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 사랑의 꿈 (백건우 연주)

작성자 : 미리내    작성일시 : 작성일2015-11-12 16:19:36    조회 : 376회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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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1811~1886)는 헝가리의 라이딩 근처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여섯살 때 아버지에게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금방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 리스트는 베토벤의 제자였던 칼 체르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웠고, 열두살이 되던 1822년 12월 데뷔했다. 칼 체르니는 리스트의 첫 정식 피아노 교사이자 마지막 스승이었다. 리스트는 프레데리크 쇼팽과도 친해졌지만 이는 곧 라이벌 관계로 발전했다.

1823년 파리로 옮겨간 리스트는 1824년부터 파에르와 레이하 밑에서 푸가와 대위법을 공부했다. 그러나 아버지 아담 리스트가 세상을 떠나 리스트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잠시 성직자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비쳤다. 1832년 천재 바이올린 주자 파가니니의 공연에 다녀온 후 리스트는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마음먹고 매일 10시간이 넘도록 연습을 했다고 한다.

리스트는 베를리오즈, 슈만, 장차 그의 사위가 되는 바그너 등의 당대의 음악가들과 화가 앵그르, 시인 하이네,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등과 친분을 다졌다. 리스트는 잠시 탈베르크와 경쟁관계에 놓였으나 탈베르크의 명성은 점차 희미해졌다. 이 후 리스트의 라이벌은 언제나 쇼팽이었다. 그는 연주 활동을 하면서 특히 작곡에 힘을 쏟아 많은 피아노곡을 발표하였다.

1847년 리스트는 바이마르의 궁정에서 케펠마이스터로 일한다. 이 시기 리스트는 자인-비트겐슈타인 Sayn-Wittgenstein 공작부인과 깊은 사랑에 빠져 다구 백작부인과 헤어졌다. 피아노 공연보다는 작곡에 주력할 것을 권한 사람도 공작부인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하려 했으나 비트겐슈타인 부인의 남편은 아직 살아 있었고, 교황청은 공작부인의 이혼을 승낙하지 않았다. 리스트는 1861년 로마로 옮겨갔다. 1865년 리스트는 예전의 희망대로 로마 가톨릭 성직자가 되어 교회음악 작곡에 헌신했다.

1869년부터 리스트는 로마, 바이마르, 부다페스트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다. 같은 해 리스트의 딸 코지마가 바그너와 결혼하면서 개신교로 개종하자 리스트는 몇 년 동안이나 코지마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1876년부터 죽기 전까지 리스트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음악을 가르쳐 바인가르트너, 실로티, 자우어 등의 명인을 배출하였다.

1886년 7월 31일 리스트는 영국을 거쳐 프랑스로 최후 연주 여행을 가던 도중에 감기에 걸렸는데 이것이 폐렴이 되어 둘째 딸 코지마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났다.

(출처 - 클레식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