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자연에 대한 통제로 자신 보호하려 하는 인간...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5-08-22 10:54:05    조회 : 401회    댓글: 0

 

[문종원 신부의 생태영성] <3>

타인과 자연에 대한 통제로 자신 보호하려 하는 인간, 인간의 안전과 위로는 삶을 위한 봉사 통해 이뤄내야
 
2015. 08. 23발행 [13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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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자연에 대한 통제로 자신 보호하려 하는 인간, 인간의 안전과 위로는 삶을 위한 봉사 통해 이뤄내야

혼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림

혼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림으로써, 우리는 우리 존재를 폄하시켰다. 산업상 성취들은 우리를 의미 없는 세계, 곧 순수하지 못하고 해를 끼치는 세계로 인도한다. 모든 발명도, 의학적인 방식들도 우리의 깊은 불안을 막아주지 못한다. 엄청난 군비도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에서 생명이나 안전에 대한 최소한의 위협만으로도 두려움에 떤다. 우리는 다른 인간들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자연 세계에 대해 더 강한 통제를 함으로써 우리를 보호하려고 한다.

그러나 적당하다고 한 안전장치가 늘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한다. 전과는 달리 우리는 우리가 남용해온 환경, 물, 흙, 그리고 다양한 삶의 형태들과 같은 자연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위협을 받는다. 자연 세계와 어떻게 관계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인간 세계와의 관계에 관해서도 모른다.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지원을 요청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의학적인 절차들을 뛰어넘는 치유를 요청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개인적인 또는 공동체의 위기 시기에 우리를 안내해 줄 수 있는 숙련된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우주와 친밀한 관계

초기의 문화에서 우주는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자연 자원들의 집합으로서가 아니라 우선적으로 친하게 교제하고 지시를 받는 실재로 경험되었다. 바람, 산, 솟구쳐 날아오르는 새, 숲 속을 돌아다니는 야생 생물, 어두운 밤에 하늘을 수놓는 별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인간이 전에 알았던 가장 깊은 경험들을 전달하고 있다. 존재의 가장 큰 공동체에서 우리의 장소를 경축하는 동안 우리는 인간의 내면의 삶, 기쁨 그리고 환희를 경험한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신체적인 그리고 영적인 자양분 모두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 의존한다. 이 모든 것이 혼의 세계로 인식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인간 존재의 더 큰 맥락은 돌보는 세상이었다. 세상은 음식과 은신처 그리고 병든 시기에 치유를 제공했다. 경제적인 필요들을 뛰어넘어 자연 세계는 자신의 모든 경이로움을 통해 노래와 춤 그리고 시에 영감을 주었다. 이러한 이전의 세계 모든 곳에서 원시 시기에서 뿐만이 아니라 초기 고대 문명에서 인간사들을 더 큰 우주에 관련지어 설명한 방식이 우세했다. 삶은 사는 보람이 있었다. 헨리 프랭크 포트(Henri Frankfort)가 그의 연구 「Before Philosophy」(철학 이전)에서 말한 것처럼, 전 세계는 ‘그것’으로서가 아니라 ‘너’로 소개되었다. 포괄적인 범위에서 삶은 의미 있고 충족시키는 경험이었다.

 

우리의 안전과 위로는 봉사를 통해 온다

삶의 실현은 경제적 발달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안전과 위로는 창조적이며 혼이 일으키는 삶을 위한 기반인 봉사를 통해 온다. 우리 각자는 세상에 독특한 선물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이 세상은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성인들에 의한 사회적인 변화를 몹시 필요로 한다. 제임스 힐만(James Hillman)이 말한 것처럼 세상 그 자체가 인간 혼의 부흥을 또는 지구 크기의 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가 밝아 온다

우리가 우주에 관해서 더 많은 것을 안다고 해도 우리는 이전의 사람들이 가졌던 것보다 우주와 덜 친밀하다. 산업화된 세계는 꽃이 피는 목초지, 하늘에 닿을 듯한 숲, 흐르는 시내, 숲과 벌판의 야생 생물을 지닌 사랑스러운 행성을 찌꺼기만 남을 때까지 개발하려고 한다.

토마스 베리는 지금, 21세기에, 우리는 산업 사회는 때가 다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20세기를 지나 지금 살고 있는 우리는 새로운 시대가 밝아오고 있음을 믿는다. 산업-영리적인 세계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지금 21세기에 우리는 우리 지구의 쇄신을 시작했다. 산업 시대는 그의 파괴적인 길을 계속 가겠지만, 새로운 창조적인 힘들이 인간과 자연 세계가 서로 더 친밀함을 나누는 미래를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더 깊은 의미, 그리고 우리가 거대한 우주적인 전례에 참여를 통해 필요한 정신적인 지원을 발견할 것이다. 새벽의 상쾌함, 저녁의 치유하는 고요함을 통해, 새들이 노래하는 봄의 시기, 여름의 소나기, 가을의 원숙함, 그리고 겨울의 정적을 통해 필요한 정신적인 지원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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