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1일 사랑으로 찾아가는 복된 방문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6-05-31 06:29:01    조회 : 351회    댓글: 0

◈ [인천] 주교님께 영원한 안식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16년 5월31일 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제1독서 
<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신다.>
○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4-18<또는 로마 12,9-16ㄴ>

복음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9-56

어제는 무척 슬픈 날이었습니다. 새벽에 아침 운동을 하고 있는데 문자
메시지가 한 통이 온 것입니다. ‘이 새벽부터 무슨 일이야?’하고 확인을
하는 순간에 깜짝 놀랐습니다. 인천교구장님이신 최기산(보니파시오)
주교님께서 위독하시다는 메시지였지요. 그리고 어제 오전에
선종하셨습니다.

교구청에서 주교님과 7년 동안 함께 했었던 기억을 떠올리니 더욱 더 아픔이
크게 느껴집니다. 얼마 전에 갑곶성지에 방문해주셔서 이제까지 제가 했던
일을 보고했지요. 그런데 보고 때마다 계속해서 “잘 했다. 잘 했어. 정말 잘
했어.”라고 칭찬해주셨던 것이 주교님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네요. 그때의
만남이 마지막이라고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 있는 요즘에 일흔도 되시지 않았는데 주님께서 불러 가실 것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아쉬움이 더 많이 남습니다.
주교님께 맛있는 커피 한 잔이라도 직접 타 드릴 걸, 찾아뵙고서 식사
대접이라도 할 걸, 곧 있을 영명 축일을 맞이해서 선물이라도 미리
갖다드렸으면…… 등의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 때문입니다.

늘 밝게 웃으시면서 “잘 되고 있지?”라고 물어주시던 주교님의 모습이
훤한데 유리관 안에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누워 계시는 모습이
너무나도 어색하게만 보일 뿐입니다. 그러면서 만남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의 만남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정말로 의미
있는 만남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유익한 만남보다는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더 나을 것만 같은 후회하는 만남을 만드는 경우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만남이 되어야 하는데,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만나려고 하니 좋은 만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모님께서 친척인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만남은 서로에게 큰 힘을 주는 만남이었습니다. 주님의
어머니가 찾아오심으로 인해 늙은 나이에 갖게 된 아이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되었으며, 엘리사벳의 구세주의 어머니라는 고백에 힘을 얻어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만남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만남,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한 만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만남이었고, 그 만남의 한 가운데에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굳은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어떤 흔들림 없이 아름다운 만남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많은 만남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어떤 만남을
만드시겠습니까? 후회 가득한 만남이 아니라 참 기쁨을 이룰 수 있는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주교직을 수행하시느라 그동안 너무나 수고 많으셨던 주교님께 영원한
안식을 주시길 주님께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

모든 만남은 삶의 성숙과 진화를 가져온다. 다만 그 만남의 의미를 올바로
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스치는 인연일 뿐이지만, 그 메시지를 보고 소중히
받아들이는 이에게 만남은 성숙의 과정이다(법상). 

*****

관심

예전에 구피라는 물고기를 어떤 분이 선물로 몇 마리 주셔서 키웠던 적이
있습니다. 암컷이 6Cm, 수컷이 3Cm 정도의 크기로 키우기 쉽고 번식력이
강해서 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상한 것입니다.
분명히 번식력이 좋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처음에 받은 숫자 그대로인
것입니다. 언젠가는 낳겠지 라는 마음으로 별 관심을 쏟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몇 마리가 죽어서 숫자가 줄어들 뿐 늘지는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받은 구피가 다 수컷인가라는 생각도 했지요.

우연히 제게 구피를 주셨던 분을 만났습니다. 그때 제가 물었지요. 왜
새끼를 낳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새끼를
많이 낳는 물고기인데, 워낙 잡식성이라 낳은 자기 새끼까지 먹어 치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끼를 잡아먹는 구피를 잽싸게 격리시켜서 새끼들이 다
컸을 때 만나게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이는 다른 생명체에 비해서 신경을 덜
쓴다는 것이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작은 생명을 돌보는 일에도 정성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작은 생명에도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사람과의 만남은
어떨까요?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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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사랑으로 찾아가는 복된 방문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5월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루카 1,39-56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 1,43)

Mary visits Elizabeth

사랑으로 찾아가는 복된 방문

작은형제회에서 전례로 거행하기 시작한 이 축일은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곧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사실, 세례자
요한이 탄생 전에 주님을 만남으로써 원죄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
성모찬가에서 복되신 동정녀의 겸손을 상기시켜 줍니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구세주를 잉태하리라는 예고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응하신 며칠 뒤, ‘서둘러’(1,39)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에
사는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성모께서 ‘서둘러’ 발길을 옮긴 것은 자신이
받은 약속의 기쁨에 이끌려 구원의 기쁨을 나누고 경건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봉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성령의 은총을 받으시고 머뭇거리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의 말씀은 나자렛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여행을 이어갑니다. 그
여행은 사랑의 순례였고 오직 사랑을 체험한 이가 사랑으로 봉사하려는
몸짓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고,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찼습니다.”(1,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 그 뱃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고,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찼습니다. 성모님의 발길은 하느님의 축복을 나누기 위한 ‘평화의 발걸음’
이었고, 구원의 기쁨을 발생시키는 성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메시아를 품으신 성모님의 이 ‘찾아봄’은 새로운 만남을 뜻하며 그 만남
안에서 두 연인은 성령이 주시는 일치를 체험합니다. 엘리사벳은 먼저
목소리를 들었고, 요한은 무엇보다 먼저 은총을 깨달았습니다. 마리아에
대한 엘리사벳의 찬탄은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신앙고백이요, 마리아에
대한 하느님 백성들의 찬미인 셈입니다.

성모께서는 엘리사벳의 축복의 인사를 받고 자신을 통하여 이루신 하느님의
위업과 인류 구원 역사(役事)에 감사드립니다(1,46-55).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의 인격 안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알아보고 기뻐합니다(1,46).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천대받는 가난한 백성을
해방시키러 오시기 때문입니다(1,48).

능하시고 거룩하시며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무상으로 은혜를 베푸시고,
가난한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을, 그들을 교만하게 억압하고 착취하는
자들로부터 해방시키러 오십니다(1,50-53).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행동방식이요, 예수님의 행동방식입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성모님을 떠올리며 봉사하기 위하여
그리고 구원의 기쁨을 나누기 위하여 이웃을 찾아가야겠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발걸음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또한 엘리사벳이 성령의 빛으로 주님의 모친을 알아보았듯이 우리도
일상의 삶에서 영의 눈으로 구세주의 모친을 알아보도록 힘써야겠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을 품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오늘도 가난하고 묶인 이들과 부당한 착취를 당하고
반생명적인 움직임들로 인해 시달리는 모두의 해방을 위해 가난한 마음으로
서로를 찾아가는 복된 방문의 날이 되길 기도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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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2016년 5월31일 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 루카 1,39-56

지인께서 제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저는 기꺼운 마음으로 기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멀리 지리산 요양원에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역시 기꺼운 마음으로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지인과 용산 역에서 만났습니다. 본인도 70대
중반이신데 어머니를 위해서 한 보따리를 장만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과일과 과자를 준비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를 위해서 기도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하느님께서는 제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지리산까지 기차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오는 길에는 순천으로 가서 맛있는 식사를 하였습니다. 97세이신
할머니께서는 70대의 아드님을 보시고 무척 반가워 하셨습니다. 손에
묵주를 드시고, 기도를 하시는 할머니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할머니 어떤
지향으로 기도하셔요?’ 할머니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응, 세상이 편안해
지라고 기도하는 거야!’ 

올라오는 길에 노사연의 ‘만남’을 들었습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 이였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아~~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마라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오늘은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사업을 위해서 미리 길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구세주의 어머니께서 방문하신 것입니다. 좋은 기운이 함께 만나니,
아름다운 노래가 들려옵니다. 엘리사벳의 고백은 우리가 늘 바치는
‘성모송’의 기원이 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태중에 아들 또한 기뻐 뛰노나이다.’ 엘리사벳의
환영을 받은 성모님은 참된 신앙인이 가야할 길을 제시해 주는 ‘마리아의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 올리시는 분,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시고, 가난한 이를
배불리시는 분께서 나를 복되다 하시나이다.’

행복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드러나고, 내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았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그래서
행복한 것입니다. 행복해지고 싶으신가요? 그럼 욕망의 불꽃에서
멀어지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러면 이미
행복한 사람입니다.   

엘리사벳은 성모님께 축복의 인사를 드렸고, 성모님은 하느님의 은총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른 것처럼 우리들의 만남이 이렇게 축복과 은총으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5월 마지막 날 아침입니다. 나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도록 충실하게 지내야 하겠습니다.
나를 통해서 지친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절망 중에 있는 이웃들이 희망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나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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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믿음으로 행복하기를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5월31일 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 루카 1,39-56

믿음으로 행복하기를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믿음의 어머니와 함께하는 오늘 어머니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바람이 주님께 전구되고 가슴에 담았던 아픔과 시련의
상처들이 치유되기를 기도합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첫 기적이 어머니의 청을 통하여 이루어졌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어머니의 전구를 통하여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길 희망합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성모님을 통하여 은총을 구하십시오. 성모님을 통하여
반드시 얻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준비된 마음 안에 여러분의
모든 바람을 성취시켜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어머니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구원능력에 우리의 모든 소망을 맡겨 드려 풍성한 열매를 반드시
얻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뜻을 늘 곰곰이 생각하고(루카1,29), 마음속에
간직하며(2,19.51) 사셨던 성모님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기를 기도합니다.

일상 안에서 누군가를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만나서 끝까지 기쁨을 나눈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지
않았는데도 실컷 도와주고서는 그것으로 끝나면 좋은데 나중에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구지 스스로 해 놓고는 서운한 감정을
지니고 화로 가득 채우는 것이 우리의 어리석음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리고 둘은 뱃속에 든 세례자 요한과 함께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실 엘리사벳은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 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던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임신을 하였고, 더욱이 마리아의 방문에 성령을
받아 외쳤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그러자 마리아가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며 찬미의 노래를 합니다.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신
하느님, 돌계집의 부끄러움을 없애주신 하느님께서는 두 여인으로부터
찬미를 받으시고 또한 두 여인은 참으로 서로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석 달가량이나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서로가 통하지 않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못 봐서 애달프고 미운사람은 봐서 가슴이
아프답니다. 해외 교포사회에서는 ‘손님이 오실 때 반가운 손님, 떠나실 때
더 반가운 손님’이라고 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서로의 만남은 믿음 안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체험할 때 풍요로워집니다. 함께 나눌 수 있음이 기쁨입니다.

누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까? 루카복음 11장 27절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이 말씀은 성모님께서 “모든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신 분”이라는 것은
예수라는 훌륭한 아들을 낳아서 젖을 먹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행복이란
그렇게 하면 행복해진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이러이러 해서 행복하다면 그 행복은 무엇이
저러저러해질 때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참 행복은 주 하느님을 믿고
믿음에 따르는 실천을 하는 것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행함으로써 복되었듯이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것이 곧 행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저러한
조건과 환경이 마련되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주님 안에
있다는 자체가 행복의 순간임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시고 마리아를 통하여 큰일을 하셨듯이 오늘 우리의
부족함도 굽어보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시리라 믿습니다.

이 시간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던
성모님의 믿음을 간직할 수 있는 은총이 주어지길 희망합니다. 성
베르나르도는 말합니다. “내 행복은 오직 하느님 곁에 있는 것, 내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일입니다.” 우리도 오직 주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사는
것으로, 하느님께 희망을 둠으로써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우리의 비천함을 굽어보실 것입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부행정원장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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