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열쇠 (2012.11.18 소식지)

작성자 : 라파엘    작성일시 : 작성일2014-01-02 14:50:17    조회 : 753회    댓글: 0
「천국의 열쇠」
(A.J 크로닌, 이승우 역, 바오로딸. 2008.)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0~37)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가는 계명이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면서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주는 사랑에 대해 비유하신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 말씀에는 아주 미묘한 딜레마가 숨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법을 따르고 사람들을 대표하여 제사를 드리는 사제는 무엇보다도 우선인 하느님의 계명과 율법을 따라야 하는 의무를 지닌 사람입니다. 거룩한 제사를 지내는 인간으로서 그 거룩한 품위를 유지하고 거룩하게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 그의 도리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레위인 또한 거룩한 제단에 봉사하고 성전 제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서 거룩함을 지녀야 하는 율법의 조항을 잘 지켜야 했습니다. 이를테면 교회의 법과 규칙 안에서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 이들의 첫째 임무라 할 것입니다. 그것을 철저히 지키는 것에 대해 누가 나무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이 비유의 상황에서는 판단이 달라집니다. 제사를 바치기 전에 정결함을 유지하여 거룩한 제사를 바쳐야 할 사제가 (율법 상에서 불결함의 상징인)피를 흘리는 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아야 하는가의 문제를 제시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위험에 처한 이를 도와주는 사랑의 실천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지당한 명제를 가르치신 것이지만, 이 비유 안에는 그 사랑을 추구하는 교회의 체계와 제도 안에도 이러한 딜레마가 숨어 있을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인 프랜시스 치셤 신부는 사교성이 뛰어나고 독특한 성격을 가진 인물로 신학교에서나 교구 안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퇴학 당할뻔 하기까지 합니다. 전통적인 신학과 정형적인 교회구조 보다는 조금 튀고 활동적인 모습으로 사목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중국 선교의 명을 받고 파란만장한 선교활동을 전개해 나갑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이웃이 되어주는’ 사랑의 방식으로, 권위와 체계 보다는 열정과 사랑으로 중국 현지인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 겪게 되는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치셤 신부와 대비되는 인물로서 신학교 동창인 안셀모 밀리라는 신부가 등장합니다. 이 신부는 치셤 신부와는 대조적으로 신학교에서도 모범적인 인물이었고, 교회 안에서 큰 인정을 받고 나중에 추기경에까지 오르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어가는 독자의 마음 속에서는 ‘천국의 열쇠’를 지닐 수 있는 사람으로서 밀리 보다는 치셤 신부에게 더 쏠리게 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위에 말씀드렸던, ‘누가 그에게 이웃이 되어주었는가?’라는 예수님 계명의 최고선 때문일 것입니다. 강도를 만난 사제와 레위인과 사마리아인... 누가 그의 이웃이 되어주었는가? 누가 천국의 열쇠를 받겠는가? ... 비슷한 질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책 읽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하고 싫어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제가 이 책을 붙잡고 단숨에 끝까지 읽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구성과 내용의 전개가 흥미롭고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는 소설입니다. 아마 많이들 읽어보셨겠지만 다시 한 번 읽어보시면 어떨까 하고 권해드립니다.
 
글 김만희 요셉 보좌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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