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자 아닌 벗으로... 이 땅을 가꾼다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5-01-21 13:21:12    조회 : 349회    댓글: 0

 ▲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백주년」에서 “인간은 온 땅을 함께 지배하기 위해 다른 이들과 함께 협동해야 한다”(31항)고 강조하기도 했다.【CNS 자료사진】

 


[세상살이 복음살이] 유엔‘세계 토양의 해’ 땅에 대한 교회 가르침은
 
- 가톨릭신문에 비친 세상

지배자 아닌 벗으로… 이 땅을 가꾼다


발행일 : 2015-01-11 [제2927호, 9면]

  
유엔(UN)은 2013년 제68차 정기총회에서 2015년을 ‘세계 토양의 해’(International Year of Soils)로 선언할 것을 결의했다. 생태계와 빈곤, 지속가능한 개발과 식량문제 등의 해결과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된 세계 토양의 해는 인류의 삶에 중요한 토양의 국가적·지역적·국제적 의식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다. 세계 토양의 해를 맞아 교회는 토양(땅)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왔는지 살펴본다.

땅을 ‘지배’하여라

‘경제발전’이라는 슬로건 아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환경파괴와 훼손은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창세 1,28)는 성경말씀을 ‘돌봄’이 아니라 ‘정복’의 논리로 곡해한 결과다. ‘땅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노동으로 성취된다’고 정의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1년 회칙을 통해 “땅과 바다에서 여러 가지 천연자원을 얻는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인간은 땅을 지배하는 것이다. 인간이 땅을 경작하기 시작하여 거기서 얻은 것을 자신의 용도에 맞게 변형시킬 때 비로소 본래 의미의 ‘땅을 지배한다’고 할 수 있다”(「노동하는 인간」 5항)고 가르쳤다. 곧 하느님의 선물인 땅에 대해 인간이 ‘노동’이라는 특별한 응답으로 땅을 지배하고 자신의 합당한 거처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인간은 노동을 통해 취득한 땅의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여기에 사유재산의 기원이 있다.

땅의 소유

1967년 바오로 6세 교황은 “그 누구에게 있어서도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 남들은 생활유지에 필요한 것도 없는데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의 재화까지 자신을 위해서 독점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부당한 일이다”(「민족들의 발전」, 23항)라고 지적하며 사유재산권을 내세우기에 앞서 가난한 이웃을 소외시키지 않도록 경계한 바 있다.

성경에서 땅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소유로 드러난다(레위 25,23 참조). 선물로 주어진 땅을 인간이 독점할 수는 없으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에,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히 돌아가야 한다”(「사목헌장」 69항)고 분배정의에 대해 역설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1년 발표한 회칙 「백주년」에서 “인간은 온 땅을 함께 지배하기 위해 다른 이들과 함께 협동해야 한다”(31항)고 강조하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땅

교부들 가운데 가난한 민중들의 벗으로서 땅을 공동의 재화로 정의하고, 부자들의 탐욕과 불의를 고발했던 성 암브로시우스(339~397)는 “그대는 그대의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 사람의 것을 되돌려주는 것일 따름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사용하라고 주신 것을 그대 홀로 도둑질했기 때문이다. 땅은 부유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이다”(「나봇 이야기」, 53장)고 외쳤다.

아울러 모세오경에는 땅의 비옥함과 생명력을 보존하기 위해 일곱째 해를 땅의 안식, 곧 ‘희년’으로 지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땅을 묵혀두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마음껏 배불리게 하기 위해서다(탈출 23,11~14 참조). 희년의 대상은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비록 땅을 경작하지 않고 윤작하는 관행이 생태적 측면에서 유익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모세오경에는 사회정의와 땅을 돌보는 행위가 분리되지 않았다.

새로운 땅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새로운 땅’(2코린 5,2 2베드 3,13)을 마련하신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종말론적 전망에서 교회는 이 ‘새로운 땅’에 대한 기대를 통해 ‘이 땅’을 가꾸려는 관심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땅에는 이미 새로운 세기의 어떤 밑그림을 제시하여 줄 수 있는 저 새로운 인류 가족의 몸이 자라고 있다”며 “현세 진보는 그리스도 왕국의 발전과 신중하게 구별되어야 하지만, 그 진보가 인간 사회의 더 나은 개선에 이바지할 수 있는 그만큼, 하느님 나라에 커다란 중요성을 지닌다”(「사목헌장」 39항)고 밝히고 있다.

현세의 진보를 위해 교회는 창조의 선물로 받은 이 땅과 물, 공기를 수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9년 회칙에서 “교회는 피조물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공공분야에서도 이 책임을 주장해야 한다”며 “교회는 무엇보다 인류가 자멸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진리 안의 사랑」 51항)고 가르쳤다.

아울러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7년 권고에서 예물준비 동안 낭독되는 사제의 기도인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과 ‘포도를 가꾸어 얻은 이 술’에 대하여 “인간의 모든 노고와 활동을 하느님께 바칠 뿐 아니라, 이 세상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도록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임을 알게 해준다”(「사랑의 성사」, 92항)고 설명했다. 성찬례를 통해 자라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루어진 새 세상을 지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며 성사생활에 동참한다. 성사생활에 필요한 물, 기름, 빵, 포도주 등 땅에서 나는 모든 것들은 환경과 긴밀한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삶의 기초를 이룬다. 따라서 땅을 수호하려는 노력은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시고자”(콜로 1,20) 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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