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서 비워지는 가슴이게 하소서"

작성자 : admin    작성일시 : 작성일2013-12-21 13:50:21    조회 : 457회    댓글: 0
평화신문 2013. 12. 22발행 [1245호]  [신앙단상]  임선혜 아녜스(성악가, 소프라노)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받아서 채워지는 가슴보다 주어서 비워지는 가슴이게 하소서."(김옥진 시인의 '기도' 중)

 다 주고 비워져 한가해진 가슴이고 싶었으나 나는 또 어느새 그 비워졌던 가슴에 무언가를 가득 채워 돌아오고 말았다.

 2009년부터 해마다 해온 '소프라노 임선혜의 희망 나눔 콘서트'(이하 희나콘)는 내가 직접 함께할 동료들을 섭외해 프로그램도 짜고 공연 중엔 곡 설명 및 진행도 하는 사적인 콘서트다. 평소 공연 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클래식을 전하고 싶어 지난해까지 매년 5월 명동성당에서 열었는데, 내가 장소와 시간을 정해 무료공연을 열면 그들이 와줄 거라 기대했던 어리석음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고 본래의 뜻은 점점 이루기가 어려워져 과연 이 음악회를 계속 해야 하나 내심 고민이었다. 그러던 올 여름, 한 본당의 새 성전 입당 음악회와 한 장애인시설의 가족캠프 음악회를 동시에 부탁받은 것은 내 막연했던 고민이 즐거운 상상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됐다.

 나는 이 두 공연을 바탕으로 '1+1(하나 더하기 하나) 콘서트'라는 새로운 개념의 희나콘을 기획했다. 예를 들면 뜻이 있는 도시 본당과 시골 본당을, 또는 예산이 있는 큰 기관과 사회복지시설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자는 것으로, 희나콘의 좋은 공연문화를 접할 기회가 먼 이웃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청중들의 '기회 나눔'을 통해 그리고 '나눔의 고리 엮기'를 통해 세상에 작은 희망이 되는 콘서트를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변신한 희나콘의 첫 무대는 별빛 쏟아지는 그 장애인시설의 야외 마당이었다. 마침 가족캠프 차 방문한 부모 형제들과 나란히 앉아 공연을 기다리는 저마다의 모습엔 흥분이 가득했다. 우리는 프로그램이 내용이나 시간상으로 부담되지 않도록 주의했고 공연 중 돌발 상황에 대해서도 숙지했는데 우리의 염려가 무색할 만큼 이들의 흡수력과 집중력은 대단했다. 이에 피아노가 없는 야외무대에서 키보드 반주에 노래하는 성악가도, 콘크리트 바닥에서 점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던 무용수도 자신의 예술 장르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더하며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려 온 마음을 다했다. 그 모습은 '황홀한 몸짓' 그 자체였다.

 내가 마지막 곡으로 '거위의 꿈'을 함께 노래하자고 했더니 오래 참았던 몇몇 장애인 친구들이 부리나케 무대로 뛰어 올라왔다. 결국 공연자들과 관객이 무대 위에서 즉석 만남을 가지며 '웃는 그 날을 함께 해요~!'까지 손잡고 불렀다.

 "누구에게 폐가 될까 노심초사하며 음악회는커녕 영화관에도 마음 놓고 못 갔다"는 가족들은 "어떻게 아이들이 장시간 어두운 데서 고요히 듣고 있는지 참으로 정겹고 신기했다"며, "아무 데서나 볼 수 없는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보면서 따뜻한 배려의 마음과 겸손함의 향기 속에서 진실한 사랑을 배웠고 이제 잊었던 음악 듣기도 다시 하게 되었다"는 가슴 뭉클한 캠프 후기를 시설 소식지에 남겼다.(결과적으로 이 멋진 밤을 가능케 한 그 입당 음악회에서도 우리 모두가 고마움을 담아 모든 열정을 다했음은 물론이다!)

 돌아보면 진심이 닿은 만큼 우린 행복했다. 일상의 무대를 벗어나 관객과 더 가까운 데서 내가 하는 일과 작품에 대해 그들과 눈 맞추고 이야기하는 동안 이 일이 얼마나 내게 좋고 소중한지를 새삼 느꼈다. 이 모든 기억은 지쳤던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에게 든든한 무기이자 비상식량이 되어주리라는 것도 예감했다.

 나의 다시 채워진 가슴 역시 다 비워내지 못했음에 조금 미안했지만 많이 행복했다. 물고기 달랑 두 마리 내어놓고 남은 빵 열두 광주리를 함께 나눠 품에 가득 안고 돌아가는 이 나눔의 기적이 해마다 새롭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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