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리는 문화(최진일, 마리아, 생명윤리학자)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0-09-23 19:48:36    조회 : 192회    댓글: 0

그동안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 정책은 경제 성장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따라서 위기가 닥치면 각종 대안이 쏟아졌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그보다 더 경제성이 높아 보이는 분야들에 국가 자원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경제 성장보다 감염병 대응 준비의 필요성을 더 절감하고 있다. 감염병은 전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고 동시에 경제사회활동에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킨다.

역사적으로 팬데믹은 소득 분배를 악화시키고, 그 피해가 사회ㆍ경제적 약자인 특정그룹ㆍ계층에 집중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기후위기의 파급력과 시급성이 재평가받으면서 그린 경제로 전환을 촉진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고, 새로운 국제 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2020년 7월 14일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의 설계’, ‘대한민국의 새로운 사회 계약’으로 발표했다. 과거의 추격형 경제에서 선동형 경제로, 탄소 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불평등 사회에서 포용 사회로의 대전환을 시대적 과제로 삼는다.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 국민이 보여준 자발적 참여 정신에서 그 동력을 얻는다. 이 정신은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상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상호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에 대한 자각은 타자를 위한 배려 정신을 실천할 수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는 폭우를 통해 기후위기의 원인을 되짚어본다. 산업화 이후 100년 동안 인간 중심주의의 경제 성장은 지구의 전체 온도를 1℃ 상승시켰다. 인간은 자연을 물질적 풍요를 위한 재료로 여기며, 그 결과로 어떤 일이 발생하든 관심이 없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지적했듯이 “물질적으로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한 나머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격차는 커가고 여성에 대한 성폭행, 가난하고 약한 자에 대한 억압, 낙태의 자유화 등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문제 등이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동아시아 평신도회의, 1992)

인간이 자연을 향한 태도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을 죽이는 문화는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문화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기에 자연 보호와 낙태의 정당화도 양립할 수 없다.(「찬미받으소서」 120항)

새 생명을 받아들이려는 개인적 사회적 정서가 사라지면 사회에 소중한 또 다른 것들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진리 안의 사랑」 28항) 정부와 국회, 사법부는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보다 근원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해 인간의 자유에는 한계가 있으며, 자유의 실현은 모두의 생존을 지향해야 함을 배운다. 생명을 살리는 문화 없이 코로나19 위기도 기후위기도 극복하기 어렵다. 우리 국민이 보여준 ‘모두를 위한 자유’의 실현은 코로나19의 위기에만 제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듯이, 인간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자연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없다.(「찬미받으소서」 118항) 우리는 오직 생명을 살리는 문화에서만 한국형 뉴딜도 새로운 대한민국의 100년도 전망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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