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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유성동ㅣ민주시민교육교원노조 정책실장·금산 신대
초등학교 교사
‘응급실서 확인한 ‘조용한 학살’…20대 여성 자살 시도 34% 늘
었다’란 기사(<한겨레>, 5월3일)에 눈이 멈췄다. 본문을 읽어가
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얼마 전 재수 끝에 대학생활을 시작
했다며 통화한 제자의 얼굴이 떠오름
과 동시에 내가 그들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베풀었는가를 돌아봤다. 교육
을 통해 험난한 파고를 넘어갈 내적
회복력이 길러졌을까. 기사는 20대
청년들이 겪는 정신질환과 정신건강
면의 적신호를 부각하는 인터뷰로 끝
맺는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9년 19살 미
만에서 300명이, 29살 미만에선 1606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018년도와 비교
시 19살 미만은 1명 줄었고, 29살 미만으로 조건을 바꾸면 113명이 늘었다. 두해 동
안 9살 미만 기준 아동 3명도 안타깝게 통계에 포함됐다. 2003년 이래 우리나라는
2017년을 제외하곤 줄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문제는
평균과의 격차인데, 평균의 2배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2011년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제정 이후 시행령
등을 보완해가며 자살예방을 위해 노력해왔다. 교육당국과 학교도 상담과 심리검사,
학부모 설명회 및 교원 연수, 의무적 생명존중교육 이수, 전문기관 연계, 학교 내 위기
관리위원회 구성 등 다방면으로 힘쓰고 있다. 그럼에도 자살하는 학생은 감소하지 않
았다. 이는 생명존중을 강조하는 일률적 방식의 자살예방교육에 한계가 있음을 의미
한다.
환경교육 상황은 좀 나을까. 국가환경교육센터장 이재영 교수는 기후위기 강연 때마
다 “인류에게 22세기는 존재할 것인가?”란 질문을 건넨다. 이보다 무서운 발문이 있을
까 싶지만, 지구 연평균 기온 상승 추이, 해수면 상승 및 빙상 감소, 생물다양성 감소
등 설명이 더해질수록 강연 참석자들의 얼굴은 심각해진다.
이 교수는 지구생존지수의 추락, 세계 가뭄 위험지역의 확대와 환경 난민의 증가 등
여러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에 이어 생태문명과 지구생태시민을 강조한다. 지구의 생
태적 수용능력이 감당할 수 있는 삶의 양식 추구와 현재의 기후위기에 대해 인식하
고 문제 해결에 노력하는 시민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교육과정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이다. 기존 교육과정으로 청소년 자살을 막지 못
했고,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생태전환교육 역시 부실했다. 이러함에도 교육과정 개정
이 총론 변경과 일부 시수 조정 정도로만 머무른다면 안 될 일이다. 학생들이 자살과
환경재난에 대해, 인권과 차별, 평화와 안전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며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는 교과가 반드시 교육과정에 포함돼야 한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시민성 교육이 가능한 교과가 필수교과
로 지정됐다. 인권, 평화, 성차별, 다문화, 안전, 환경, 미디어 리터러시 등의 주제들이
범교과학습이란 분절된 틀 속에서 제대로 학습되리라 여겼던 것 자체가 난센스이다.
교육당국은 그동안의 과오에 대해 처절히 반성하고 이제라도 국가가 할 수 있는 가
장 강한 의지 표명을 해야 한다.
그것은 ‘시민’ 공통필수교과 지정이다. 청소년 자살과 기후위기는 생명과 생존의 문
제다. 교육과정 개정으로 어린 생명을 살릴 수 있고, 기후위기의 징후를 늦출 수 있
다. 그게 교육과정의 힘이다. 기존 교육과정을 통해 길러진 역량이 시민성으로 고양
될 수 있는 주제통합형 탐구토론 교과로서의 ‘시민’ 교과가 절실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