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성전 신축과 봉헌 영성화 일부

작성자 : admin    작성일시 : 작성일2013-12-25 21:42:21    조회 : 575회    댓글: 0
"아름다운 성전과 전례 그리고 그 안에 피어나는 영성"이라는 주제로 성전.전례.영성 교육을 위해  제작했던 DVD  영성화의 글 일부입니다.
 
아름다운 성전 신축과 봉헌 영성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등불은 켜서 등경 위에 놓는다.” (마태 5,13.15)

성전 건축에 관한 중요 영성 설계
성전은 하느님의 집이며 기도하는 집이기에 거룩함과 함께, 아름다움과 편안함, 쉼과 다양한 상징과 표징을 담는 예술성으로 어우러진 교회 전통적 양식과 주변 환경과 여건을 고려한 간결한 현대적 양식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성전 : 하느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문은 하느님의 전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며 그 나아가는 여러 단계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상징성으로 세 관문으로 구분하되 입구 아아치엔 요한 묵시록 4장, 천상 예배의 환호소리 “거룩하시도다”를 세 번 넣었다. 첫 번째 성부의 문을 넘어 1영역은 큰 성전 내부에 담을 영성의 상징성으로 세상의 가장 큰 빛으로 드러난 프란치스코 성인과 소화 데레사의 성상을 모셨다.  두 번째 성자의 문을 넘어 2영역은 하느님의 자녀로,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세례대로 예수님의 손에서 나오며 흐르는 물로 깨끗함과 정화의 상징성과,  물의 소리를 통해 생명의 원천과 근원을 향한 인간 본향, 갈망, 그리움 등을 이미지토록 구성 설계 하였다.
 
세례대 : 우리를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한 세례성사를 기념하는 표징인 세례대의 중요성을 인식한 교회는 처음부터 별도의 세례당을 준비하였다. 원형이나 팔각형의 형태로 몇 계단 지면보다 낮게 만들어 이곳에서 세례를 집전함으로써 세례가 가지는 의미를 더 한층 풍부히 드러내고자 하였다. 팔각의 형태는 여드레 날에 부활하신 주님을 의미하고, 몇 계단 지면보다 낮게 만든 이유는 계단을 내려가며 악마, 권세, 영화를 포기하고, 올라가면서는 성부, 성자, 성령을 믿는다는 세례의 의미를 드러내 주기 위함이었다.

세례대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의미를 띠므로 물에 잠기는 것(죽음)과 물에서 나오는(부활) 두 움직임이 잘 드러나는 침수를 위한 세례대로 만들어지면 세례가 담고 있는 의미를 더 한층 드러내 줄 수 있다. 그러나 공간의 부족이나 사목적인 어려움 때문에 침수는 못하지만 세례대를 통하여 세례자의 머리 부분은 물로 씻고 세례를 줄 수 있다.
세례대를 중심으로 한 예비자들을 교회 공동체가 함께 둘러서서 하느님 자녀, 새 생명으로 탄생하는 이들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환영하는 만남과 결속의 특별한 장으로 또한 늘 상 세례성사의 의미를 새롭게 하며 가시적 교리교육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세 번째의 성령의 문은 두 개의 문과 하나의 창문으로 세례성사로 성부,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성령의 빛으로 인도되어 하느님의 대전으로 인도되는 성과 속의 마지막 단계를 뜻한다.

성전의 영성화 : 신앙 공동체가 지향하는 복음화의 이상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등불은 켜서 등경위에 놓는다.” (마태 5,13.15)는 말씀임을 묵상하며 성전 종탑에 이 성구를 담았다.  십자가의 희생과 제헌으로 이룩하신 하느님의 구원의 길을 바라보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며 세상의 등불이 되라 이르신 예수의 성심을 상징성으로 큰 십자가와 성체등, 성구, 예수 성심상등으로 표현하였다.

성체등 : 어두운 밤에 불을 밝히도록 사방에 창문을 내 스텐인레스 유리를 통해 빛을 비춘다. 달빛처럼 은은히
큰 종탑은 주변의 아파트 단지와 농촌 풍경에 어우러져 자연속의 아름다운 성전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 고요한 평화와 성스런 그리움과 기도의 집으로 비추도록 종탑 3면에 조명 빛을 비춘다.

성전내부 : 성전 천정은 하늘을 뜻하며 무한한 우주의 영원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되 천상영광의 은총을 누리고 있을 본당 주보성인들인 103위 순교 성인의 전구와 보호를 상징화한다.  칼-순교와 생명, 영대-신적 희생과 봉헌, 성경과 등불- 말씀과 구원의 빛,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와 103위 순교 성인의 믿음과 사랑을 표징화한다.
성전 내. 외벽은 공동체가 지켜지고 보호되고 성장되어져야 할 영적 모델로 외벽은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1000년을 예수께서 12사도를 선발하여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과 교회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신 “모두 하나 되게 하소서” 성구 (고 김남수 수원 교구장 주교 서품 성구)와 최후의 만찬상을 부조화하고  내벽은 1000년에서 2000대까지 그리스도교의 분열과 갈등 중에 세상의 가장 큰 빛으로 드러난 프란치스코 성인과- (하느님을 만나는 회개 체험을 통하여 온전한 신뢰심과 마음과 영혼의 기쁨으로 기도, 청빈의 삶, 회개의 설교를 통해 세상의 평화의 건설자로, 말씀의 증거자로 일생을 사셨다.)  소화 데레사 성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어린이 같은 절대적 신뢰를 보이며 눈에 띄지 않는 작은데서 희생과 봉헌의 삶을 바치며 ‘작은 길’이 하느님 사랑에로 나아가는 지름길임을 깨달았다.  그의 핵심 사상은 “사랑에 살아라. 모든 것이 은총이다.”)  어록을 담았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어록: 악습을 몰아내는 덕행
1. 사랑과 지혜가 있는 곳에 두려움도 무지도 없습니다.
2. 인내와 겸손이 있는 곳에 분노도 흥분도 없습니다.
3. 기쁨과 더불어 가난이 있는 곳에 탐욕도 욕심도 없습니다.
4. 고요와 묵상이 있는 곳에 근심도 분심도 없습니다.
5. 주님께 대한 경외심이 있는 곳에 원수가 침입할 틈이 없습니다.
6. 자비심과 깊은 사려가 있는 곳에 경박도 고집도 없습니다.

소화데레사 성녀의 어록: 영혼의 노래

예수님, 당신의 작은 제물을 하느님의 사랑의 불로 살라 주소서.
제 영혼에 차고 넘친 강물!
은총의 바다!
자비의 사랑!
항상 새로운 사랑의 노래를 길이 부를 것입니다.

성전 외부 : 교회의 2000년 대희년을 지나 3000년대를 향하는 세상의 복음화의 빛은 20c 살아있는 성녀로 불리웠던 인도의 가난한이들의 어머니였던 마더 데레사 수녀와 근대 가장 탁월한 영성가, 영혼의 아버지였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 전망되는 이 두 분의 어록과 흉상을 부조화 하였다.
마더데레사 수녀 동산: (인도 캘커타 마더 데레사 수녀 무덤의 어록)
     침묵은 기도의 열매를 맺고
     기도는 신앙의 열매를 맺고
     신앙은 사랑의 열매를 맺고
     사랑은 봉사의 열매를 맺고
     봉사는 평화의 열매를 맺습니다.

명상의 창
단순한 길: 마더데레사

기도...
마음속에 침묵의 공간을 만드십시오.
그곳에서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내주십시오.

믿음...
믿음은 기도를 통해 성장합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사랑...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사랑하십시오.
사랑의 성공은 사랑함, 그 자체에 있습니다.
사랑의 성공은 사랑함의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
자신의 상처받기 쉬움보다
타인의 상처받기 쉬움에 더 관심을
기울일 때,
그때 나는 덜 상처받게 됩니다.

평화...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순간에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행복하십시오.

내가 걸어온 인생길은
침묵, 기도, 믿음, 사랑, 봉사, 평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삶은...... ,그렇게 단순한 것입니다.
당신이 걸어갈 길도 그렇게 단순했으면 합니다.
당신이 걸어갈 인생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동산: (2005년 4월 2일 선종언)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순교자의 동산 : 한국 103위 순교 성인들을 주보성인으로 모신 공동체로 우리 신앙 선조의 천주 공경에 대한 뜨거운 순교적 열정과 믿음, 사랑에 대한 노래, 순교 증언, 한국 초기 교회의 순교사를 통해  신앙의 발자취와 뿌리를 되돌아보며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며  순교 신앙과 영성을 숨 쉬는 만남과 나눔, 쉼의 장소이다.  이벽 성조의 “천주 공경가” “한국 초기 순교사” “103위 순교 성인의 대표적 순교 신앙고백” “김대건 신부님 동상” “가족 쉼터와 베드멘튼 운동장” 등을 조성하며 야생화와 꽃나무 등으로 가장 아름다운 가족 동산으로 형성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