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농법 유기농 고집하지만...판로 없어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8-07-28 11:38:55    조회 : 243회    댓글: 0

 

생명농법 유기농 고집하지만 ...판로 없어 힘겨운 농부들

 
2018. 07. 15발행 [1473호]

 

충북 음성군에서 친환경 생명농업을 하는 최재근(미카엘, 67)ㆍ순호(야고보, 37)씨 부자는 40년 넘게 지은 유기농 농사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힘들게 재배해도 판로가 마땅치 않아 헐값에 팔아넘기다 보니 빚만 늘었기 때문이다.

1993년 12월 타결된 다자간 무역협상 우루과이 라운드(UR) 이후 농촌 붕괴는 가속화하고 있다. 15일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땅에 의지해 생명을 키워 내는 농민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농민 주일이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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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농업 40여년 외길… 막힌 판로와 농사 빚에 ‘흔들’

유기농법 고집하는 최성미마을 최재근·순호씨 부자
 
2018. 07. 15발행 [1473호]
 
▲ 가농 청주교구연합회 음성분회 최재근(오른쪽)ㆍ순호씨 부자.


친환경 유기농으로 유명한 충북 음성군 대소면 ‘최성미마을’에 가면, 천생 농사꾼 부자가 산다. 최재근(미카엘, 67)ㆍ순호(야고보, 37)씨다.

44년째 생명농업 외길을 걸으며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과 청주교구연합회장을 지낸 아버지, 경기도 화성에 있는 농업대학을 나와 가업을 이은 막내아들은 유기농 인증 수박과 열무, 배추 같은 채소와 열매채소류, 우렁이 논에서 청정 쌀을 생산하느라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허리를 펼 새가 없다.

4일 태풍이 한반도를 비껴가면서 해가 나자 부자는 동네 초입 느티나무 아래 비닐하우스에서 비 때문에 출하를 미뤘던 수박을 따 트럭에 싣는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 가져가 경매에 부치기 위해서다. 연신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수박을 따 무게를 재고 포장을 한 뒤 상자에 담아 트럭에 싣던 부자는 30~40분쯤 지나고 나서야 눈길을 돌린다.

올해 비닐하우스 12개 동에서 부자가 생산한 수박은 모두 4500여 통. 한낮 뙤약볕이 내리쬐면 금세 온도가 45℃까지 올라가는 비닐하우스에서 비지땀을 흘려가며 수확한 소중한 결실이다.

그런데 그 결실을 바라보는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친환경 수박이지만, 우리농에서 다 소비하지 못하기에 농약을 쓰는 일반 수박과 같은 가격을 받고 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농약을 치는 일반 관행농은 661.16㎡(200평) 크기 비닐하우스에 수박 모종 500포기를 심으면 50∼60일 뒤 490통을 수확합니다. 손해가 10통밖에 안 돼요. 그런데 호르몬제를 안 쓰는 유기농 수박은 팔 수 있는 수박이 380통밖에 안 됩니다. 무려 120통이나 버려져요. 모양도 안 예쁘고 삐딱하고 크기도 작아 팔리질 않아요. 안 팔리면, 아무리 유기농 수박이라도 가락동으로 갈 수밖에 없지요.”(최재근 회장)

무려 40년 넘게 지은 유기농 농사지만, 한계에 다다른 기색이 역력하다. 20여 년 전, 7∼8년 동안 노지 유기농 수박농사를 짓다가 농협에 진 빚 2억 원도 여태껏 3분의 2밖에 갚지 못했다.

아들 순호씨는 “솔직히 힘들다”고 털어놓는다. “농약 치고 남들 쉴 때 저희는 친환경 농사짓는다고 훨씬 더 많이 일하니까, 일은 일대로, 판로 확보는 확보대로 힘에 부친다”며 “심어서 삶이 가능한, 소득이 되는 작물도 이제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올해 농사는 23마지기 논에 짓는 유기농 벼 재배와 수박, 배추 등 채소, 열매채소류 재배가 고작이다. 판매가 안 돼 올해는 감자 농사도 접었다.

최 회장은 “농사일은 한 해만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가 정말 쉽지 않다”며 “그나마 생산비에 맞게 수확량이나 판로가 확보되면 좋은데 우리농에선 생산량의 3분의 1도 소비하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농사도 농사지만, 최근 이들 부자의 농장이 절반 넘게 성본산업단지 부지로 편입되면서 농토도 반토막이 났다. 보상비로는 농협 빚을 갚고 나면 얼마 남지 않아 두 배로 오른 땅값을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땅값이 좀 싼 지역으로 이사할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다. 이렇게 마을이 피폐해지다 보니, 가농 음성분회에 소속된 최성미마을 농가는 이들 부자 한 가구밖에 남지 않았다. 논 우렁이 농법을 국내 최초로 도입, 유기농 쌀 재배를 획기적으로 확산시켰던 고 최재명(시몬)씨 등과 함께 최성미마을에서 공동노동, 공동분배를 실천하던 흙공동체(1990년), 성미공동체(1991년) 등 가농 생명운동을 하던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 얘기가 돼 버렸다. 그래서 인근 가톨릭농민회 생산자들도 한살림이나 생협으로 옮겨갔고,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은 이미 생산 단계에서부터 위축되고 있다.

글·사진=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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