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지옥에 가다 (2012.11.11 소식지)

작성자 : 라파엘    작성일시 : 작성일2014-01-02 14:49:46    조회 : 804회    댓글: 0
「성인 지옥에 가다」
(질베르 세스브롱, 남궁연, 바오로딸. 2012)
 
얼마 전에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뒷목과 미간을 힘겹게 자꾸만 주무르시길래 많이 피곤하신가보다 생각하고 “피곤하시죠?”하고 물었습니다. 그냥 대충 지나갈 수도 있는 질문에 아저씨는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전날 술을 많이 드셨다고...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이야기라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차에 계속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술을 먹으면 괜찮은데 울면서 술을 먹었더니 이렇게 다음날 저녁이 됐는데도 두통이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본 사람에게... 그것도 목적지까지만 가면 다시 안 볼 사람에게 자기가 울었다고까지 이야기하는 것에 저는 적잖이 당황하여 “왜 그렇게 우셨어요?” 하고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사는 게 하도 괴로워서 울었죠...” 울음도 고통도 괴로움도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처럼 초면의 한 청년에게 그렇게 하소연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가슴에 남습니다.
택시라는 같은 공간에 있는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먹고 살기 힘들어 그 괴로움을 술로 달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한 사람은 동창 신부를 만나 맛있는 저녁을 먹고 문화생활을 즐기러 영화보러 가는 사람...이라는 그림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왠지 모를 미안함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분의 고통의 나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기에 괜한 동정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렇게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느새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저 자신에 대한 책망이라고나 할까.. 그런 감정이 좀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그보다 잘 사는 입장에서 그들을 동정하고 도와주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가는 삶의 감각을 잊지 않는데서 그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인간이란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헤아릴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환경에 따라 생각하고 그 반대편의 모습을 잘 생각하지 못하는 부족함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예수님께서도 수많은 성인들께서도 가난해지기를 가르치고 노력하셨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 끼 식사를 해결하지 못해 굶주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대에 같은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유해져 버린 삶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과오가 생겨날 것입니다.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회 밑바탕에 하루하루 가난 속에 소외되고 있는 노동자들을 잊지 않고 그들의 삶의 깊숙이에서 함께 살아가고자 노동 사제가 된 피에르 신부라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성인 지옥에 가다’라는 책은 앞서 말씀드린 ‘가난함의 고통에 대한 망각’을 다시금 일깨우는 소설이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피에르 신부는 프랑스 파리 교외 공장지대에 가서 스스로 공장 노동자가 되어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며 그들의 어려움과 슬픔,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산업사회가 낳은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숨김없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고통이 나의 편안함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가 모두 연대감과 책임의식을 가져야 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이 소설 속에 나오듯이 피에르 신부가 부유촌을 지나가며 느끼는 고통... 그것이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듯이 ‘성인 지옥에 가다’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가난한 고통의 마을 속에 들어간 것이 표면적인 지옥이라면, 부유함 속에 느끼는 죄책감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에게 본질적인 지옥이었을 것입니다.
가난함의 행복을 새로이 묵상해 볼 수 있는 좋은 독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글 김만희 요셉 보좌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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