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의 ‘음악과 삶’
지난 4월 21일에 향년 88세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에 자연생태계의 파괴에 대해 걱정했고 이와 관련해서 회칙을 발표하는 등 실천적 모습을 보였다.

2013년 3월, 첫 기자회견에서 프란치스코 전 교황은 자신이 교황으로서 사용할 새 이름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 d’Assisi, 1182~1226)에서 따왔다고 밝혔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빈자들에게 관심을 보였고 그에 따라 의미 있는 실천을 했다. 이 성인을 본받으려 노력했을 프란치스코 전 교황도 가난한 이들의 구원과 관련해서 훌륭한 일들을 많이 해왔다. 그런데 이 두 위대한 인간이 공유했던 관심이 하나 더 있었다. 생태계에 관한 관심이었다.
가톨릭교회는 오래전부터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경고해왔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199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지구 환경파괴의 위험성을 경고했고 소비주의적 생활 방식을 바꾸자고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전 교황은 2015년에 ‘찬미 받으소서’라는 회칙을 반포했다. ‘공동의 집’ 지구를 돌봐야 하는 신앙인의 소명을 지적한 교회 최초의 생태회칙이었다. 이 회칙에서 프란치스코 전 교황은 자연생태계의 파괴는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과 분리될 수 없다면서 통합적 생태론을 강조했다. 이후 세계의 교회는 이 가르침을 바탕으로 실천적 대응을 해왔다(박영효, 「프란치스코 교황 생태회칙 ‘찬미 받으소서’ 읽고 되새기기」, 가톨릭신문, 2022.03.13).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도 동물들을 소중히 대하는 소박하고 자연 친화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중부 이탈리아의 소도시인 아시시(Assisi)에서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 향락적인 삶을 살다가 몇 번의 계기를 통해 부친의 길, 즉 사업가의 길을 거부하고 교인의 길을 걸었다. 26세가 되던 1208년, 그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당부했던 무소유의 삶을 살겠다고 작정하며 뜻을 같이하는 동료 11명과 함께 ‘작은 형제들’이라는 단체를 조직했다. 당대의 교황이 이 조직을 수도회로 공인했고, 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은 이 수도회를 중심으로 선한 활동을 많이 했다. 많은 이가 그를 좋게 평했는데, 인도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백 년마다 한 번씩 성 프란치스코가 태어난다면 세상의 구원은 보장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러 나라에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이라는 성당이 지어졌고 미국의 한 도시는 그의 이름을 본떠서 지어졌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인간에게 하느님이 창조한 피조물들의 관리자로서뿐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자연을 보호하고 사랑할 의무가 있다고 설교했다. 이런 설교자였던 그와 관련한 유명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 하나는 늑대를 존중하고 먹거리를 주어서 마을을 공격했던 늑대를 온순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새들에게 설교했다는 이야기다. 이 두 번째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소개한다. 어느 날, 프란치스코가 수도사들과 함께 산책하다가 길 양옆에 있는 나무 위에 수많은 새가 가득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동료 수도사들에게 “제가 저의 자매들인 새들에게 설교를 좀 할 테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라고 말하고는 새들에게 다가가서 설교를 시작했다. 새들이 그의 주위로 날아와서 설교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듣고 있었단다. 단 한 마리도 날아가지 않고.
헝가리계 독일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1811~1886)는 <두 개의 전설>이라는 피아노곡 중 첫 번째 곡에서 이 이야기를 음악화했다. 첫 번째 곡의 제목은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이다. 두 번째 곡에 서는 또 다른 프란치스코 성인이었던 파올라의 프란치스코(1416~1507) 이야기를 다루었다. <물 위를 걷는 성 프란치스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며 세속적 성공 가도를 달렸던 피아니스트 리스트는 한때 사제가 되려고 공부했다. 1858년에 프란치스코수도회 수도사로 서품되었던 그가 두 명의 프란치스코에게 관심을 가졌고, 마침내 그들에 관한 전설을 음악화했다. 첫 번째 곡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서 리스트는 작은 새들이 노래하며 웅성거리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반복되는 빠른 트릴과 트레몰로, 아르페지오가 높은 음역에서 연주된다. 아르페지오는 피아니스트의 양손이, 트릴과 트레몰로는 오른손이, 조금 낮은 음역의, 상대적으로 느린 선율 혹은 화음 진행은 왼손이 연주한다. 왼손의 선율 혹은 화음들은 부드럽고 서정적이다가 종종 웅장해지는데, 아마도 이 왼손이 성 프란치스코의 설교를 표현하는 듯하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2014년 8월,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전 교황을 위해 이 곡을 광화문에서 연주했다. 프란치스코 전 교황은 백건우의 연주가 끝난 후 광화문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이야기는 프랑스 작곡가 샤를 구노의 오라토리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서도 다루어졌다. 구노는 프란치스코를 그린 미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작곡했다. 또 다른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도 오페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서 이 성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이탈리아 작곡가 잔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 역시 같은 이름의 오페라를 작곡함으로써 이 성인을 무대 위 주인공으로 소환했다. 독일의 현대 작곡가 파울 힌데미트도 가세했다. 발레곡 <가장 고귀한 환시>(Nobilissima Visione)에서 프란치스코가 겪었던 여러 환시를 소재로 삼았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실제로 다양한 환시와 환청을 겪었고 말년에는 성흔까지 받았다고 한다. 성흔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얻은 몸의 상처와 비슷한 상처를 입는 현상이라고 한다. 가톨릭은 몇몇 성흔을 기록하고 증언했는데, 최초로 성흔을 입은 이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인정했다. 이런 성흔을 가져다주는 천사를 세라핌이라고 하는데, 한국에는 르세라핌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여성 그룹도 있다.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매우 특이한 곡이다. 이 곡은 ‘표현’을 넘어서 음악적 ‘묘사’ 차원의 성과를 보여준다. 예술에서 표현(expression)이라는 단어는 그것을 행하는 예술가의 어떤 주관적 느낌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잘 드러날 때 쓸 수 있다. 표현 대상과 그것을 표현하는 음악 작품 사이에는 다소 임의적인 관계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관객이 어떤 예술품을 보거나 곡을 듣고서 “이게 그걸 표현한다고?” 하며 의아해한다는 이야기다. 묘사(description)는 예술가가 어떤 대상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다루려고 할 때 쓰는 용어다. 많은 예술가, 특히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가들은 묘사보다는 표현을 좀 더 고차원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속 묘사적 지향 혹은 전략은 20세기 작곡가 메시앙 같은 이에게서는 ‘기록/전사(傳寫, transcription)’의 지향 혹은 전략으로 바뀌었다. 오페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썼던 이 프랑스 현대 작곡가는 숲속을 산책하면서 새들의 노랫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녹음한 후 그 소리의 정확한 음들과 리듬을 특정하여 악보에 받아 적는 일을 했다. 리스트가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리스트는 책상에 앉아서 새들의 소리를 떠올렸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상상하기 전에 산책하면서 그 역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었던 적은 있었을 것이다.
메시앙의 음악 창작의 새로운 방법론은 그의 놀라운 작품인 <조류 도감>(Catalogue d’oiseaux, 1958)이라는 피아노 모음곡으로 결실을 보았다. 연주 시간이 두 시간쯤 되는 <조류 도감>은 연주하기에 매우 어려운 대곡으로, 음악의 영역에 자연주의적 미학의 성과를 가져온 곡으로 평가받는다. 생태주의적 관심을 음악 영역에서 불러일으킨 곡으로도 평가받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에 대항해 저항했던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일원이었던 메시앙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가톨릭 관련 종교음악을 많이 작곡했다.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조류 도감>이 매우 예외적인 작품들은 아니다. 서양 음악사에는 몽롱하고 임의적인 자기표현을 거두고 냉철한 관찰자의 관점에서 세상의 현상들을 지켜보고 기록하거나 그것의 음향적 등가물을 만들려고 했던 작곡가와 그들의 작품들이 적지 않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것은 우리가 별생각 없이 들어왔던 소리를 언젠가부터 더는 못 듣게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연이 내는 아름다운 소리를 우리가 계속 듣고 싶어 한다면 우리는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에 음악적·청각적으로 동의를 보내는 일을 하는 셈이다. 자연을 표현하고 묘사하고 기록하는 음악과 영상을 소비함으로써 손쉽게 자연보호 운동에 동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지를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다.

김진호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