했으나, 공개적으로 독재정부와 맞서 싸우지 않았다. 그래서 군부정권이 물러난 뒤, 그는 ‘독재에 침묵했다’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했다. ‘책임’이란 공을 위해 사를 희생할 수 있는 것이고, ‘양심’이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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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가 ‘신과 이웃’을 위해 제 몸을 바치듯, 정치인도 ‘신념과 공익’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그 원동력이 성직자에게는 ‘신앙’, 정치인에게는 ‘권력의지’다. 그런데 수단인 권력의지가 목적화하는 경향을 본다. 가치는 사라지고, 권력의지만 남은 정치는 괴물이 된다.

지금 보수를 보라. 우리 사회의 규율을 깨뜨리고도, 한 점 부끄러움을 모른다. 이를 ‘보수’라 할 수 있나. 윤석열 대통령은 흐트러진 몸가짐이나 거친 말투부터 전형적 보수와는 거리가 멀다. 외형적으론 ‘길거리 건달’ 모습에 더 가깝다. 보수는 자신을 절제하고, 남에게 너그럽다. 때론 위선으로 비치기도 하나, 예의 바르고 반듯하다. 요즘 ‘보수’에서 한 줌이라도 볼 수 있나.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선출 당시에 대해 “단두대 도끼날이 내 목에 떨어진 것 같았다”고 말한 적 있다. 감히 교황에 비할 순 없겠으나, 권력 앞에 최소한의 겸손을 내비칠 순 없었던 건가.

아울러 진보는 개혁성을 상실하면 더 이상 진보일 수 없다. 개혁은 ‘약자’를 향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세월호 참사(2014년 4월)로 우리 사회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을 때였다. 세월호 희생자를 위로한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와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니 떼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중도 보수’를 표방했다. ‘중립’의 자리로까지 나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25일 윤 대통령은 최후 진술을 한다. 대통령으로 국민께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최소한의 ‘보수다움’을 보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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