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동안 실험과 도전 거듭하는 경제공동체, 인도 오로빌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7-03-09 16:08:22    조회 : 284회    댓글: 0


50년 동안 실험과 도전 거듭하는 경제공동체, 인도 오로빌

등록 :2017-03-08 18:11수정 :2017-03-08


[더 나은 사회]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다국적 생태공동체
 선물경제를 통한 ‘사회적 노동’의 일상화
 생활유지는 기본소득으로 보장
 녹화사업, 사회적기업 통한 지역사회 기여
 사회적경제의 교육현장으로도 주목받아

 


프랑스 출신 공학자인 질(가운데)이 자신이 개발한 태양열 에너지설비인 솔라볼의 원리와 의미를 2월17일 코리안 파빌리온 주최로 연수온 이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출신 공학자인 질(가운데)이 자신이 개발한 태양열 에너지설비인 솔라볼의 원리와 의미를 2월17일 코리안 파빌리온 주최로 연수온 이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나와 내 이웃에 필요한 일에 집중하면서 삶의 만족도가 올라갔다.” 인도 오로빌에서 주민 지원업무를 맡고 있는 번티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대기업 공장의 관리담당 간부로 고소득자였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소득이 늘어갔지만 그만큼 소비도 늘어났다. 업무 시간도 길어지고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기계발에도 애써야 했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커졌다. 온전히 자신의 삶에 집중하기 힘들어져 가던 시점 그가 선택한 곳은 오로빌에서의 새로운 삶이었다.
오로빌은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퐁디셰리 인근에 있는, 25㎢ 넓이의 생태공동체이다. 계획된 마을로서, 1968년 2월28일 124개국과 인도의 모든 주를 대표하는 젊은이들이 모여 창립식을 열었다. 전세계의 남녀가 종교와 정치, 국적을 초월하여 평화와 진보의 조화 속에서 살 수 있는 국제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유네스코도 1996년부터 시작해 1968년, 1970년, 1983년 등 모두 4차례에 걸친 총회에서 ‘오로빌 프로젝트’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창립 50년째는 맞는 현재 오로빌에는 45개 나라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며 찾아온 2500명이 모여 살고 있다.
인도인 번티는 오로빌을 완성된 유토피아로 보지 않는다. 그는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으며, 소비 중심의 경쟁적인 삶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회에 더 집중하는 삶을 선택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노력하는 곳으로서 가능성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뜻을 같이하는 이들의 집단 거주는 오로빌만의 독특한 ‘선물(증여)경제’로 지탱한다. 선물경제란, 계산된 돈으로 물건이나 노동을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공동체의 필요에 따른 교환을 중시하는 경제이다. 우리 사회에서 흔한 경조사비 지출이나 품앗이도 선물경제의 하나이다.
오로빌 주민들은 하루 6시간, 1주일에 36시간 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의 종류와 상관없이 월 1만루피(약 17만3천원) 정도의 생활유지비를 받는다. 월급 개념이 아니기에 일을 더 많이 한다고 해서 더 받지는 않는다. 일종의 기본소득이다. 다만 일괄적으로 모두에게 주는 게 아니라 필요한 이들에게만 지급된다. 별도의 소득이 있어서 생활에 여유가 있는 이들은 자원봉사와 더불어 매달 3150루피(약 5만4천원)의 기부금을 내야 한다. 일정 기간 지역에 기여한 활동이 쌓이면 생활유지비를 신청할 수 있다. 물론 오로빌 안에서도 수익이 많이 나는 사업체에서 일하는 이들의 경우 생활유지비 이상의 소득을 얻을 수도 있다. 요지는 공동체의 유지에 다 함께 기여하면서도 각자 다양한 일과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데 있다.
오로빌 주민이 공동체로부터 받는 경제적 혜택은 생활유지비만이 아니다. 다른 소득이 없어 불가피하게 생활유지비를 받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여러 서비스가 무료이다. 예컨대 점심, 의료서비스, 교육 등이 모두 공짜로 제공된다. 집수리비같이 불요불급한 비용도 경제적 여력이 없을 경우 일정 부분 공동체에서 부담한다. 공동체 구성원은 이런 혜택의 대가를 다시 자신은 노동이나 기부로 공동체에 돌려주면 된다. 이처럼 돈을 매개로 한 교환이 아니라, 사람들간의 긴밀한 관계망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필요한 물품과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주고받는 것이 오로빌식 경제원리이며 삶의 방식이다.
공짜가 많기는 하지만 오로빌 주민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진 못한다. 오로빌 마을의 목표는 풍족한 생활이 아닌 적정 생활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솔라키친’이다. 이름 그대로 태양열을 이용해 요리하는 곳인데, 1300명분 정도의 식사를 매일 공급한다. 요리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반지름 15m 크기의 반구에 붙어 있는 여러 거울 조각들이 중앙의 구리봉에 열을 집중시키면, 그 안의 물이 가열되어 증기로 변환되어 요리실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솔라키친의 에너지 설비는 20여년 전 프랑스 출신 공학자인 질이 개발했다. 지금까지 관리도 하고 있는 그는 “우리의 환경을 최대한 고려하여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필요한 에너지를 자연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적정하게 쓰는 게 우리의 생활방식”이라며 적정기술 활용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밖에도 짐승 배설물을 가공한 바이오가스 활용, 수중식물을 통한 자연정화 등 오로빌은 환경친화적 기술을 주로 활용한다.
오로빌 주민들은 스스로 개척한 생태공동체의 확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오로빌 인근 사막지역에 대한 녹화사업을 들 수 있다. 300여년 전 울창한 열대림이었던 이곳은 영국 동인도회사와 프랑스, 포르투갈 등 유럽 열강의 자원수탈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막이 되었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 시작된 오로빌 주민들의 꾸준한 나무 심기에 힘입어 지금은 200여만그루가 우거진 숲으로 바뀌었다. 20대에 와서 70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여전히 산을 관리하는 오로빌 주민도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사다나 포레스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까지 찾아와 녹화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1만명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찾아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3년까지 머물며 일하고 있다.
오로빌에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며 주민 삶을 바꿔내는 이들도 있다. 에코펨은 오스트레일리아 여성 케이티가 인도 여성들의 인권 신장과 자립을 위해 2010년에 설립한 사회적기업이다. 일회용 생리대 대신 면 생리대를 생산하는데, 외국에서 하나 구매를 하면 하나를 인도 여학생들에게 무료로 보급하는 마케팅도 펼친다. 10명의 인도 여성이 생리대를 만들고, 13명이 마케팅과 포장작업에 참여하여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 스바람은 악기를 만드는 사회적기업이다. 스바람은 인도 고유음계인 5음계의 앞 글자를 딴 이름으로, 세계 곳곳의 다양한 악기들을 모아 연구하며 이들만의 새로운 악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40여명의 인근 인도 주민이 고용되어 일하면서 수익금 중 일부는 지역민의 삶의 개선을 위해 쓰이고 있다. 오로빌의 이런 다양한 사회적기업은 인근 주민 약 5천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기술을 배우고 자립할 기반을 열어주고 있다.
에코펨과 스바람처럼 지역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이 사업화하는 데는 초기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이런 투자 재원은 오로빌재단이 초기에 제공하고, 투자를 받은 기업은 수익이 날 경우 33% 이상을 다시 재단에 출연한다. 이렇게 해서 지속가능한 사회적투자 순환체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로빌 공동체의 목표는 막연한 양적 성장이 아닌, 인간을 위한 사회적 성장이다. 오로빌 헌장에는 ‘끊임없는 교육의 장, 지속적인 발전의 장이자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음의 장’을 강조한다. 모든 주민이 서로에게 배움을 주며 아이들은 커다란 배움의 장에서 성장한다. 이러한 마을공동체, 지속적인 삶, 기본소득을 통한 사회적 노동의 실현을 배우기 위해 많은 이들이 매년 오로빌을 찾고 있다. 독일 정부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오로빌에서의 1년 연수 프로그램을 지원하기도 한다. 경희대 미래문명원 김민웅 교수는 “오로빌은 지속가능한 삶으로 전환을 모색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시민교육의 장으로서도 의미가 있다”며 한국과 오로빌 간의 교육 프로그램 연계 필요성을 얘기했다.
오로빌(인도)/글·사진 주수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socialec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85648.html#csidx9254fb30167e1629d1a65ff7f9bef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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