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플라스틱의 역습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2-05-01 20:59:50    조회 : 115회    댓글: 0

폴리프로필렌,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 메칠메타크릴레이트크로스폴리머…. 도대체 이게 다 뭔 소리냐면, 화장품에 가장 흔히 쓰이던 미세 플라스틱 성분명이다. 2015년 나는 읽기도 힘든 성분 20여개를 나열해놓고 화장품 라벨에서 이 성분들을 골라냈다. 이들이 하수도를 타고 강으로, 바다로 갔다가 먹이사슬을 타고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며 사람들을 설득했다. 100여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인형 눈알 붙이기’만큼 눈알이 핑핑 돌아가는 성분 골라내기 작업에 착수했다. 4000개가 넘는 성분을 하나씩 확인했다. 우리는 미세 플라스틱 의심 제품을 뽑아 해당 기업에 편지를 쓰고 사용 금지를 요구하는 화장품 법 개정 운동을 시작했다. 그 결과 2017년 씻어내는 화장품에 미세 플라스틱 사용이 금지되었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당시 나는 화장품 회사로부터 판독 불가능한 답을 받곤 했다. “수용성이라 물에 녹아서, 고형이 아닌 액상 폴리머라서 미세 플라스틱이 아니다”라고 했다. 미세 플라스틱 성분명은 맞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세 플라스틱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국내외 자료를 찾아도, 전문가 자문을 구해도 딱 부러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법원의 ‘특별송달’ 우편을 받아봤는데, 해석하자면 기업들이 가만두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아, 무섭다.

최근 네덜란드에 기반한 국제 환경단체에서 보고서를 내놨다. 제목은 ‘숨어 있는 화장품의 미세 플라스틱 문제’다. 보고서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화장품 업체 4곳의 10대 브랜드를 조사했다. 로레알, 니베아, 헤드앤숄더, 도브 등 우리도 잘 아는 제품이다. 유럽연합에서 현재 사용 금지를 고려하는 미세 플라스틱 정의에 따르면 이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미세 플라스틱은 0.1μ 이상 5㎜ 이하 크기의 고체 합성 폴리머로 정의되는데, 이에 따르면 0.1μ보다 작은 나노 사이즈, 액체형, 수용성, 생분해성 폴리머는 모두 규제에서 빠진다. 독일의 경우 화장품에 든 액체나 수용성 폴리머는 매해 2만3700t이 하수도에 유입되는 반면, 미세 플라스틱으로 정의된 성분은 922t에 불과하단다. 미세 플라스틱보다 작은 나노 플라스틱은 세포 장벽을 통과해서 뇌와 위장 등의 장기와 혈액에서 검출된다. 나노 플라스틱은 태반을 뚫고 태아에게 전달될 수 있다. 생분해성 폴리머 역시 실제 환경에서 오래 잔류하며 미세 플라스틱과 같은 효과를 낸다. 무엇보다 이들 모두 미세 플라스틱처럼 플라스틱 성분이다. 보고서는 미세 플라스틱 규제가 오히려 ‘미세 플라스틱 프리 화장품’ ‘생분해성 화장품’이라는 마케팅에 이용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세 플라스틱은 암세포의 성장을 빠르게 하고 면역을 약화하는 등 암 치료를 방해한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주성분이 플라스틱인 생활용품을 사용하고 플라스틱 식기에 든 음식을 먹는다. 플라스틱으로 코팅된 종이컵에서는 약 20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5조1000억개의 나노 플라스틱이 나온다. 배달음식을 많이 먹은 사람의 체내에는 더 높은 농도의 미세 플라스틱이 쌓인다. 그런데도 인수위는 매장 안에서 일회용 컵 사용을 단속하지 못하게 막았다. 뭣이 중한가. 답은 간단하다.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를 줄여야 한다. 지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돌보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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