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에 관한 단상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1-05-26 19:25:57    조회 : 197회    댓글: 0

‘돌봄’에 관한 단상

등록 :2021-05-23 17:26수정 :2021-05-24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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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명인(命人) ㅣ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옆지기가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 허리를 쓰지 못하니 꼼짝없이 누운 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밥을 먹고, 용변을 보고, 씻고……, 당연히 혼자서 해오던 모든 일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해졌다. 그런데 옆지기는 내가 정성을 기울여 돌볼수록 오히려 더 불편해하고, 그나마 아내니까 망정이지 낯모르는 간병인은 물론 아들에게조차 몸을 맡기길 꺼리는 눈치다.
사람은 누구나 한때 다른 사람의 돌봄이 없이는 생존조차 불가능한 시절을 겪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일에 수치심을 갖게 되었을까? 우리는 왜 서로에게 ‘잘 기대는 법’이 아니라 ‘자립’을 해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을까? 누군가에게 잘 기대는 법,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는 감각을 키우고, 그것이 상대에게 폭력이 되지 않도록 협상하는 법 등이 자립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아니었을까?조한진희는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아픈 몸을 배제하는 사회에서 느낀 무력감, 사회의 책임은 지우고 개인의 책임만 강요하는 폭력, 질병 자체를 비극으로 만들어 닫힌 서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몰이해 등을 비판하며 ‘잘 아플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옆지기를 돌보면서 나는 거기에 더해 생각한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사회가 되려면 이 사회가 ‘돌봄’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고. 옆지기는 그나마 곁에서 돌볼 아내라도 있으니 다행인 것이 아닐까? 그마저도 없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요즘 병원은 코로나19로 24시간 상주 보호자가 아니면 면회를 할 수 없고, 상주 보호자의 외출도 금지하고 있다. 모두를 위해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문제는, 생계를 위한 일과 사회적 약속들이 유지되기 어려운 상태에 대해 나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미안해하면서 변명을 해야 하고, 일하지 못하는 상황의 경제적 곤란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한편, 환자가 아닌 나조차 병원에 갇히게 되면서 나는 엄청난 고립감을 느꼈다. 안전한 병원에서 원한다면 언제든 나갈 수 있는 나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확진자가 발생한 수용시설에서 코호트 격리되었던 사람들은 대체 어떤 공포를 감당했던 걸까? 그런데 뜻밖에, 그런 나의 고립감을 견디게 해주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는 내 일을 대신 처리해주고, 누군가는 내가 급히 해야만 했던 일의 마감을 연장해주고, 누군가는 차례가 오지 않은 일을 순서를 바꿔 해주겠다고 나섰다. 누군가는 돈을 보내고, 누군가는 반찬이나 간식을 만들어 병원에 맡기고 간다. 나는 환자를 돌보고 있지만, 누군가들은 ‘돌보는 나’를 돌보고 있는 것이다.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에게 한 학생이 문명의 첫 증거가 무엇인지를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예상과 달리 마거릿 미드는,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찾아낸 1만5천년 된 인간의 ‘부러졌다 다시 붙은 대퇴골’이라고 답했다고. 부러진 대퇴골이 다시 붙기까지는 대략 6주 이상이 걸리는데, 그 시대에 대퇴골이 부러진 사람은 위험을 피할 수도, 물을 마실 수도, 사냥할 수도 없는 채로 맹수의 먹잇감이 되거나 굶어 죽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고. 그러므로 발굴된 대퇴골은, 다른 어떤 인간이 뼈가 부러진 동료의 곁을 지켰고, 상처를 싸매줬으며, 안전한 곳으로 동료를 데려가서 다 회복될 때까지 돌봐줬다는 증거다. 마거릿 미드는, 역경에 처한 누군가를 돕는 것에서 인류의 문명이 시작됐다고 대답한 것이다.그런데 왜 현대 문명은 돌봄과 무관한 것으로 보일까? 개인들은 어떻게 돌봄 사회를 구축해갈까? 가족이나 사적 네트워크에 의존하지 않고도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개인과 이 사회 전체에, ‘돌봄’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와 상상력이 요구되는 일이다.onebyone.gif?action_id=b8c1092fc0b61c798cb464301b0a7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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