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어둠 몰아내는 기수...세상 구원할 것---빛의 사제 김인중 신부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0-03-15 15:08:05    조회 : 42회    댓글: 0

"예술은 어둠 몰아내는 기수…세상 구원할 것"

화업 60년 회고전 여는 `빛의 사제` 김인중 신부

샤르트르 등 유럽 유명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제작
동양 여백·서양 색채 조화 극찬

코로나 확산에도 고국 찾아
"사제 화가로서 희망 주고파


서울 서초동 숙소에서 만난 김인중 신부가 성서를 빛과 색채로 표현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재훈 기자]
사진설명서울 서초동 숙소에서 만난 김인중 신부가 성서를 빛과 색채로 표현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재훈 기자]
`빛의 사제`로 불리는 김인중 신부(80)의 붓 끝에서 번지는 물감은 신(神)의 뜻이다. 그가 제작한 유럽 곳곳의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 주황색과 푸른색, 노란색, 초록색 등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신비한 빛의 파장을 빚어낸다. 성서 이야기를 구체적인 형상이 아니라 추상화로 풀어내 더 많은 말씀을 품고 있는 것 같다. 파리 도미니크 수도회에 머무르면서 "나는 보잘 것 없는 당신의 도구일 뿐, 아무것도 모르니 영감을 달라"고 집요하게 요청하는 김 신부의 기도에 대답이기도 하다.
2010년 프랑스 튈(Tulle)에서 열린 김인중 신부 전시장을 찾은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오른쪽).
사진설명2010년 프랑스 튈(Tulle)에서 열린 김인중 신부 전시장을 찾은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오른쪽).
서울 예술의전당 회고전 `빛의 꿈`을 앞두고 방한한 그는 "내 스승은 성령이다. 서커스를 좋아하는데 긴 쇠막대기 한 쪽에는 겸손, 다른 한 쪽에는 완전한 신뢰를 두고 앞에 있는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줄타기를 하듯 작품을 만든다"고 말했다.

60년 화업을 정리하는 이번 전시는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회화 100점, 도자기 15점, 스테인드글라스 5점 등 120여점을 펼친다. 구약성서 시편에 영감을 받은 그림을 묶은 화집도 출간된다.

주변의 만류에도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는 고국에 온 그는 "사제 화가로서 천재지변에 함께 기도하고 희망을 주는 전람회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예술은 어둠을 몰아내는 기수(旗手·깃발을 든 사람)가 되어야 한다. 해가 저렇게 아름다운데 구름이 껴서 빛이 제대로 안 들어오니까 구름을 찢어 광선이 들어오게 해야지 않겠나. 도스토예프스키도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소설 `백치`)고 했다. 지금까지 어둠이 빛을 이겨낸 적은 없다. `빛의 사제`라는 별명처럼 빛을 통해 희망을 전하고 싶다. 아름다움과 빛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야 한다."

김인중 회화 성 기욤에 대한 오마주. 사진제공 갤러리미
사진설명김인중 회화 성 기욤에 대한 오마주. 사진제공 갤러리미
예술은 그의 삶도 구원했다. 29세까지 한국에 살면서 뜻대로 되는게 별로 없었지만 그림 재능이 사제의 길로 이끌었다. 서울대 미대 졸업 후 가톨릭 신학교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면서 "나도 여러분과 같은 길을 걸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세례도 안 받은 채 2년간 서울 혜화동 성당을 다니다가 어느날 `신부가 되라`는 계시를 강렬하게 받았다고 한다.

"중학교 때 야구를 좋아했지만 실력이 안 되서 야구 선수들을 부러워만 했다. 고교 때는 이종상 화백이 친구였는데 그의 재능을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내 안에 숨어있는 재능을 몰랐다. 다행히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62년)에 비구상 부문이 생겨 특선을 했다. 그 전시를 관람한 미국 로버트 콜스 교수가 내 작품을 찍었다고 들었다. 서예가 못지 않은 아버님, 색채화가 수준의 어머니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물고기는 연못에서 놀면 안된다`고 생각한 그는 1969년 예술과 사제 꿈을 이루기 위해 단돈 100달러를 들고 스위스 프리부르대로 유학을 떠났다. 일단 미대에 등록한 후 신학 수업만 들었다. 밤마다 동물원 야간경비를 하면서 1년치 생활비를 벌어 파리 가톨릭대학으로 갔다. 고국의 부모님이 8남매 중 장남인 그에게 `한국 와서 빨리 결혼하라`는 편지를 계속 보냈지만 5년간 묵묵히 사제 수업을 받았다.

김인중 Sans titre
사진설명김인중 Sans titre
그는 "한국에선 스물아홉살에 어린 친구들과 신학교 수업을 듣는게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 유럽으로 갔다. 서울 신학교에서 내가 미술을 가르친 이용훈 천주교 수원교구장 등 제자 3명이 주교가 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회고전을 앞두고 돌이켜보니 학군장교(ROTC)를 거쳐 군복무 시절부터 사제와 유학 꿈이 시작된 것 같다고 한다. 비무장지대(DMZ)에서 새들이 자유롭게 북한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도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가을에 들국화가 만개했을 때 소대원 30여명에게 메뚜기를 잡으라고 시켰다. 뭔가에 집중하면 고향 생각이 안 나고 메뚜기를 볶아 먹으면 배고픔도 잊었다. 겨울 강추위에는 솔가지로 불을 피워 군법정에 설 뻔 했다. 사병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사제가 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은 것 같다."

1974년 도미니크수도회에서 사제품을 받은 그는 수도원 지하실에서 그림을 계속 그렸다. 치열하게 절차탁마한 예술과 깊은 신앙심은 1989년 프랑스 앙굴렘 세례요한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신비한 빛을 발한다. 동양의 여백과 서양 색채가 조화된 새로운 추상화 형태 스테인드글라스에 보수적인 프랑스 가톨릭계가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1998~1999년 스위스 건축 거장인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프랑스 에브리 대성당, 2006년 대표적 고딕건축인 샤르트르 대성당, 2007~2009년 로마네스크 양식인 브리우드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그의 작품이다. 2003년 프랑스혁명 이후 전시회가 열리지 않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그의 작품을 펼쳤고, 지난해 6월 프랑스 앙베르에 `김인중 미술관`이 설립됐을 정도로 추앙받고 있다.

추상화로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하는 이유에 대해 김 신부는 "성서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마티스 말처럼 입으로 설명할 것이면 설명하지, 무엇 때문에 그림을 그리냐"고 했다. 물감이 흘러내리고 퍼지는 듯한 화법 비결을 묻자 그는 "여성이 아름답다고 어떤 화장품을 쓰는지 물어보면 실례"라고 답했다.

김인중 유화 Sans titre
사진설명김인중 유화 Sans titre
유럽에서는 그의 작품 세계를 각각 피카소, 샤갈, 마크 로스코와 연결시킨 책 3권이 출간됐다. 중세 스테인드 글라스를 추상화로 파격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현대미술 대명사 피카소에, 생명이 넘치는 색채는 샤갈과 로스코에 견줄만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김 신부와 피카소, 샤갈, 로스코의 공통점은 그리스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비잔틴 미술을 섭렵하고 스페인에서 진정한 예술을 구축한 엘그레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태어난 국가와 미술을 공부하고 작품 세계를 꽃피운 나라가 다른 범세계적 작가다.

김 신부는 "이번 전시는 엘그레코에 대한 봉헌이기도 하다. 회고전이 끝나면 나의 제2인생이 시작된다"고 했다.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머무를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51년전에 떠나서 우리나라를 잘 모른다. 울릉도, 통영, 소록도 등을 둘러보고 한달 후 떠날 것"이라고 답했다. 지금 농구장에 가서 자유투를 쏘면 절반 이상 들어갈 정도로 건강하다고도 했다.

김인중, Sans titre, 갤러리미
사진설명김인중, Sans titre, 갤러리미
인터뷰가 끝난 후 그는 샤갈과 자신의 작품 세계를 분석한 책에 자필 서명을 하고 `모든 활동이 빛으로 향해 빛으로 환원되기 기원합니다`고 쓴 후 선물했다. 허투루 살아선 안 되겠다는 숙연함이 밀려들어왔다.

갤러리미가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18일부터 4월 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열린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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