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물의 예술화

작성자 : admin    작성일시 : 작성일2014-01-21 11:49:49    조회 : 521회    댓글: 0
[신앙단상] 성물의 예술화
 
최종태 요셉 (조각가ㆍ예술원 회원)
 
492379_1.0_titleImage_1.jpg
 

   서울 강남에 성모병원(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이 지어지고 이런 일이 있었다. 병실을 비롯해 방마다 십자고상을 걸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즉시 시작해서 일주일 만에 석고 원형을 만들었다. 몇 달이 걸려 브론즈로 된 십자고상이 성모병원 방마다 걸렸다. 두어 달이 지나서 또 얼만가를 더 만들었다. 분실될 것을 감안해서 미리 여분을 준비한다는 이유였다.

 그 작은 십자고상을 만들고서 나는 몸살이 났다. 힘든 일을 한 것도 없는데 웬일일까. 생각해보니 작은 일에 여러 날 집중한 것, 그게 탈이었다. 작은 일이 큰일보다 힘들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 공공건물에 미술가 작품이 방마다 걸리게 된 것이다. 미술가회 이름으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애초 그 일을 생각해낸 이가 장익(전 춘천교구장 주교) 신부였다. 한국 성물은 당대의 미술가들이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의 표상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병실에 계실 때였다. 어렵게 틈을 얻어서 추기경을 만났다. 추기경님은 병세가 위중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유머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문득 벽 쪽으로 눈이 갔다. 내가 만든 십자고상이 거기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삼십 년 전 옛일이 번개같이 떠올랐다.

 1990년대 들어서 성물의 예술화 운동이 미술가들에 의해 시작됐다. 당시 어떤 회원이 방을 내놓고 가게로 삼았다. 막상 해보니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2~3년을 했을까, 가톨릭출판사(당시 사장 박항오 신부)가 그 일을 맡겠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른바 성물의 예술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미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성상이 교우들 안방에 자리하게 되는 큰 변화가 생기게 된 것이다. 로마에도 없는 일이 서울에서 이뤄졌다.

 유럽에서도 예술가들이 성물을 만드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독일의 에기노(Weinert Egino)가 만든 성물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스위스 여행 중에 우연히 작은 성당을 소개받아 들어가 보니 이게 웬일인가, 성당 전체가 에기노 작품으로 꾸며진 것이었다. 십자가, 14처, 제대 등…. 그중에서도 칠보로 된 감실은 참으로 신비로웠다. '박물관에 있어야 할 작품이 여기 있네!' 하고 감탄을 했다. 노틀담수녀회의 백금 목걸이 십자가가 특이해서 물어보니 에기노가 만든 것이라고 했다.

 서양에는 어디를 가나 큰 도시 복판에 대성당이 있다. 대개 어마어마하게 크다. 한 바퀴 구경할라 치면 다리가 아플 정도다. 큰 성당 옆에는 대부분 성물가게가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예술가들 작품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어떤 성물가게에서 십자고상이 하나 눈에 띄었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가 그냥 놓고 나왔다. 지금도 가끔 그 생각이 난다. '사가지고 올 것을….' 값도 백 불이 넘고 그렇긴 했지만 지금도 머릿속에 삼삼하다. 지금 옆에 있다면 여러가지 참고가 될 것인데 말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찾는다. 그러나 실제의 아름다움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아름다움은 형상 너머에 있다. 하느님을 본 사람이 있는가? 요한복음 앞자락에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라고 적혀 있다. 진실로 아름다움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이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종교와 예술은 본래 한 가닥에서 나왔다고 한다. 예술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저 너머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예술작품과 상품의 차이를 구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혼이 있고 없는 것의 차이일 수도 있고, 감정과 정신의 있고 없는 차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은 직관적 행위이다. 직관 안에는 그런 모든 것이 포함된다.

 성물이 상품에서 예술의 차원으로, 그리하여 하느님의 소식이 안방으로 전달된다면 좋은 일이지 아니한가. 괴테가 말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