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래 위의 날개"

작성자 : admin    작성일시 : 작성일2013-12-21 13:59:47    조회 : 432회    댓글: 0
평화신문 2013. 12. 08발행 [1243호]  신앙단상] 임선혜 아녜스(성악가, 소프라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음악을 못 하면 죽을 것만 같았거든!" 하고 음악을 시작한 계기를 이야기하는 선후배 동료를 보면 부러울 때가 있었다. 노래를 하면서 설레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음악이 죽을 만큼 좋았던 적도 없었다. 모두들 내가 음악을 엄청나게 사랑해서 그 열정으로 외국 무대를 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저 '내가 이 길을 왜 가야 하는지'가 궁금했다.

 성악은 재미있었고 무대는 늘 황홀했지만 클래식 관객은 적었으며 많아져야 할 이유나 방법을 찾지 못했던 내 맘은 더 많은 이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종종 무대 밖으로 기어나갔다. 하지만 주위의 기대를 저버리고 다른 길을 가겠다고 선언할 용기는 없어서 그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때때마다 길은 오히려 다시 무대를 향했다.

 많은 유학생이 중도 포기하고 돌아왔던 IMF 외환위기 중에 나는 독일 정부 장학생으로 유학을 떠났고, 입학한 지 일 년이 좀 지났을 땐 예기치 않던 데뷔까지 했다. 모두가 나를 '럭키 걸'이라 했고 흥미진진한 유럽 무대는 내게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지만, 그 갈등은 여전히 나를 갑갑하게 따라다녔다. 나는 물었다. 나보다 백배의 노력을 들이며 꼭 이 길이어야만 한다는 이들을 두고, 왜 음악에 특별한 열정도 없는 내가 이 길을 가야 하냐고. 하지만 지금 발을 뺄 수 없다면 그 뜻을 알 때까지만 어디 한 번 가보겠노라고 하느님께 '발칙한 딜(deal)'을 했다. 그러다 데뷔 6년 차에 이르러는, 지금으로부터 2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 마음이라면 그땐 누구의 실망도 놀림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 놓고 돌아가 다른 일을 찾겠노라고 다짐도 했었다. 오르는 무대마다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싶어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간절해진 사이 2년은 훌쩍 지났고 이를 한참 후에야 알았을 정도로 어느덧 나는 누구보다 즐겁고 신나게 일하는 유쾌한 음악가가 되어 있었지만 머릿속 어딘가에 '더 충분히 보람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일종의 죄책감이 불씨처럼 남아 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지 근처 도시 구경을 나섰는데 마침 눈앞에 작은 성당이 들어왔다. 어느 낯선 곳이라도 성당에만 들어가면 내 집 같고 마음 차분해짐이 좋아 이날도 여느 때처럼 가만히 앉아 물끄러미 십자가를 보는데 갑자기 '위로'와'기쁨'이라는 두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단어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 위로해주려고, 너 기쁘라고!' 나는 내 노래가 '남들에게' 과연 무엇일까를 고민했는데, 내가 노래를 하는 건 그 노래로 '내가' 스스로 위로받고, '내가' 기쁘기 위함이란다. 누구는 깨달음이라고 누구는 기도의 응답이라고 할 이 말에 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눈이 번쩍 뜨였다. 음악을 못 하면 죽을 것 같았다는 동료들은 이를 일찍이 깨달았던가. 그동안 내게 "당신의 노래로 내 일주일이 행복할 것 같아요" "내 마음이 큰 위로를 얻었어요!"하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그저 연주를 마친 내게 좋은 말을 해주고자 하는 그 선한 의지에 감사했을 뿐. 그런데 이제 내가 위로와 기쁨의 2차 방정식을 풀고 나니 그 마음이 진심일 수 있었음을 알겠다. 다른 이를 위해 무언가를 하기 위해선 그것이 먼저 내게 기쁨과 위로가 되어야 함을. 그리고 그것은 지금껏 노래로 나와 함께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고백하는 데 십 년이나 걸린 나의 발칙한 흥정은 이로써 하느님께 그 꼬리를 내렸다. 이제 내 노래가 다른 이들에게 귀한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내 꿈에도 그 접혀 있던 날개가 펴졌다. 기쁨과 위로를 전하는 노래로 '사랑'이 되어 보라고 그분이 달아놓은 '내 노래 위의 날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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