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 나의 예술

작성자 : admin    작성일시 : 작성일2014-02-01 14:16:42    조회 : 578회    댓글: 1
2014. 01. 26발행 [1250호]
 
[신앙단상] 나의 신앙 나의 예술
 
최종태 요셉 (조각가ㆍ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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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이 내게로 오셔서 내 안에 사시고 나를 성숙하게 하신다. 여린 나를 튼튼하게 키워주시고 비바람을 견디게 도와주시고 높은 데로 인도해 빛과 대면하게 해주셨다. 하느님은 등불과 같아서 내 마음 구석구석을 환하게 비춰 그늘진 곳이 없게 해주시고 그리하여 곳곳을 다 볼 수 있게 해주신다. 죄의 싹은 불빛 앞에서 부끄러워 자라지 못하니 내 마음은 낮과 같은 밝음으로 헛디딤 없이 확실하게 당신의 길만 따라 열심히 가리라.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특별히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면에서 익어가는 과정이 그림으로 여실하게 나타났다. 만년 그 최후의 자화상은 성자의 모습처럼 거룩함이 있었다. 그의 그림 '엠마오의 그리스도'를 보면 정말 기적이 거기에서 지금 막 일어났다는 사실을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만년은 아주 불행했다. 아내가 죽고 나서 가세가 기울어 마지막에는 무일푼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그런 참담함 속에서 그렸는데도 그 자화상이 영원을 가득히 담은 평화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의 마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떤 이는 그가 신비의 빛 체험을 했으리라고도 말했다.

 나는 그 옛날 그리스도 종교에 입문하고부터 종교는 종교로, 그림은 그림으로 그렇게 각각 생각했다. 종교와 예술을 합쳐서 하나로 된 그림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먼 훗날 그 둘이 합쳐질 수 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요즘 문득 뒤돌아보니 지난 10년의 작품들이 모두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세기 화가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이탈리아의 모란디다. 바티칸박물관에서 그의 연필그림 한 점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몇 개의 병을 몇 개의 연필 선으로 그린 것인데 그 옆에 있는 종교 그림들보다도 더 진한 성화로 보였기 때문이다. 모란디는 젊어서부터 캔버스에 유채로 거의 병만 그린 화가였다. 버려진 술병 몇 개를 놓고 평생을 그렸다. 종교와 신앙이라고 하는 것 등 그런 표시가 손톱만큼도 없다. 그런데 그의 모든 그림들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비치는 영성의 빛으로 보였다.

 경주에 갈 때면 나는 남산을 꼭 들려서 온다. 남산 동쪽 끝에 탑골이라는 데가 있다. 높은 암벽에 탑 모양이 새겨져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그 언덕 뒤편 바위 위에는 동안(童顔)의 불상(佛像) 셋이 새겨져 있다. 천 년 전 어떤 도인이 있어 어쩌면 저렇게도 아름다운 형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하루 한나절에 다 깎아냈다 할 만큼 대충 만든 것 같은 부처님 얼굴들. 선각(線刻)으로 된 그 불상들은 석양에 더욱 찬연히 빛났다.

 몇 해 전 내가 전시회를 하고 있을 때 한 제자가 멀리서 찾아왔다. 보자마자 내가 이렇게 말했다. "수많은 세월, 진리를 찾아 동서고금을 누볐다. 그런데 요즘 머리가 잠잠해졌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눈이 안으로 향하면서 내가 내 마음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자가 이렇게 말했다. "밖으로 구하는 바가 없어지면 자유로워진다고 합니다." 아, 그의 말이 참으로 옳았다. 자유란 외부의 여러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내가 눈을 안으로 돌리는 데 한평생이 걸린 것이었다. 남은 시간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구름이 있다. 구름이 가득 차 그것이 하늘인 줄 알았다. 구름 너머에 하늘이 있었다. 그 구름 한가운데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렸다. 그리로 빛이 새어나오는 그런 황홀한 꿈을 꾼다.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이 구름 사이로 새어나오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하느님은 하나일 것으로 믿는다. 나는 이제 나에게서 신앙과 예술이 하나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 저를 살펴보시고 제 마음을 알아주소서. 저를 꿰뚫어 보시어 제 생각을 알아주소서. 제게 고통의 길이 있는지 보시어 영원의 길로 이끄소서"(시편 139,23-24).

댓글목록

작성자: 다다님     작성일시:

한참을 머물렀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