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투 없는 삶 도전했지만...나도 모르게 사용"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8-04-17 14:19:48    조회 : 250회    댓글: 0

 

“비닐봉투 없는 삶 도전했지만… 나도 모르게 사용”

재활용 쓰레기 줄이기 해보니

 

카페에서 일회용 잔 받아 ‘미션 실패’


3일 만에야 성공… 쓰레기 상당량 감소


1인당 연간 비닐봉투 사용량


한국 420개… 핀란드는 4개


7일 비닐봉투·일회용 잔 안 쓰기 실천을 마음먹게 된 자취방 재활용 쓰레기.
 


주말인 7일 오후, 홀로 사는 서울 은평구 오피스텔에 딸린 분리수거장으로 향하던 기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평일 집에 붙어있는 시간도 별로 없던 것 같은데, 커다란 종이가방엔 비닐봉투 여러 개와 일회용 커피잔, 막걸리 병 등 한주간 모아둔 재활용 쓰레기가 그득해서다.

아울러 며칠 전 취재차 다녀온 송파구 재활용폐기물선별장에 쌓인 높이 10m 남짓 ‘폐비닐 쓰레기 산’이 떠올랐다. 구청이 수거해 왔지만, 한국은 물론 중국서도 가져가지 않아 별다른 ‘배출구’없이 쌓여만 가던 그 산. “이대로면 적재 공간이 부족해 두세 달 뒤엔 수거도 어려울 것”이란 재활용업체 관계자 말에 내뱉었던 한숨이, 깨달음을 품고 우리 집 분리수거장 앞에서 새 나왔다. ‘그 산이 이렇게 시작됐구나.’

초등학생이던 1990년대 가슴에 새긴 ‘분리수거를 잘 하자’ 표어를 지금까지 성실히 따라왔지만, 21세기 어른에겐 분명 20세기 어린이가 품었던 습관보다 한 차원 엄격한 책임이 요구되고 있었다. 분리만 잘 해서 버리면 누군가 가져가고, 뒷일은 고민할 바 아니란 생각을 고쳐야만 했다. ‘비닐봉투와 일회용 잔 배출부터 줄여보자.‘ 이렇게 8일(일요일) 출근길부터 나 홀로 캠페인은 시작됐다.

준비물은 간단했다. 비닐봉투를 대체할 에코백에 일회용 잔을 대체할 텀블러를 담아 집을 나섰다. 첫날 저녁까진 성공적이었다. 뭐든 안 사고 덜 마시면 될 일이란 생각에 비닐봉투 쓰레기 발생 근원지인 편의점을 멀리하고, 식사 후 찾은 인사동 단골 카페에선 당당히 텀블러를 내밀어 직원을 당황시켰다. ‘잘 했어, 잘 하고 있어.’ 스스로를 다독였다.

예상치 못한 ‘미션 실패’는 일과 후 선·후배를 만난 서울 모처 족발집에서 벌어졌다. ‘자전거용 헬멧을 빌려달라’는 후배(나) 부탁을 흔쾌히 허락하고, 미세먼지와 바람을 피하라며 고글까지 챙겨 준 선배의 세심함에 감동했다. 그러나 “비도 오는데 여기에 가져가라”며 헬멧과 고글을 담아 내민 비닐봉투를 그대로 받아온 게 문제였다. 물론 이튿날 오전 사용한 뒤, 같은 봉투에 담아 반납하면서 ‘쓰레기 발생’까지 이어지진 않았으나, 비닐봉투 사용의 일상화를 새삼 실감했다.

 

 


도전 이틀째인 9일 출근길에도 에코백과 텀블러를 들고 나섰지만, 이번엔 ‘일회용 잔 안 쓰기’ 다짐이 무너졌다. 단골 카페 직원은 이틀 연속 내민 텀블러에 당황하지 않았지만, 점심식사 후 휴대폰으로 인공지능 음성 주문을 한 게 발단이었다. 새 주문기능도 활용해 보고, 시간도 절약하겠단 마음에 자주 가는 프랜차이즈카페에 근접해 휴대폰 인공지능 버튼을 눌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해줘”를 외치니, 실제로 가장 가까운 매장에 빠른 주문이 가능했다.

‘나 좀 스마트한데?’ 자아도취에 빠진 채 향한 카페 픽업(pick up)대에서 ‘김형준 님’을 기다리고 있는 커피를 마주한 순간, 입에선 나도 모르게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오늘도 망했네.” 자동 주문된 커피는 일회용 잔에 담겨있었다. 직원이 설명한 일회용 잔 안 쓰는 법은 이랬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머그잔에’ 주문해줘.”

다행히 이틀간 겪은 실패를 사흘째 반복하진 않았다. ‘작심삼일’째던 10일, 단골 카페 직원은 텀블러 이용이 고맙다며 과자를 덤으로 건넸고, 점심식사 뒤 찾은 프랜차이즈카페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개인 잔 이용고객 300원 할인’ 혜택까지 받았다. 병원서 처방 받은 인공눈물을 사러 간 약국에서는 약사가 자연스레 내준 비닐봉투를 자연스레 반납했다.

늦은 밤 들어선 집. 일주일의 절반이 지났음에도 재활용품을 모아두던 대형 종이가방엔 다 마신 생수 병(2ℓ)과 회식 다음날 아침 끓여먹은 라면봉지만 담겨있었다. 쓰레기 배출을 없애긴 힘들어도, 줄이고자 마음먹으면 적잖이 줄일 수 있단 결론이 섰다.

우리나라 1인당 비닐봉투 연간 사용량(2015년 서울시 통계)은 420개.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이 쓴다는 그리스(250개)보다 월등히 많고, 비닐봉투 사용 습관 자체를 들이지 않는다는 핀란드(4개)나 아일랜드(20개)엔 비할 바 아니다. 2003년 125억개던 국내 비닐봉투 생산량은 2015년엔 216억개로 늘었다. ‘쓰레기 배출 줄이기, 나부터.’ 수십 년 전 ‘분리수거 잘 하자’만큼 흔히 듣고 배운 구호지만, 이제 실천이 절박한 시기가 됐다.

글·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8일 비닐봉투 안 쓰기 첫 실패 원인이 된 비닐봉투

 


9일 일회용 잔 안 쓰기 첫 실패 원인이 된 인공지능 커피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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