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중심, 생명존중의 관계로 나아가기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0-08-18 23:08:20    조회 : 211회    댓글: 0

"코로나 이후의 삶은 자연과의 공존이다"

[ 8월특집 ] 3.생명중심, 생명존중의 관계로 나아가기

이성호 교수
2020년 08월 17일(월)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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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는 8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 약 2000만 명(국내 1만 4000명)을 넘어 확산세는 멈출 줄 모른다.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 방역 등 생소한 방역정책을 통해 불편한 생활이 당분간 지속된다고 한다.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신조어가 코로나 이후 달라질 삶을 상징한다.

그런데 벌써 사람들은 지쳐있고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백신과 치료제만을 기다린다. 교회 또한 예배의 회복에만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극복하는 시대가 되려면 우리의 삶과 체제를 바꾸어 가야 한다. 특별히 나는 코로나19가 인류 문명이 경제중심, 자기중심성으로부터 생명중심, 생태중심에로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는 사명(마 5:13~16)을 가진 교회가 분명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 전에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생태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 다른 코로나 계열의 바이러스처럼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박쥐라는 숙주동물을 통해 인간에게 넘어왔다. 그렇다면, 박쥐를 소탕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이러한 상상은 윤리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지구 생태계에 박쥐는 약 1250여 종으로 전체 포유류 5000여 종의 25%나 되며 대부분 깊은 숲 속과 동굴에 서식하기 때문이다. 박쥐 아닌 숙주동물에서 오는 바이러스 감염병도 많다. 사실, 인수공통 감염병이 발생하는 조건은 숙주동물과 인간과 근연관계에 있는 매개동물 사이의 빈번한 접촉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다. 문제는 인류가 그 동안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병 발생 및 팬데믹 상황형성에 중요한 생태학적 조건들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첫째, 숲의 훼손이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산림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현재 전 세계 연평균 1300만 헥타르의 산림이 훼손되고 있으며 한국도 연평균 여의도 면적 약 24배의 산림이 훼손되고 있다. 이를 통해 바이러스 숙주 동물의 숲 속 서식처들이 점점 축소되어 숙주동물들이 인간 및 가축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 세계적으로 확장된 교통 네트워크가 이러한 상황을 악화시켰다.

둘째, 동물 차별이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동물들, 가축, 반려동물까지 동물들은 인류에게 고마운 존재이건만 인류는 언제나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을 유지해 왔다. 코로나19와 관련한 동물 차별의 현장 중 하나는 현대 공장식 축산업이다. 밀집사육, 대량사육의 환경은 가축들의 위생과 건강을 악화시킨다. 더구나 대량생산의 효율성을 위한 단일품종으로의 개량은 가축들의 유전자 다양성을 제거한다. 이 모든 요소들이 가축들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감염병에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과도한 육식문화 또한 코로나19의 원인 중 하나이다. 야생동물 시장에서 숙주 동물과 다양한 매개동물들 사이의 접촉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태계 파괴가 코로나19 팬데믹을 불러온 것이다. 이러한 반생태적, 반생명적 문명 낳은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 교회는 어떠한 일들을 할 수 있을까?

먼저 교인들은 코로나19 사건을 통해 생태적, 생명 중심적 문명에로의 전환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자 요청으로 분별하여야 한다. 목회자들은 성서의 예언자들처럼 문명의 대격변이 도래하지 않고서는 공멸할 것이라는 비상한 위기의식을 성도들과 공유해야 한다. 우리의 욕심이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파괴했고 결국 코로나19의 위기를 자초한 책임으로부터 교회공동체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고백과 자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식전환과 반성이 행동과 실천으로 나아가야 변화가 일어난다. 기독교적 행동과 실천의 근원은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한 영성이다. 물질적 축복을 추구하고 나의 욕심을 확장하려는 자아중심적인 영성이 생태파괴를 초래했기에 이제 그러한 반생명적인 영성은 걷어낼 때가 되었다. 생태적 문명전환에 생태적 영성이 꼭 필요하다. 여기에 교회가 공헌할 수 있다. 우리가 생명을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창 2장, 시 147편 등)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웃 피조물들과 깊은 사귐이 있을 때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더 많은 신앙인들이 자연 속에서 영적 체험을 해야 한다. 자연에서 나의 즐거움만 찾는 습관을 좀 더 내려놓고, 자연 속에 임재하시는 성령을 느끼고, 성령을 통해 이웃 피조물들과 교제하는 즐거움을 누려야겠다.

생태적 영성은 생명존중의 기초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성령 안에서 숲과 교제하다 보면 숲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 숲을 위하는 길을 찾을 것이다. 숲만 잘 보전해도 코로나19와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동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공장식 축산농장 같은 비좁은 공간에 갇혀 인간의 필요에 따른 강제된 삶을 살아가는 동물들을 볼 때 어떤 마음을 가지는 것이 기독교적 영성인가?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동물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아파하실 것이다. 진정한 신앙인이란 하나님과 동물의 입장에 서보고 함께 고통을 느끼고 애통해 하는 사람이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생명을 파괴한 대가가 우리에게 돌아온 것임을 알려준다. 이제 생태적 영성으로 각성한 우리가 동료 피조물들을 존중해준다면 인간문명에도 생명이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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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교수 / 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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