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질문 (2012.04.29 소식지)

작성자 : 라파엘    작성일시 : 작성일2014-01-02 14:21:09    조회 : 494회    댓글: 0
「잊혀진 질문」
(차동엽, 명진출판, 2012.)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영혼이란 무엇인가?’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
인간의 존재 중심에서 솟구칠 수밖에 없는 이와 같은 질문들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누구라도 속 시원히 답변하기는 어려운 질문들입니다. 기본적으로 오감으로 증명할 수 없는 주제이기에 모범답안이 따로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예로부터 수많은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이와 같은 질문들에 끊임없이 그 시대와 정신, 그리고 신앙 안에서 답해 왔고, 그에 관한 서적들만 해도 헤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심오하고 중요한 질문들을 마치 자판기 커피 꺼내듯이 해답을 요구했던 故이병철 회장의 질문이 썩 유쾌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와 비슷한 현대인들의 요구에 친절하게 답변해주는 저자의 글이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리라는 생각에 이 책을 소개해 드립니다. 어떤 이야기보다도 저자의 서문에 이 책의 주제에 대한 출발점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이 서문보다 더 좋은 ‘소개’는 없으리라 생각되어 서문의 내용을 직접 인용합니다.
 
「2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지인을 통해서 다섯 쪽짜리 프린트물이 필자의 손에 건네졌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전 절두산성당 박희봉 신부께 보낸 질문지’ 이렇게 제목이 적혀 있었다.(중략…)
여하튼 필자는 그 물음 보따리에 나 나름대로 답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것을 건네주신 분들의 여망일 뿐 아니라, 그 물음들이 지금껏 필자가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것들의 함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중략…)
시방 세상이 하수상하다. 소위 2040세대의 신음은 거칠고, 절망은 깊고, 분노는 격하고, 혼돈은 칠흑이다. 그 언저리라고 나을 바 없다. 너고 나고가 없다. 모두가 한통속으로 공황을 넘어 오리무중이다. 저마다 묘안을 쥐어짜 보지만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다.
이 난리 통이 언제쯤이나 어떻게 지나가려나. 지진, 쓰나미가 덮치면 그 원인이며 대책이며를 ‘표층’에서 찾지 않고 ‘그 아래’ 지반에서 찾듯이, 모르긴 몰라도 오늘 대한민국을 급습한 문화적.사회적.정치적 지각변동에 대한 묘책도 부글부글 끓는 여론의 표층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 아래’ 심층에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그 아래’ 심층! 그곳이 어딘가? 인간 존재의 밑바닥을 말한다. 거기 무엇이 있는가? 마르지 않는 물음의 샘이 있다. “왜, 왜, 왜? 하필이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하여간 어떻게 살아야 옳으냐구?” “도대체 무엇을 위한 인생인가?” …….
이런 물음들이 그때그때 솟구쳐 올라, 때로는 하늘에 삿대질을 해대고, 때로는 자신을 무차별로 질타하고, 때로는 거침없이 궤도 수정의 용단을 내리게 하고, 때로는 묵직한 터치로 등을 밀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 글은 다섯 페이지 분량의 물음들에서 출발했다. 그 물음은 사실상 우리 고달픈 인생들의 흉금을 대변하는 것들이었다. 뭐랄까, 생의 밑바닥을 흐르는 거부할 수 없는 물음들?!
그것들은 실상 절망 앞에 선 ‘너’의 물음이며, 허무의 늪에 빠진 ‘나’의 물음이며, 고통으로 신음하는 ‘우리’의 물음이었다. 이런 까닭에 제목을 ‘잊혀진 질문’이라 정했다. ‘잊혀진’이라는 말은 잊혀져 있지만 다시 발굴되게끔 되어 있다는 의미다. 곧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고, 묻으려 해도 묻히지 않는 질문이라는 뜻이다.」
 
글 김만희 요셉 보좌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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