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빙하가 사라지면 남는 것들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2-08-09 21:35:06    조회 : 127회    댓글: 0

이동기 강원대 평화학과 교수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체르마트로 가는 길은 빙하로 유명하다. 융프라우를 품고 스위스 남서부를 덮는 알레취 빙하는 알프스에서 가장 크고 길어 드문 비경을 드러낸다. 관광객은 저마다 가슴에 빙하 조각을 새겨 삶을 새로 잇는다. 7월 말 알레취 빙하의 중심인 피에셔 지역 주민들은 가톨릭 신부와 함께 기도하며 옆 동네 계곡까지 행진했다. 사실 그 기도와 행진은 344년 전부터 하던 일이다. 다만 얼마 전부터 기도 내용이 바뀌었다.

17세기는 이른바 ‘소빙하’ 시기였고 유럽도 영향이 컸다. 1678년 피에셔 주민들은 알프스의 “빙하가 더 커지지 않도록” 기도했다. 빙하가 커지면 주민의 삶이 위협받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기도가 통했다. 1850년을 전후해 닥친 또 한 번의 ‘소빙하’ 때에도 피에셔 주민들은 간절했다. 다행히 기도는 금방 통했고 효과는 더 셌다. 그 때부터 빙하가 더 커지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빙하를 손 본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산업화였지만, 당시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후 알프스 빙하는 지구가 준 선물이 되었다. 규모와 길이의 정점을 찍었던 1850년 경 알레취 빙하는 26.5킬로미터였고 면적은 105.6 제곱미터였다. 이제 그것의 길이는 22킬로미터도 안되고 면적은 이미 1/4이 줄었다. 올 여름 유럽은 너무 더웠다. 빙하가 사라지는 속도와 정도는 매주 기록을 갱신했다. 지구온난화 때문임을 모를 수가 없다. 피에셔 주민들은 기도와 행진의 기적을 다시 믿어 보기로 했다. 물론, 그들은 이제 정반대의 상황, 즉 “빙하가 다시 커지기를” 기도했다.

이번에는 그들의 기도가 통하지 않을 듯하다. 이미 빠른 속도로 알프스 전역에서 빙하가 줄고 있다. 올해가 특별한 점은 빙하 소멸의 정도와 속도가 더욱 가파르다는 사실이 연구로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빙하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1.5도로 유지된다고 해도 수십 년 안에 빙하의 2/3는 사라진다고 진단했다. 스위스는 고민에 빠졌다. 빙하를 살리기 위한 방책으로 관광객 출입을 제한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빙하가 사라지면 어차피 관광객이 많이 오지 않을 테니 생태 관광으로 전환하는 길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궁리 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관광이 아니다. 빙하가 사라지만 자연 풍광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주민의 삶이 위협받는다. 빙하학자들에 따르면, 1850년 후부터 지금까지 빙하가 녹으면서 1200개의 크고 작은 호수들이 생겼는데, 앞으로 680개 이상의 호수들이 더 생길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도 향후 수십 년 동안 새로 40에서 70개의 호수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한다. 한국과는 달리 알프스를 끼고 있는 유럽은 홍수와 가뭄의 극복이 사실 빙하에 달렸다. 게다가 빙하의 얼음들이 산자락과 암석들 사이를 받치고 있는데 이제 상황이 달라진다. 홍수 범람과 산사태 등 재해가 덮치기 쉽다.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 호수에도 영향을 미친다. 호수가 작아지거나 사라질 것이다. 스위스에서 새로 생길 호수 중 절반은 22세기를 맞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물 부족이 나을 재앙과 갈등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벌써 목이 탄다. 이미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사이에 놓인 노이지들러호의 경우, 수량이 줄자 농지로의 배수가 급해졌다. 양국 사이에 도나우 강과 호수를 인공적으로 잇는 사업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양국의 입장과 이익이 일치하기는 쉽지 않다. 기후위기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심각하지만 새로운 갈등을 만들기에 더욱 버겁다. 기후위기와 생태갈등의 극복은 다음 세대의 과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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