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시의 이민수 조각가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2-02-19 21:48:46    조회 : 55회    댓글: 0

한파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달 중순 양주시 백석읍에 위치한 이민수 조각가(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축사로 사용하던 건축물을 개조한 작업실에는 조각가의 예술혼이 깃든 각종 조각 도구와 소소한 작품들이 기자를 반겼다. 

안타깝게도 주요 작품들은 강원도 고성군에서 진행 중인 전시회에 출품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조각가의 삶이 묻어난 공간으로는 손색이 없었다. 그가 건넨 명함에도 오랜 세월 작품을 창조한 작가의 손 사진이 담겼기에 확고한 그의 예술 세계를 가늠하기에 차고 넘쳤다. 

지역에 익히 알려진 이 작가의 주요 작품은 의정부시의 명소가 된 행복로 광장 ‘태조 이성계 기마상’을 비롯해 양주시청 ‘군청사 정초석비’, 백석읍사무소의 ‘백석’ 등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지역의 한계를 넘어 보다 국가로, 세계로, 우주로 뻗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양주시의 명물이 될 조건을 필요하고도 충분하게 갖췄다.


강원도 고성 피움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다시’.
# 창작품 뚝딱 만들던 소년, 화가를 꿈꾸다

이 작가는 농업이 전부였던 1960년대 초 태어났다. 대다수가 그랬듯 부모의 전답을 물려받아 농부로 사는 삶을 숙명이라고 여겼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소질을 발견했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다양한 소재의 그림을 그렸고, 무엇이든 만드는 데 몰두하는 소년이었다. 시골 어린이가 화가나 조각가라는 개념조차 감히 상상하지 못했지만, 어른이 되면 지금의 관심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결심을 굳혔다.

이 작가는 1994년 33세 늦은 나이에 서울대학교 미대를 졸업하고 양주군 어둔리에 축사를 개조한 작업 공간을 마련했다. 그는 본인만의 예술을 마음껏 펼칠 공간을 생애 처음으로 마련했다는 생각에 설렘이 컸다고 회상했다.

그는 작업실의 이름을 비어 있는 조각 세계의 장중함을 의미하는 ‘이각공장’으로 지었다. 본인의 성인 ‘이’와 직업의 세길 ‘각’, 빌 ‘공’, 장중할 ‘장’을 조합했다. 물질인 조각에 비물질인 정신과 초월을 가미하자는 속내를 담았다.

당시 우여곡절도 많았다. 작업실이 개발제한구역에 걸친 탓에 단속과 철거, 재보수를 반복하면서 공간을 유지했다. 외진 곳에 위치해 최상의 창작 능력이 발휘되는 자신만의 첫 작업실에 대한 애착이 그와 같은 고생을 감수하게 만들었다.

당시 행정명령으로 철거를 주도한 공무원조차도 작업실에 애착이 강했던 그를 가엾게 여겼는지, 마음 편하게 다른 곳으로 작업실을 이전하는 편이 어떤지 정중히 양해를 구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는 공무원의 진심 어린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고 작업실을 꾸준히 유지했다. 때문에 27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청춘을 보낸 양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작업에 매진한다. 


이민수 작가가 의정부시에 세워질 태조 이성계 기마상을 제작하고 있다.
# 절차 까다로운 소조 분야 전문가로 우뚝

이 작가는 절차가 까다롭고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탓에 조각 분야에서도 꺼리는 경향이 있는 ‘소조’ 전문가다. 미술의 한 장르인 조각 기법은 조각, 소조, 아상블라주(집성미술) 세 영역으로 나뉜다. 이 중 소조는 찰흙이나 밀랍처럼 점성이 있는 재료를 덧붙여 나가면서 입체적 형상을 빚고 반영구적인 청동 같은 재료로 주조하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미술 기법이다.


의정부시 행복로에 설치된 작품.
그는 "급변하는 현대사회에는 소조가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면서도 "보다 정성 들여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매력 때문에 소조를 고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작업할 때 작품을 탄생시켜야 하는 이유, 즉 목적성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의정부시에 설치한 태조 이성계 기마상은 "왜 의정부에 이성계 동상이 있어야 하는가"하는 물음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고 한다. 

이성계는 조선 초기 왕자의 난 이후 고향인 함흥 지역으로 갔다가 다시 한양으로 복귀하기 전 정승들과 현재의 의정부 지역에서 정사를 논의했는데, 당시 현재의 국무회의 격인 ‘의정부’가 유래가 돼 지역명이 됐다. 그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목적성으로 되새겨 지금의 용맹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이성계 기마상을 제작했다.

이 같은 작업 정신 때문에 그는 기억에 남는 자신의 작품은 있어도 순위를 매길 만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작가는 "사람들이 작품을 평가하는 중요도가 다르더라도 제작한 작품들은 전부 목적성이 투영됐기 때문에 어떤 작품을 창조해 내더라도 그 가치가 동일해 우선순위를 평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그는 영감의 대부분은 남의 노력이나 자신의 경험에서 힌트를 얻거나 재해석하기 때문에 작업을 할 땐 그 이상의 창조성을 발휘하고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피움미술관 개관전에서 열린 이 작가의 전시회 ‘순간에서 영원으로’에서 선보인 ‘순간’, ‘다시’ 등 다양한 작품들에도 그의 생각이 반영됐다.

이 작가는 "모든 작품을 구상할 때 얻는 영감은 특별하지 않다"며 "살면서 느낀 점들을 결부시켜 작품을 만들어 낸다"고 설명했다.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에 기증한 故 김수환 추기경 조각상.
# 김수환 추기경 조각상 기부…비겔란 공원에 버금가는 전시 공간 설립 꿈 

이 작가는 인물의 상징성에다 조각의 난이도까지 상당한 ‘의인 기마상’을 제작하는 일은 매우 영광스러운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그는 이성계 동상뿐만 아니라 장성군 상무대 내 윤관 기마상도 건립해 특출한 이력을 자랑한다. 윤관은 여진 정벌군의 원수로 9성을 쌓아 침범하는 여진을 평정했던 고려시대 명장이다.

그는 "의인 기마상을 만든 국내 몇 안 되는 작가로서 영예를 안았다"며 "개인적으로 전주이씨 양녕대군파인 저의 선조인 태조 이성계와 파평윤씨 어머니의 조상인 윤관, 즉 직계와 모계 양가 위인의 기마상을 건립했다는 데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특히 이 작가는 군위읍 용대리에 위치한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에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조각상을 기증하기도 했다. 만인을 포용할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조각상은 추모기념관 입구에 세워져 마치 생전의 모습처럼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이 작가는 김 추기경 조각상을 제작할 때도 작품의 목적성에 집중했다. 사람들을 보듬었던 추기경의 삶을 토대로 포용하는 조각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심지어 전기열선을 심어 동상의 온도를 사람의 신체 온도인 36.5℃로 설정하는 참신함을 더했다.

그가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한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의 비겔란 조각공원’을 세우는 일이다.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Vigeland, 1869∼1943)은 1915년 그의 제자들과 제작한 조각 작품 200여 점을 노르웨이 오슬로시에 기증한 덕에 야외 조각공원이 탄생했다. 

비겔란 조각공원은 연중 매일 24시간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개방되면서 지금까지도 오슬로의 관광명소로 주목받는다. 


작품 제작에 열중하고 있는 작가.
이 작가는 조각공원에 배치된 모든 작품들이 온전히 비겔란 본인이 직접 제작하고 배치했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 나아가 동양의 비겔란으로서 자신의 작품 가치를 인정해 주고, 공간을 내어줄 지자체가 있다면 언제든 기증할 준비가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30년간의 각성으로 실천한 작품 활동이 운이 닿아 전시 공간 탄생으로 마무리될지 스스로도 궁금하다"며 "작품 활동의 근거지인 양주시가 내가 바라는 전시 공간의 최적지라는 사실은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양주=전정훈 기자 jjhun@kihoilbo.co.kr

  김상현 기자 ksh@kihoilbo.co.kr

사진=<이민수 작가 제공>

출처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http://www.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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