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의 인류사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2-02-15 22:08:22    조회 : 231회    댓글: 0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얼마 전부터 애청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신인’ 개그맨 이경규의 입담이 재미있다. ‘하이틴 스타’ 강수지의 ‘라이브’ 음악도 즐겁다. 유튜브의 마법이다.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최초의 메타버스는 무엇일까? 동굴 벽화는 수만 년을 넘나드는 그래픽 기반 저장장치이지만, 이보다 훨씬 널리 쓰인 저장장치가 있다. 바로 음성 기반의 이야기다. 최초의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신호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말문이 트인 인류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야기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인류가 미래의 인류에게, 30년 전의 이문세씨가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걸었다.

라디오 이야기를 했으니, 텔레비전 이야기도 해보자. 진화인류학자 크리스토퍼 린은 텔레비전이 ‘사회적 불빛’이라고 했다. 우리는 최소 79만 년 전부터 불을 사용했다. 불은 흩어지면 꺼지고, 모이면 커진다. 장작은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모닥불’의 어원은 ‘모아 피우는 불’이다. 그러니 불을 쬐려면 사람도 모여야 한다. 밤마다 어른거리는 모닥불 곁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불멍 속 대화는 뭔가 달랐다. 대낮에 수렵채집인이 나누는 이야기는 둘 중 하나다. 사냥 전략 등 기술적 대화, 그리고 타인에 관한 소문 등 사회적 대화다. 그러나 불 옆에선 달랐다. 집단의 오랜 전통, 다른 부족원을 조우한 경험, 먼 곳으로의 모험이 주된 소재였다. 빅스토리다. 게다가 어느 한 명의 이야기도 아니다. 여럿이 나눠 가진 기억에 창작이 더해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어제에 관한 각자의 평행세계가 경합하며, 오늘의 세계관이 생겨난다. 린의 주장에 따르면, 텔레비전은 현대인을 위한 모닥불이다. 불빛은 물론이고, 이야기거리도 제공한다. 같이 봐야 더 재미있는 이유다. 요즘은 이야기를 나눌 친구도 제공한다. 주커버그는 나에게 수천 명의 ‘이야기 친구’를 선물했다.

약 10년 전 일이다. 여러 가전회사에서 서로 질세라 3D 텔레비전을 출시했다. 다들 여기에 미래가 달려있다고 했다. 터무니없는 전망이었다. 첫째 안경을 쓰면 옆 사람과 이야기하기 어렵다. 두 눈으로 화면을 응시해야 입체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입체로 보이는 등장인물은 대화의 소재가 아니라, 대응해야 할 상대로 인식된다. 우리는 낯선 상대 앞에서 긴장한다. 놀이공원처럼 각성 경험이 필요한 곳에서만 입체 영화가 흥행하는 이유다. 인류학자의 조언을 들었더라면 3D TV 개발비를 아낄 수 있었을 테다.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 종종 메타버스의 필수 조건으로 현실과 흡사한 정교성을 꼽는다. 그러나 역시 놀이공원에서나 성공할 것이다. 게임 마인크래프트의 그래픽은 정교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이야기가 있다. 참여자는 서로 소통하며 집단의 이야기, 아니 세계관 자체를 만들어낸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와 함께 모험을 벌이는 신화적 평행세계다. 마인크래프트 개발사는 단지 상상의 무대를 모닥불에서 컴퓨터 화면으로 옮겨주었을 뿐이다. 1억 명이 넘게 사랑하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이다. 디테일이 너무 현실적이면, 상상력은 힘을 잃는다.

메타버스의 성공은 가상현실 구현 기술에 달린 것이 아니다. 단말기에 오감을 연결하여 가짜와 진짜를 혼동하는 이상한 미래는 없다. 자꾸 얼굴에 뭘 씌우려고 하지 말자. 중요한 건 감각이 아니다. 이야기다. 복수의 평행 세계가 시공간을 종횡하며 자유롭게 엮이던 기나긴 인류학적 과거가 바로 메타버스의 미래다. 오랜 진화적 본성에 들어맞으면, 사람들은 알아서 모여든다. 모닥불이 그랬고, 텔레비전에 그랬고, 페이스북이 그랬다. 판만 잘 깔리면, 이야기의 전달, 즉 ‘전설’이 바로 시작될 것이다. 누가 먼저 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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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2150300085#csidx37a86cc19c10567bdc1e1a8e514bc7d onebyone.gif?action_id=37a86cc19c10567bdc1e1a8e514bc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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