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인류를 할퀴는 순서...'안전한 집 없는'이부터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1-01-14 19:26:00    조회 : 258회    댓글: 0

기후위기가 인류를 할퀴는 순서…‘안전한 집 없는’ 이부터

등록 :2021-01-11 04:59수정 :2021-01-11 07:33


기후위기와 인권 ②

③ ‘침수 피해’ 제주 월대천 주민들
해수면 많이 높아져…하천 넘을까 불안
④ 한여름 54도 폭염…땀띠 달고 살아
대구 쪽방서 6년째 김만호씨
집보다 부동산의 의미가 큰 시대다. 하지만 혹한, 폭염, 태풍 등 이상기후가 심해지면 추위와 열기, 비바람을 피하는 집의 본래 기능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는 안전한 집이 없는 이들부터 집어삼킬 것이다. <한겨레>는 움막, 비닐하우스, 쪽방, 해안가 저지대 마을주민 등 기후난민이 될 위기에 놓인 기후민감계층(취약계층)을 만났다. 기후위기는 빈곤한 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지만, 반대로 빈곤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기도 한다.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0%가 사람이 머무는 건물에서 나온다. 노후한 집을 바꿔가는 것은 취약계층에게 내미는 따뜻한 연대의 손길이자 기후위기 대응의 시작이다.
지난 12월16일 찾은 제주시 외도2동 월대마을 앞 바다. 해수면 높이가 도로와 10~20㎝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기상청 시나리오를 보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해도 21세기 후반 제주시 해수면 높이는 최대 80㎝까지 오른다. 주민들은 이미 만조 때와 태풍, 비가 겹치면 한라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많은 양의 물이 바다로 잘 빠져나가지 않아 하천이 범람한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최우리 기자
지난 12월16일 찾은 제주시 외도2동 월대마을 앞 바다. 해수면 높이가 도로와 10~20㎝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기상청 시나리오를 보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해도 21세기 후반 제주시 해수면 높이는 최대 80㎝까지 오른다. 주민들은 이미 만조 때와 태풍, 비가 겹치면 한라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많은 양의 물이 바다로 잘 빠져나가지 않아 하천이 범람한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최우리 기자
#3. 물 잘 빠진다는 제주, 하천이 범람하다
제주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비가 내린다. 기상청 통계를 보면 제주 북쪽(제주시)은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1520㎜의 비가 내렸다. 1393㎜(1970년대)→1506㎜(1980년대)→1469㎜(1990년대)→1515㎜(2000년대)→1520㎜(2010년대)로 느는 추세다. 중앙에 솟은 한라산에는 연안 지역보다 4배 가까이 많은 비가 내린다. 게다가 한라산 중산간 막개발 등으로 저지대로 쏟아져 내려오는 빗물의 양은 더 늘었다. 기상청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보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해도 제주시 쪽 해수면은 2050년엔 지금보다 20㎝, 2100년에는 80㎝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해수면 상승, 강수량 증가, 초강력 태풍, 저지대 하천 범람이 맞물리면 재난이 된다.
제주공항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제주시 외도2동 월대 주변은 제주 연안 지역 중 대표적인 저지대다. 지난해 9월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바다와 맞닿아 있는 월대천이 범람했다.월대천 옆 단층 건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정경(45)씨의 가게에 물이 들이쳤다. 2016년 태풍 차바가 가게 지하실 전체를 물속에 가두었던 기억이 떠올라 아찔했지만, 마이삭은 그나마 순한 태풍으로 그쳤다.
2016년 제주시 외도2동에서 횟집을 연 김정경(45) 마꼬토 대표는 “만조 때 비가 많이 오면 어김없이 월대천 물이 넘친다. 불안해서 이주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제주/최우리 기자
2016년 제주시 외도2동에서 횟집을 연 김정경(45) 마꼬토 대표는 “만조 때 비가 많이 오면 어김없이 월대천 물이 넘친다. 불안해서 이주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제주/최우리 기자
지난해 8월26일 태풍 바비 당시 제주시 외도동 주민 김정경(45)씨가 자신의 가게에서 바라본 월대천의 모습. 지난해 태풍 때도 월대천의 물이 넘쳐 산책로가 잠겼다. 김정경씨 제공 사진
지난해 8월26일 태풍 바비 당시 제주시 외도동 주민 김정경(45)씨가 자신의 가게에서 바라본 월대천의 모습. 지난해 태풍 때도 월대천의 물이 넘쳐 산책로가 잠겼다. 김정경씨 제공 사진
지난해 12월16일 가게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차바 때 침수돼 뜯긴 지하실 천장을 가리키며 “장사를 접을까 고민했는데 다시 몇년 동안 여름철 장사가 잘돼 그런 걱정을 잊었다. 그리고 다시 마이삭이 와서 또 침수됐다. 여름마다 불안하다”고 했다.박지홍(36)씨도 바닷가에 바로 붙은 곳에서 횟집을 운영한다. “물이 차면 가게 3층으로 올라가서 가만히 있어요. 며칠이 지나야 물이 빠져요.”제주시 통계를 보면, 외도2동은 2012년 이후 태풍으로 6차례 침수 피해를 봤다. 2012년 두차례 발생 뒤 뜸하던 침수 피해는 2016년, 2018년, 2019년, 2020년 한차례씩 발생했다. 침수 피해 빈도가 잦아진 것이다.신민식(83)씨는 이곳 토박이다. 살아온 세월만큼 태풍 사라(1959년), 나리(2007년), 차바(2016년) 등 기억하는 비바람도 많다. 신씨는 “점점 바다 수위가 올라가고 있고 태풍도 자주 오는 것 같다. 만조에 태풍이 겹치면 물이 못 빠져 난리 난다”고 했다. 이곳이 고향인 김봉준(90)씨도 “세계적으로 태풍이 더 늘어난다고 하니 물이 (더 자주) 범람할까 걱정된다”고 했다.
지난 2016년 태풍 차바로 피해를 입은 제주시 외도2동 모습 모습. 허호준 기자
지난 2016년 태풍 차바로 피해를 입은 제주시 외도2동 모습 모습. 허호준 기자
2016년 태풍 차바 피해 당시 제주시 외도동. 외도동 주민센터 제공
2016년 태풍 차바 피해 당시 제주시 외도동. 외도동 주민센터 제공
그런 월대 주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지영수(72)·장숙이(61)씨 부부, 강연백(60) 월대마을회장은 2007년 9월 태풍 나리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날 오전 지씨 부부 집으로 물이 밀려들어왔다. 키 163㎝인 장씨의 턱밑까지 물이 들어찼다고 한다. 지씨가 뒷문 유리창을 깨고 먼저 나왔고 얼굴만 물 위에 떠 있는 장씨의 머리를 잡고 건져 올렸다. 동사무소 직원들이 던져주는 줄을 가슴에 매서 몸만 대피했다. 숟가락 하나까지 지씨 부부가 일군 모든 것이 그날 다 사라졌다고 했다.태풍은 지씨 소유 땅에 설치한 컨테이너에서 살던 40대 부부를 바다로 끌고 가버렸다. “회오리바람이 불더니 파도가 홱 동그랗게 해가지고….” 장씨가 그때를 떠올렸다. 부부의 주검은 보름 뒤쯤 외도 앞바다에서 찾았다고 한다. 강 회장은 “마을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라고 거들었다. 올해 제주시는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더 쌓기로 했다.박창열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제주 연안 지역 소형 주거지들이 피해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박 연구원은 “현재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이주 권고를 하고 풍수해보험제도를 적극적으로 소개할 필요가 있다. 미래 위험도가 높은 지역만이라도 주거·상업공간으로의 개발 행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지닌달 7일 찾은 대구 쪽방촌 주민 김만호(가명·55)씨의 방 내부. 보일러나 연탄 대신 전기장판으로 난방을 한다. 대구/김민제 기자
지닌달 7일 찾은 대구 쪽방촌 주민 김만호(가명·55)씨의 방 내부. 보일러나 연탄 대신 전기장판으로 난방을 한다. 대구/김민제 기자
#4. 창문도 없는 쪽방을 덮치는 54도 폭염
질병관리청 자료를 보면, 2016~2020년 5년간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96명이다. 기후변화로 이상기후가 계속되면 2050년 서울 폭염일수는 연간 44.3일(2018~2020년 평균 14.3일)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전북 군산에서 선원으로 고기를 잡던 김만호(가명·55)씨는 2016년 대구 중구 서성로의 한 여관에 거처를 마련하고 6년째 살고 있다.외부인이 보기에는 다 같은 쪽방이지만 1.5평짜리 그의 방은 이 여관에서는 특실로 통한다. 다른 방들과 달리 방에 세탁실이 따로 있고 침대도 있다. 창문이 있는 것이 특히 만족스럽다. 김씨는 사비를 들여 창틀에 방충망을 설치하고 창문에는 외풍을 막을 ‘뽁뽁이’도 붙였다.그는 자신의 방에 만족하는 듯했지만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쪽방 식구들이 사용하는 씻는 물을 데우기 위해서는 연탄을 때고 남은 잔열을 이용해야 했다.김씨는 침대 위에 얹은 작은 전기장판에 의지해 겨울을 난다. “쪽방에선 연탄을 때는 방과 아닌 방으로 나뉘는데, 연탄 때는 방이 월세가 좀 더 비싸요.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면 여관 주인이 부담을 주긴 해도 전기장판을 많이 사용한다고 입주자가 내야 하는 전기요금이 느는 것은 아니에요. 눈치껏 쓰는 거죠. 어떤 집은 주인이 밤에만 전기를 쓸 수 있도록 하는 곳도 있어요.”
지난달 7일 찾은 대구 쪽방촌 복도. 복도 한편으로 좁은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대구/김민제 기자
지난달 7일 찾은 대구 쪽방촌 복도. 복도 한편으로 좁은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대구/김민제 기자
대구 쪽방은 당장의 추위가 힘겨워도 해가 갈수록 맹렬해지는 폭염에 비하면 견딜 만하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의 열기는 김씨가 사는 쪽방을 금세 뜨겁게 달구곤 했다.이 지역 골목에는 여인숙 등 숙박시설이 늘어서 있다. 대부분 좁은 나무 복도 한편에 1~1.5평짜리 방을 일렬로 들였다. 방과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창문이 없기도 하다. 벽엔 옷가지가 빼곡하고 냉방기구는 선풍기뿐이다. 더운 날이면 공용 수돗가에서 열 받은 몸을 잠시 식힌다. 열대야가 이어지면 밤거리를 서성이며 잠 못 이룬다.주민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올해가 가장 더운 것 같다”고 말한다. 대구 쪽방상담소 행복나눔의집 정현우 상담사는 “2016년 대구 중구의 한 여관 실내온도가 54도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해 대구 최고기온은 38.1도였다. 근처 여관에 사는 장철수(가명·43)씨는 “여름에는 방이 거의 찜질방이라 땀띠를 달고 산다”고 말했다. 쪽방을 벗어나는 것도 여의치 않을 땐 보통 방바닥에 누워 움직임을 최소화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더위가 가시길 기다리는 것이 전부다.유럽연합은 주거공간에 대한 공공책임을 강조한다. 영국의 경우 저소득층이 사용하는 노후 보일러 교체를 유도해 겨울철 난방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탄소 배출을 줄였다. 또 임대사업자가 건물에 냉난방 등 에너지 절약 시설을 설치하면 그 비용에 대해서는 소득공제 혜택을 준다.이명주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는 취약계층 주거권 보장이 다른 시민들에게도 결과적으로 이익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 왜 내가 낸 세금을 투자해야 하냐고 물을 수 있다. 에너지 비효율 주택을 공공에서 앞장서 개선을 유도하고 지원하면 그런 건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나와 내 자식 세대가 기후위기에 대응할 여유가 생긴다.” 대구/김민제 기자, 제주/최우리 기자 summer@hani.co.kr
지난달 7일 찾은 대구 쪽방촌의 세면공간. 겨울철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쓰고 난 연탄의 남은 열기로 물을 가열해 사용한다. 대구/김민제 기자
지난달 7일 찾은 대구 쪽방촌의 세면공간. 겨울철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쓰고 난 연탄의 남은 열기로 물을 가열해 사용한다. 대구/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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