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투와 플라스택 인류세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9-07-08 21:54:32    조회 : 149회    댓글: 0


[최병두 칼럼] 비닐봉투와 플라스틱 인류세

등록 :2019-07-07 17:51수정 :2019-07-08 13:58


최병두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최근 대형 매점을 찾는 소비자들의 행동에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다. 지난 4월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됨에 따라 장보기용 천주머니를 미리 챙기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이다. 처음에는 일부 소비자의 불만과 실랑이가 있었고, 아직 속포장 비닐과 재래시장에서의 사용은 허용되긴 하지만, 비닐봉투 사용 금지는 이제 상당히 정착된 것처럼 보인다.
이런 변화는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올해 1월 제과업체의 비닐봉투 무상제공이 금지된 뒤 5월까지 우리나라 2대 제과업체의 비닐봉투 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83.7% 줄었다. 약국과 커피숍에서도 비닐봉투나 일회용품 컵과 빨대 사용이 크게 줄었다. 물론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오명을 벗어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관련 정책의 효과라고 하지만, 더 크게 보면 지구환경이 처한 생태위기와 이로 인해 유발된 사건들로 일깨워진 경각심에서 비롯된다. 지난해 4월 폐비닐과 폐스티로폼 수거 거부로 발생한 ‘쓰레기 대란’이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이 사건은 단순히 국내 수거업체의 횡포라기보다 국제적 배경을 가진다. 중국에서 폐플라스틱 등 폐기물의 수입 금지 조처가 단행됨에 따라 이의 수출 길이 막힌 것이다.
중국이 이 조처를 단행하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에서 ‘플라스틱 차이나’로 번역된 다큐멘터리 영화였다고 한다. 이 영상물은 고향을 떠나온 서민들이 외국에서 수입된 폐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른들은 폐플라스틱을 분류·가공하는 일을 하면서 자녀를 낳고 기른다. 아이들은 그 속에서 장난감을 찾으며 놀고 오염된 죽은 물고기를 먹으면서 자란다. 얼마 안 되는 번 돈으로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만, 그 대가로 몸에는 정체불명의 혹이 커져간다.
이 영상물은 중국의 공해업체들을 비난만 할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충격적이지만, 또한 어떻게 해서든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여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국으로 폐플라스틱 수출을 할 수 없게 되자, 베트남이나 필리핀 등지로 옮겨 가고자 했다. 하지만 이들 나라도 수입 금지 조처를 취하거나 검열을 강화함에 따라, 올해 2월 위장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필리핀으로 수출하려다 적발되어 반송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영상물로 지난해 7월 <한국방송>(KBS)에서 방영된 ‘플라스틱 지구’ 2부작, 그리고 지난달 중순 <교육방송>(EBS)에서 방영된 ‘인류세’ 3부작 등이 있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 파울 크뤼천이 인류가 지구환경에 미치는 거대한 영향으로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기 위해 제시한 용어다. 이 용어는 인간이 지구 행성에 지질학적으로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인류세’ 제2부에서 보여준 것처럼, 플라스틱은 인류세의 대표적 화석으로 간주된다. 플라스틱은 탁월한 소재 특성으로 거의 모든 생활용품과 각종 장비 등에 활용되면서 20세기 후반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폐기처리 과정에 심각한 문제를 동반한다. 폐플라스틱은 오랜 기간 썩지 않은 채 땅 위를 뒤덮고, 바다로 떠내려가 연안에서 심해까지 전 지구적으로 퇴적되고 있다. 이는 해양동물의 배 속에 쌓여 죽음에 이르도록 하고, 잘게 쪼개져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에게도 치명적 위협을 가한다.
플라스틱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이자 최악의 산물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영상물들은 새로운 지질시대가 플라스틱 인류세로 지칭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나라 영상물들은 폐플라스틱이 일상생활이나 사회구조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를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인류세 담론은 인류가 지구환경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주체임을 의미하지만, 인류가 만들어낸 자본주의 사회구조와 사회공간적 불평등이 지구환경의 위기를 초래한 주원인임을 간과한다. 이 때문에 인류세 대신 ‘자본세’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생태위기를 안고 시작한 새로운 지질시대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인류가 지구환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지질학적 힘’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이 힘은 자본주의 사회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사회적 불평등을 유발하는 힘이기도 하다. 새로운 지질시대에 인류가 진정하게 지구환경의 책임 있는 주체가 되려면, 새로운 자원순환체계의 구축과 더불어 경제정치 구조의 재구성과 사회문화적 생활양식의 변화를 추동하는 녹색전환이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야 할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0807.html#csidx2899dc8b62c5104b88fff38e801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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