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2012.1.22 소식지)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3-12-19 21:08:56    조회 : 482회    댓글: 0
침    묵
(엔도 슈사쿠, 김윤성 역, 성바오로출판사, 1973)

  「미소를 입가에서 지워 버리지 않으려고 신부는 굳게 결심했다. 나귀에 태워져서 자기는 지금 나가사키의 거리를 걷는다. 그분도 나귀에 태워져 예루살렘의 거리로 들어왔다. 욕설과 모멸에 견디는 얼굴이 인간의 표정 중에서 가장 고귀하다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은 그분이다. 자기도 최후까지 이 표정을 짓고 싶다. 이 얼굴은 이방인 가운데서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얼굴이라고 신부는 생각했다.
(중략...)
  미소를 지으려고 애써도 이미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이제는 그저 눈을 감고 자기를 조소하고 있는 얼굴, 으르렁거리는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찍이 빌라도의 저택을 에워싼 군중들의 고함 소리와 욕설이 들렸을 때 그분은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을까. 그분 역시 그렇게는 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본문 중에서-

  17세기에 일본에서 있었던 그리스도교 박해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일본에 갔던 한 신부가 어떠한 시련을 겪는지, 그의 믿음과 신학 안에서 처해진 현실이 어떠한 고민들을 던져주고 있는지 아주 의미심장하게 제시해 주는 소설입니다. 엔도 슈사쿠의 이 ‘침묵’을 처음 접했을 때, 흔하게.. 깊은 성찰 없이 되뇌이고 상상했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이 그저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었음에 매우 부끄러운 고민에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마음 안에 그려져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초상화가 실제 예수님의 마음 안에 그려져 있는 자화상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는지.. 이 소설 속 신부의 체험들을 통해 바라보게 됩니다. 온갖 욕설과 모욕을 꿋꿋하게 이겨내신, 모든 것을 인내하고 그 박해를 승리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신 예수님의 당당하고 흔들리지 않는 고결한 정신에 감탄했다면... 어쩌면 그 박해와 모멸의 처절한 고통의 깊이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을 위해,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 죽어간 수많은 순교자들의 그 모습 속에는 분명 숭고함이 배어 있지만, 그 현장에서 느끼는 잔혹함과 두려움, 모멸감과 수치심은 그러한 신념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 막중한 무게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따르는 길에서 끝없이 침묵하시는 하느님... 그러한 하느님의 참 뜻, 참 사랑을 깨닫는다는 것이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순교가 사랑인지 배교가 사랑인지,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음이 사랑인지 아니면 생명을 위한 삶이 사랑인지 진중하게 묻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독서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글  김만희 요셉 보좌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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