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정상옥 수필가

[동양일보]팔월을 순우리말로 타오름 달이라 한다.

하늘에서는 해가 타고 땅 위에서는 가슴이 타는 정열의 달이란다. 이름에 걸맞게 이글

거리는 태양이 세상을 녹일 듯 며칠째 극성을 부리며 대지를 태우니 밤낮으로 더위에 

지친 가슴도 지글지글 탄다.

일 년 열두 달에는 각기 다른 우리말 이름이 있다.

1월을 해 오름 달, 2월 시샘 달, 3월 물오름 달, 4월 잎새 달, 5월 푸른 달, 6월 누리달,

 7월 견우직녀 달, 8월 타오름 달, 9월은 열매 달, 10월 하늘 연달, 11월 마름 달 12월은 매듭 달.

순우리말로 지어진 월별 이름은 참 예쁘기도 하지만 이름마다 한 달 한 달 변화되어 

돌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심오한 의미로 담고 있는 듯하다.

내게도 세 개의 이름이 있다. 하나는 태어날 때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있고 또

 하나는 가톨릭에 입교하며 하느님의 자녀로 부여받은 세례명이다. 그리고 또 하나 

별호別號가 있다.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은 나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허나 죽기 전까지

 살아있는 나를 대신할 존재의 상징이고 훗날 하늘의 별이 된다고 하여도 나를 기억하

는 누군가에게는 또 불릴 것이다.

자식의 이름을 함부로 짓는 부모는 세상에 없을진대 서로 상(相)에 구슬옥(玉)이라 불러

주신 내 부모님은 어떤 심오한 의미와 뜻을 부여하셨을까.

세상 두루 두루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옥구슬 같은 자식이 되길 염원하셨다면 이 나이

가 되도록 빛나고 뛰어난 업적 하나 이루지 못했으니 이름하여 제값을 다하지 못한 

불효가 분명하리라. 값진 옥구슬처럼 빛내진 못했어도 둥글둥글 한세상 모나지 않게 

여태껏 살아왔노라며 하늘에 계신 부모님 전에다 죄송함을 대신하여 흐드러진 너스레

 한번 떨어볼까.

거룩한 성사로 명받은 세레나도 사실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산다.

천주교 신자로서 지켜야 할 기본 정신인 믿음, 사랑, 봉사 중 어느 하나도 성실하게 

실천하지 못하고 사니까 말이다. 신자로서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실천

해야 함이 삶의 우선이건만 겨자씨보다 작은 믿음은 살랑 바람결에도 흔들리고 영적 

생활보다는 외적 생활로 분주하게 사는 미약한 신심을 성모님께서 보신다면 어찌할까.

덕향德香이란 별호別號 앞에서는 어깨가 더 무겁다.

멀리 있어도 마음의 향기가 풍겨오는 사람이라 하여 별호를 지어주신 한학자께서 서

슴없이 덕향이라 불러주시니 그 별호 앞에서 한동안은 몸 둘 바를 몰랐었다. 늦은 나

이에 얻은 과분한 별호 안에는 자신의 몸을 낮추고 어질기를 크게 하여 두 두 물물 덕

을 베풀며 살라는 뜻이 담겨있기에 더 부담이 갔다. 이제라도 너그럽고 푸근한 마음을

 추스르며 온유하게 살아야 덕향이란 이름값을 조금이라도 할듯싶다.

평범하고 소박할지라도 빛나지 않는 이름이 세상에 하나라도 있을까.

나를 대신하는 이름 아래서 주어진 삶의 소임을 다한다면 값어치는 옥구슬보다 더 환한

 빛을 발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