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삐딱한 것의 미학 이탈리아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0-07-12 15:18:57    조회 : 370회    댓글: 0

[강영환의 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47)]삐딱한 것의 미학이탈리아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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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09  21: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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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사의 성문을 들어서면 순백색 대리석으로 휘감은 원통형 건물의 세례당, 마치 아케이드처럼 연속적인 작은 아치로 정면부를 장식한 로마네스크식 성당, 그리고 그 뒤에 삐딱하게 고개를 내민 종탑(사탑)이 차례로 나타난다.

중세 자치도시간 대립과 경쟁으로
독자적인 문화 형성한 유럽 도시들
십자군 전쟁으로 세력 넓힌 피사엔
이탈리아인의 고집·유머 담은 사탑
비정상·삐딱함이 주는 특별함 뽐내


새벽 안개가 피어오르는 토스카나의 전원풍경은 동화 같은 환상과 서정을 그려준다. 얕은 구릉지를 조각보처럼 덮고 있는 포도밭들, 언덕 위에 비쭉 솟은 꺽다리 우산 소나무, 그리고 열병하듯 꼿꼿이 늘어선 사이프러스, 그 사이로 난 길 끝에 붉은 기와를 얹은 돌집들이 영화 글라디에이터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일본인들이 홋카이도를 개발할 때 왜 토스카나를 열망했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그 서정적 평화의 이면에 악다구니 같은 전쟁의 역사가 일상이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목가적인 전원사이에 나타나는 고성들은 시간을 중세로 돌려놓곤 한다. 고색창연한 고성들은 대부분 중세라는 시대적 경관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 하나하나가 암흑기라는 시대상이 무색하게도 아름답고 독특한 개성을 갖는다. 백마 탄 기사들과 아름다운 공주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결코 어색하지 않은 시대적 경관이다. 하지만 중세가 그리 로맨틱한 시대만은 아니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이탈리아는 봉건영주들이나 주교들이 다스리는 작은 봉건국가로 쪼개졌다. 11세기부터는 성곽(Castello)을 중심으로 한 자치도시(Comune)가 발생했다. 중앙 권력이 약화된 정치지형 위에서 작은 국가들끼리 지역의 패권을 다투는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편 자치도시들 간의 대립과 경쟁은 도시마다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도시경관은 물론이거니와 기념물, 예술작품 등에 있어서도 비교를 서러워할 만큼 독특한 개성이 발현됐다. 그 유명한 피렌체, 시에나, 피사, 산지미냐뇨 등의 독특한 도시경관과 건축유산들도 바로 이러한 자치도시의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기울어진 탑(사탑)’으로 유명한 피사(pisa)도 실은 토스카나의 유력한 도시국가 중 하나였다. 피사는 14세기 이전까지 지중해의 중심적인 군사기지이며, 무역기지로 부흥했던 해양강국이었다. 십자군 전쟁은 피사가 코르시카와 북아프리카 연안을 넘어 아랍세계까지 세력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제노아, 베네치아와 함께 중세의 해양공국을 이루었고 토스카나 지방에서는 피렌체와 더불어 각축을 벌이던 항구도시로 번성했다. 침략 전쟁으로부터 얻은 전리품들은 도시의 거대한 기념물을 건설하는 재원이 되었다.

사탑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피사의 성문을 들어서는 순간 거대한 기념물들이 열 지어 나타난다. 순백색 대리석으로 휘감은 원통형 건물의 세례당, 마치 아케이드처럼 연속적인 작은 아치로 정면부(파사드)를 장식한 로마네스크식 성당, 그리고 그 뒤에 삐딱하게 고개를 내민 종탑(사탑)이 현기증 같은 충격을 선사한다. 눈부시게 하얀 대리석과 자수를 놓은 레이스처럼 정교한 창호 장식들은 귀부인의 미사포처럼 정교하고 화려하다. 건축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정교한 수공예품, 가히 이탈리아 종교건축의 보석이라 할만하다.

본래 로마네스크(romanesque) 양식은 장식성이 별로 없는 육중하고 근엄한 모습이 그 특징이다. 로마건축의 장기인 석재 조적식 외벽을 두르고 아치와 볼트를 사용하여 내부공간을 만들었다. 두터운 벽체에 창호도 작아 어둡고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지만 피사의 대성당은 백색 대리석을 사용하여 입면을 경쾌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정면부 전체를 작은 아케이드로 장식하여 수공예적 파사드를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이른바 토스카나식 로마네스크의 발현이다.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은 성당에 부속된 종탑일 뿐이다. 비딱하게 기울어진 것으로 유명하지만, 기울어지지 않았어도 경탄할 만큼 아름다운 탑이었을 것이다. 높이 56m에 이르는 8층짜리 원통형 건물을 온통 아케이드로 둘렀다. 피렌체에 있는 조토(Giotto di Bondone)의 종탑이 ‘과거 그 누구의 작품보다 완전하다’라는 칭송을 받고 있으나, 피사의 사탑만큼 입체적이지는 못하다. 가히 중세시기의 건축 작품 중 조형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종탑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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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12세기에 시작된 이 탑은 4층 정도 올라갔을 때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대지의 한쪽이 연약지반이라는 사실을 알고 공사를 중단하게 된다. 공사는 13세기에 재개되었지만 이들은 기울어진 채로 나머지를 짓기로 결정했다. 새로이 지반을 조성하여 똑바로 지을 생각은 없었나 보다. 기울어진 채로 계속 보정하며 쌓아갔다. 이렇게 199년이 걸려 완성한 것이다. 쌓다보니 너무 기울어져 원래 계획보다 낮은 높이에서 마감했다고 한다, 수학과 물리학의 천재인 갈릴레이와 피보나치가엔이곳 출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탑을 기울어지게 짓는 일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게다.

내부에는 원통탑으로 정상까지 비워져 있다. 처음에는 느긋하게 계단을 오르지만 5층 정도 지나면 계단도 한쪽으로 치우쳐 홈이 패일 정도로 경사를 느끼는 순간 공포감 엄습한다. 20층 높이의 계단을 뺑뺑이 도는 어지러움에다, 쓰러지는 팽이처럼 삐딱하게 오르면 속이 울렁거리는 공포증을 선사한다. 그래도 올라야하는 것이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의 가벼움’이다.

사탑은 이탈리아인들의 고집스러움과 유머스러움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그 ‘삐딱함’ 덕에 오늘날 피사를 대표하는, 아니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관광 상품이 됐다. 비정상적이기에 특별한 것이 되고, 특별하기에 관광거리가 되고, 그 덕에 후손들이 먹고사는 것이다. 족히 비싼 점심 한 끼 값을 지불하고, 예약시간을 잡고, 가방 맡기고, 몸수색 당해야만 올라갈 수 있는 곳, 하지만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와서 안 올라가볼 사람도 없을 법하다. 이젠 탑을 똑바로 세우자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경상일보, KS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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