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는 로마의 캄캄한 콜로세움 앞에 섰다. 하루라도 한식을 먹지 않으면 혀에 가시가 돋는 ‘국뽕’ 입맛의 소유자로서, 김치찌개를 얻어먹던 민박집 사장님과 함께였다. 그는 로마에 떼돈을 벌어주는 콜로세움이 왜 음침한 돌무덤처럼 홀대받게 됐는지를 설명했다. “후쿠시마 사고 후 핵발전소 반대한다고 난리였어. 원전 못 짓지, 전기 아끼라고 전기세 올리지, 결국 콜로세움을 밝히던 야간 조명도 다 꺼버렸잖아.” 그때 남산N타워는 불야성이었다.
오는 3월11일은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당시 대지진으로 전력이 끊기자 발전소의 핵연료가 녹아내리고 수소가 폭발했다. 일본은 핵연료를 식힌 냉각수를 바다에 내다 버리기로 했는데, 하필 일본과 가까워서 우리도 방사능에 오염되게 생겼다. 후쿠시마 사고 때 방출된 오염수는 1년 만에 동해안에 도달했다. 그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후쿠시마 사고도 50층 아파트가 된 잠실의 뽕밭처럼 잊혔다. 강산은 변해도 방사능 오염은 그대로인데 말이다. 핵분열 에너지는 인간이 끄지 못하는 우주의 불 같은 거라, 폭발하지 않도록 애꿎은 냉각수만 들입다 퍼부으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우리 다음 세대도 냉각수를 퍼부으며 인간의 시간이 아닌 우주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올해 전기요금 고지서 항목이 달라졌다. 들쑥날쑥한 연료비 변화를 전기요금에 반영하고 전력량 요금에 포함됐던 기후환경 비용을 분리해 표시한다. 이제 고지서에서 신재생에너지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비용 같은 기후환경 비용을 확인할 수 있다. 원전 지지파는 신이 나서 원전 닫자더니 꼴 좋네, 결국 전기세 올랐다는 ‘뼈 때리는’ 말을 했다. 맞다. 나는 이런 돌직구가 좋다. 싼 전기 팍팍 쓰면서 원전 짓고 싶으면 국회의사당이나 강남 타워팰리스 앞에 지어라. 왜 죽어라 자기 동네에는 안 된다 하는지 다들 알지 않나. 나는 로또 맞아도 원전 100㎞ 이내에는 투자 안 할 작정이다. 혹여 사고가 나면 일대 부동산 가치는 폴란드 망명정권의 지폐처럼 휴지가 된다. 후쿠시마가 그 증거다. 2019년 발전원별 구입단가 중 원자력이 가장 싸고 신재생에너지가 가장 비싸다. 전기세 발전단가에는 이런 비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 원전은 보험회사가 가입 자체를 거부하는 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