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9일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법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6-01-19 06:21:46    조회 : 360회    댓글: 1

◈ [인천] 주님은 마음을 본다.

2016년 다해 1월19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마르 2,23-28

10년 전, 제가 갑곶성지 초대 신부로 생활하고 있을 때에는 먼저 제의를 입고
입당해서는 기타를 들고 치면서 입당 성가를 불렀습니다. 그런 저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은 정말로 특별했어요. 반주도 직접 하고, 미사 해설도 직접 하면서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가 세상에 어디에 있겠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던
거예요? 다시 갑곶성지에 오셨으니까 10년 전처럼 반주를 직접 하시면
어때요?”

저를 정말로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서 그 당시에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반주할 사람이 없었고, 미사 해설 하시는 분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했던 것이지요.

저는 그렇지 않은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새벽
묵상 글도 그렇지요. 2001년부터 썼다고 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식사 하는 것을 그 누구도
특별하다고 하지 않지요. 그 시간이 되면 배가 고프고, 그래서 식사를 할
뿐인데 “와,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다.”라고 감탄하지 않습니다. 제 새벽 묵상
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A4 2장씩 쓰다 보니 밥 먹는 것처럼 하나의
습관으로 제게 자리 잡은 것입니다. 어려울 것 같지만, 매일 하다 보니 이제는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일 뿐, 전혀 어렵지가 않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판단이란 이렇게 실제와 다를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도
왜 자기 생각만이 옳은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자기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거부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면서 밀 이삭을 뜯는 제자들을
지적하면서 예수님께 따지듯이 말합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왜 밀 이삭을 뜯는 것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일까요? 그들은 율법을
확대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율법을 가지고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그 중에서 안식일에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일 자체도 확대
해석합니다. 밀 이삭을 뜯었으니 ‘추수’라는 일을 한 것이고, 밀을 먹기 위해
손을 비벼서 밀 껍질을 벗겨냈으니 ‘타작’이라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인데, 오히려 사람들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만들어진 것처럼 된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뜻보다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생각과 판단이 불러일으킨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1사무 16,7)라고 말합니다. 우리 역시 주님처럼 마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늘 정답은 아닙니다.

*****

사람의 인생이 하나의 풍경이라면, 누군가 건넨 친절과 사랑은 잊히지 않는
기억의 의자가 된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

우분투

전에 근무하던 교구청 근처에는 ‘우분투’라는 파스타집이 있습니다.
‘가게 이름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그 집 앞을 지나가곤 했는데, 얼마 전에
어떤 책에서 본 글을 통해 가게 이름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을 방문한 인류학자가 아이들에게 놀이 하나를
제안했다. 그곳에선 구할 수 없는 딸기가 든 바구니를 나무 옆에 두고 말했다.

“얘들아, 달려가서 저 바구니를 먼저 잡는 사람이 딸기를 가지는 거란다.”

아이들은 그 뜻을 이해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과일 바구니 앞에 다다르자 모두 바구니를 둘러싸고 앉아
딸기를 나눠 먹으며 즐거워했다.

인류학자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맨 먼저 간 사람에게 과일을 주겠다고 했는데 왜 다 같이 손을 잡고
달린거지?”
그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 입에서 ‘우붙누’라는 말이 나왔고 한
아이가 덧붙여 얘기했다.
“다른 사람이 먹지 못해 슬픈데 어떻게 나만 먹고 기분이 좋나요?”
우분투는 원주민 언어로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이었다.

‘우분투’를 잊지 마십시오. 함께 하는 모든 이가 바로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입니다. 그렇게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가게였는데 한 번도 못
가봤네요. 다음에는 꼭 가봐야겠습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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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법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1월19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 마르 2,23-28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다.”(마르 2,27)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법

예수님께서 5-6월경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실 때, 그분의 제자들이
밀이삭을 뜯기 시작했습니다(2,23). 당시 율법에 따르면, 곡식밭에서 낫을
대지 않고 손으로 이삭을 잘라먹을 수 있었기에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신명 23,26).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밀이삭을 뜯는 것도 안식일법을 어긴다고 보는 해석에
따라(미슈나 샤바트 7,2) 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느냐고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2,24). 그러자 그분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2,27)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창조하시고 가장 소중히 여기신
하느님의 창조 의지에 대한 통찰 위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법과
제도는 인간이 있기에 만들어진 것이고,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이것은
유가(儒家)의 인치(人治)의 근본 원리이자 한민족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존엄하고 고귀한 인간이 법과 제도의 수단이나 도구가 될 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 인간이야말로 늘 법에 우선하며, 법을 초월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위에 법이 군림하게 된다면 그것은 무지비한 권력일 뿐이며
비인간화를 초래할 것이 뻔합니다. 따라서 그런 법이나 제도는 없어져야
마땅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율법의 근본정신을 온전히 실행했습니다.
그는 엄격한 가난을 요구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이들은 신발을 신을 수
있으며(2,15), 자발적으로 단식해야 하지만 원하는 사람은 지킬 의무가
없다고 합니다(3,6). 법보다 각자의 고유한 인격을 존중하며 자유롭게 복음을
살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어떤 경우에도 법과 제도를 이용해
형제자매들을 도외시하거나 차별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이는 모든
과정에서 꼭 기억해야 할 혼(魂)과 같습니다. 법과 제도를 제정할 때에도
인간을 위하고 참 자유를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그것을 적용할
때에도 인간을 살리는 쪽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법실증주의에 따른 인권침해, 규범주의에 따른 창의성의 결핍, 원리원칙을
강조함에 따른 관대함의 부족과 같은 함정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첫 자리에 놓는 확고한 인간 존중의 사고와
모든 법과 제도의 혼은 사랑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와 사회생활에 필요한 도구인 법과 제도가 인간구원에 걸림돌이 되고
서로의 존엄함을 침해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특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법 앞의 불평등과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심각한 오늘의 한국 상황에서 신앙인들부터 각성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바라심을 기억하며 서로를 사랑으로
품고 존중하는 사람 냄새 풍기는 오늘이길 기도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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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1월19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1사무 16,7)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세요?
멋있는 사람인가요? 아름다운 사람인가요?
키도 늘씬하고 몸매도 좋고 얼굴도 이쁘고 그야말로 킹카이고 퀸카인가요?
 
아니어서 실망인가요? 

그럼 여러분은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셨나요?
겉으로 보이는 미모는 별로 내세울 게 없지만 마음만큼은 천사표인가요?
 
그것도 아니라구요?
 
그럼 하느님께서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여러분에게 주시겠다면 어떤 걸 택하시겠어요? 
두개 다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람들은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더 좋아하지만
하느님은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더 좋아하신대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사실 미모가 너무 뛰어난 사람의 친구면 나는 늘 손해보지요.
나보다 미모는 좀 빠지지만 마음이 비단결같은 친구를 두세요.
 
마음이 고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돈많고 멋지게 생긴 사람보다 훨 낫답니다. 
그런 사람 어디 없나요?
그런 사람을 벗으로 두고있는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벗에게 감사하는 오늘 되십시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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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물러진 법|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다해 1월19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마르 2,23-28

물러진 법

'놀 때 놀고 일할 때 일하며, 쉬고 싶을 때 마음껏 쉬고 싶습니다. 주일
미사참례의 의무는 주님의 기도33번으로 가름하고 휴일을 즐기고 싶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싶어서 성당을 찾았는데 미사참례의 계명이 오히려
자유를 옭아매는 느낌이 들어 싫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교회법에서는 “미사참례 계명은 주일이나 의무축일 당일이나 그 전날 저녁에
어디서든지 가톨릭예식으로 거행되는 미사에 참례하는 것으로 이행된다”
(교회법1248조1항).고 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사가 없는 공소에서는
공소예절(말씀의 전례)에 참례하여야 하고, 공소예절도 참례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개인이나 가족끼리 합당한 시간동안 기도에 몰두하도록
권장합니다. 그래서 부득이한 경우 예수님께서 33살까지 사셨으니까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 33번을 바치라는 관습이
생겨났습니다. 사실 옛날에 우리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한글도 모르고,
성경도 라틴어로 된 책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를 대신 바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경을 읽을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성당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주님의 기도33번으로 주일
미사참례의무를 대신하려 한다는 것은 성숙한 신앙인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2,28).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법조문 보다 우선이라는
말씀입니다. 안식일 계명은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쉬어야 함을 내용으로
합니다. 이는 인간이 일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규정은 선과 생명에 도움을 주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하느님의 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안식일 규정을 강화하는 가운데 본래의 의미를 잊고 자구에 매인 나머지 단지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데에 집착하여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규정들을
세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선과 생명에 보탬이 되기보다 되레
인간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굴레와 족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본래의 의미를 회복하려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단지 일을
해서는 안 되는 날이 아니라 선과 생명에 도움이 되는 날이어야 합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고해성사를 보시면서 “안식에 해서는 안 될 일,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였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규정을 생각하기보다 그 의미, 알맹이를 생각하십시오. 하느님을
섬기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고 말씀 드렸더니 “요즘 법은 왜 그리
물러졌어요?” 하셨습니다.

안식을 취해야 할 주일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영혼의 안식을 취하는 날로
보내야 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단순히 미사참례를 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양식을 취하고 구체적 사랑을 실천하는 날로 지내야 합니다.
이 날은 우리를 구원에로 이끌어 주시며 성체성사의 양식으로 배 불리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날이어야 합니다. 주일은 분명,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날이면서도 인간을 사랑하시고 해방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안식일 법을 확대 해석하여 사람들에게 짐을 지웠지만
예수님께서는 인간구원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을 철저히 거부하셨습니다.
그것은 분명 하느님의 원의와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을 달리 말하면,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이 곧 인간을
살린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알려주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도록 가르치는 전권을 가진 자로서 안식일의
주인입니다(이영헌).

그러므로 보다 적극적인 마음으로 함께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미사성제에 참여함으로써, 주님의 수난과 부활, 영광을 기념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즐거움과 휴식의 날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사랑에 사랑을 더하여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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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리내님     작성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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