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작성자 : admin    작성일시 : 작성일2013-12-21 13:10:10    조회 : 432회    댓글: 0
가톨릭 신문 [데스크칼럼] 패러다임 / 이주연 편집부장발행일 : 2013-11-24 [제2871호, 23면]
에서 발췌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패러다임’(para digm)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패러다임으로 창조 경제를 주창하는 대통령의 메시지에서부터 많은 분야와 대상들이 무언가 혁신을 얘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용어로 패러다임을 애용하고 있는 듯하다. 외래어 임에도 우리나라 말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선거철 특히 대선 때가 되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패러다임일 것이다.

사전적으로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로 정의되는 패러다임은 원래 과학용어다.

미국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쿤(Thomas Khun)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1962)에서 처음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과학의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라는데, 학자들은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토마스 쿤은 과학이라는 분야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시대 사람들이 비슷한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므로 과학자도 그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면서, 그런데 그 시대의 시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날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시각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천동설이 풀지 못했던 것을 지동설이라는 렌즈로 봤을 때 이해됐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토마스 쿤은 어떤 현상에 대해 대부분 사람이 받아들이는 공통의 렌즈를 ‘패러다임’으로 풀이 했다고 한다.

결국 혁신과 쇄신이라는 입장에서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은 한 시대 사람들이 함께 받아들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10월 5~19일 바티칸에서 ‘가정’을 주제로 한 세계주교시노드 특별회의를 소집한 것으로 발표됐다. 이를 위해 주교시노드 사무국은 회의를 위한 예비문서 질문들을 각국 주교회의에 발송하면서 설문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시노드에 앞서 질문 개요를 배포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지만, 규모 면에서 가능한 많은 교구와 본당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설문을 요청한 것은 상례에서 벗어난 특이한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정’ 문제와 사목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드러낸 결정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교황청의 이러한 조치는 한편 그간 교회에서 발표했던 가르침들이 실제 신자들의 삶에 얼마나 적용되고 있는지, 그 현실을 직접 파악해 보고 알고자 하는 움직임이라는 데서 신선하다.

한 사제의 말처럼, 그동안 교리를 ‘선포’ 하는데 익숙했던 교회가 이제 그 선포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생활에서 얼마나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 ‘피드백’을 받아서 좀 더 고민을 해봐야 겠다는 ‘사인’이라 여겨진다.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규정되는 현 시대 안에서 복음화 방안 역시 그러한 시기의 특징에 맞게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가운데, 주교시노드의 전 세계 가정 실태 조사는 그런 면에서 신자들의 현실에 직접 다가가서 ‘소통’하고 ‘대화’ 하고자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체적 표시로 생각된다.

‘신앙의 해’가 마무리 되면서 신앙의 해를 통해 거둬진 새로운 복음화의 의지가 보다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논의가 모아지고 있다. ‘새로운 열정·새로운 방법·새로운 표현’을 모토로 했던 새로운 복음화는 그야말로 고답적인 기존의 틀을 깨는 패러다임의 변화일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문제는 실천이다.



이주연 편집부장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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