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민주공화국에서 18년간 선교사로 활동한 권영희 수녀(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작성자 : 김경환    작성일시 : 작성일2014-08-08 12:02:34    조회 : 694회    댓글: 0
콩고민주공화국에서 18년간 선교사로 활동한 권영희 수녀(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아이에겐 학교, 부모에게 일자리로 자립 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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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갸비"(가브리엘 언니!)

 지난 18년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선교사로 지낸 권영희(가브리엘,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수녀를 현지 아이들은 이렇게 부른다. 링갈라어인 '야'(언니)는 콩고인들이 어지간히 친하지 않으면 쓰지 않는 표현이다. 1995년 콩고민주공화국에 파견된 권 수녀는 지난해 12월 안식년을 받고 한국에 돌아왔다.

 권 수녀는 요즘 서울 혜화동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공부하며 지낸다. 몸은 서울에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검은 얼굴들이 그리운 표정이다. 그는 사실상 콩고 선교사 생활을 그만둔 것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복음화는 아프리카인이 스스로 해야 한다. 그동안 콩고에서 성소자를 양성하고, 교육시설도 지었다"고 말했다. 현지인들 생활이 열악해 도움을 주는 등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말끝을 흐리며 웃음 짓는 그의 표정에서 아프리카 소녀의 수줍은 웃음이 묻어났다.

 권 수녀의 콩고 키산가니에서 주로 활동했다. 키산가니에는 금과 다이아몬드 등 광물자원이 풍부하다. 그래서 세계적 기업들이 진출해 자원을 헐값에 가져간다.

 광산지역을 쟁탈하기 위한 부족 간 오랜 내전으로 콩고 국민 삶은 피폐해진 지 오래다. 원래 하나였던 나라가 콩고강을 경계로 콩고민주공화국과 콩고공화국으로 쪼개졌다. 정부는 광산 채굴권을 외국기업에 팔아 얻은 자금으로 무기를 구입해 전쟁을 벌인다. 공무원들도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정신이 팔려 민생은 뒷전이다. 국민 50%가 가톨릭을 믿는 나라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전쟁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이들이 여성과 아이들입니다. 미혼모는 말할 것도 없고, 군인들에게 짓밟혀 10살짜리 아이가 아기를 낳는 일도 흔해요. 일정한 직업이 없고, 먹거리도 부족해 영양실조에 걸린 주민이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상당 수가 에이즈(AIDS) 환자이고요."

 권 수녀는 원래 수도회 카리스마에 따라 교육사업을 하려고 갔지만 굶는 아이들에게 공부만 시킬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룩셈부르크 본원에서 파견된 수녀와 함께 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안동에 진출한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의 사도직을 눈여겨 본 두봉(초대 안동교구장) 주교가 내놓은 성금이 부임 초기 큰 도움이 됐다.

 "콩고에 진출한 유엔(UN) 사무국에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바람에 직원들이 저를 '책상 없는 유엔 직원'이라고 불렀어요. 제 협박(?)에 못 이겨 식료품과 의약품 등을 내놨지요. 천주교 창조보전연대가 폐휴대폰 모으기 사업으로 보내준 성금으로 학교 확장도 할 수 있었지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권 수녀는 키산가니에 샘물유치원을 짓는 등 교육활동에도 앞장섰다. 그는 건물을 짓기 전에 벽돌공장부터 세웠다. 벽돌공장을 짓자 아버지들에게는 일자리가 생겼고, 아이들에게는 학교가 생겼다. 엄마들 직업교육도 했다. 재봉술을 가르치고 컴퓨터 교육을 시작하자 주민들이 몰려 학교는 늘 북적였다.

 권 수녀는 이러한 방식으로 130㎞ 떨어진 바날리아와 국경 너머 코트디부아르에도 학교를 지었다. 그를 돕는 현지인도 점차 늘었다. 이들 가운데 교사가 된 이도 있고, 권 수녀를 따라 수도자가 된 이들도 생겨났다.

 "하느님은 참 오묘하세요. 하느님 뜻이라면 어떤 일이든 좋은 결실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힘이 들 때마다 '예수님께서 한 걸음 걸으시면, 저도 당신을 따라 한 걸음 걷겠습니다'하고 기도했지요. 콩고인들이 더욱더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바랄 뿐이에요."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평화신문 2013.3.31.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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