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2일 새로운 꿈을 열망하는 사람들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5-09-12 07:09:17    조회 : 372회    댓글: 0

◈ [수도회] 그리운 선우 경식 요셉 원장님
 
2015년 나해 9월12일 토요일[(녹)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제1독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1서 말씀입니다. 1,15-17

복음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43-49

그리운 선우 경식 요셉 원장님

오랜만에 그리운 선우 경식 요셉 원장님의 오랜 체취가 깊게 베여있는 요셉의원 미사를 다녀왔습니다. 존경하는 이문주 신부님께서 요셉 원장님이 살아생전 못 다한 꿈을 계속해서 펼쳐나가시는 모습에 참으로 기뻤습니다.

영등포역을 빠져나와 즉시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그 유명한 ‘청소년 출입 금지 구역’ 골목길이 눈에 들어옵니다. 요셉의원으로 향하는 담벼락에는 광야교회에서 그린 듯한 슬픈 표정의 예수님께서 한 죽어가는 노숙인을 안고 계시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그림 옆에는 이런 글씨가 크게 적혀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너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요셉의원 안에는 선우 경식 요셉 원장님의 몇 점 안 되는 소장품들을 위주로 한 기념관이 조성 되어 있었는데, 활짝 웃고 계시는 원장님의 미소를 뵈니 원장님 세상 뜨고 가슴이 휑하던 일이 엊그제 같았습니다.

돌아보니 선우 경식 요셉 원장님 참으로 든든한 언덕 같은 분이셨습니다. 하늘 아래 의지가지 하나 없는 사람들, 머리 하나 둘 곳 없는 노숙인들, 몸은 아파오는데 어디 한 군데 오라고 손짓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의 든든한 성채요 반석 같은 분이셨습니다.

지금쯤 우리 요셉 원장님 천상에서 요셉의원을 흐뭇한 얼굴로 내려 보시리라 확신합니다. 이제 요셉 원장님의 그 귀한 영성이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필리핀에서도 활짝 꽃피어나고 있습니다. 요셉 원장님께서 살아생전 보여주셨던 가난한 이웃들을 향한 그 따뜻한 마음, 그 한없는 측은지심이 또 다른 사제, 또 다른 봉사자, 또 다른 은인들을 통해 지속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점점 든든한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안타까운 이 세상입니다. 힘들면 아무 때나 찾아가서 마음껏 하소연 할 수 있는 든든한 반석 같은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 사회입니다. 언제든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언제든지 찾아가서 어깨를 기댈 수 있는 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이런 면에서 선우 경식 요셉 원장님은 참으로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존재 자체로 성채처럼 든든하던 분, 뵙기만 해도 신뢰가 가던 분, 한 평생 내 인생을 의지해도 전혀 불안하지 않던 그런 분이셨습니다. 마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로 그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루카복음 6장 47절)

오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역할 내지는 과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다들 불안해하는 이 세상입니다. 다들 좌불안석입니다. 다들 불신과 의혹으로 가득 찬 눈동자입니다.

예수님 혹은 프란치스코 교황님, 그리고 선우 경식 요셉 원장님처럼 넉넉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그런 사람이 우리 시대 필요합니다. 아무리 지금 주어진 상황이 열악하다 할지라도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하고 또 다시 시작하는 그런 여유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또 우리 가정 공동체 안에서 나만이라도 든든한 반석으로 서겠다는 마음, 나만이라도 우리 공동체를 끝까지 지키고 사랑하겠다는 그런 관대한 마음과 열린 시야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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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2015년 나해 9월12일 토요일[(녹)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제1독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1서 말씀입니다. 1,15-17

복음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43-49
 
며칠 전, 새벽에 하늘을 보았습니다. 버선코와 같은 달이 하늘에 떠 있었습니다. 수많은 별들이 곧 떠오를 해에게 자리를 내 주기까지 묵묵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에 가려서 우리는 우주에서 보내 주는 아름다운 빛을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참 많은데 우리는 너무나 ‘성공, 명예, 권력’이라는 신기루를 쫓아서 달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주일학교 친구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남학생들은 짧은 머리에 교복을 입었었고, 여학생들은 단발머리에 허리 잘록한 교복을 입었습니다. 성당에서 만나서 성가를 신나게 부르고, 함께 교리를 배웠습니다. 앳된 모습의 친구들이 이젠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그런 학생들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명동에서 만나 칼국수를 먹고, 팥빙수를 먹으려했는데, 계획이 바뀌어서 행주산성 구경을 가고, 혜화동까지 가서 차를 마셨습니다. 친구들이라 계획이 변경되어도 기쁠 수 있었고, 친구들이라 기꺼이 시간을 내 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가 세상의 기준이 되면서 ‘빈곤, 부패, 질병, 문맹, 환경오염’이 사라졌다고 말을 합니다. 세상은 더 넓어지고, 풍요로워졌다고 말을 합니다. 인류는 지난 세기보다 많은 결실을 맺었다고 말을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씨를 부리고 자란 세상의 속살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빈익빈, 부익부의 굴레는 더 커지고 있습니다. 절대 빈곤에 굶주리는 이들은 더욱 늘어가고 있습니다. 부패한 정권과 정부는 폭력으로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400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서 죽음의 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인류는 새로운 질병에 노출되고 있으며, 나노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면역체계가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늘어난 질병입니다.  정보와 지식은 넘쳐나지만 인류를 하나로 묶어줄 사상과 철학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습니다. 도시생활은 필연적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있으며, 우리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원까지도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서 마구 파괴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마치 가시나무와 같아서 무화과와 포도나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 최 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버니 샌더슨’ 상원의원의 돌풍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그는 경쟁과 승자독식의 원칙에 입각한 자본주의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는 미국도 스웨덴, 핀란드처럼 많은 이들에게 복지의 혜택이 돌아 갈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는 새로운 나무를 심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나무에서 ‘꿈, 희망, 사랑, 복지, 나눔, 연대’의 열매를 얻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2000년 전에 유대인들은 새로운 열매를 맺으려했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어쩌면 샌더슨의 꿈도 탐욕의 자본주의라는 덫을 빠져나오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류는 늘 새로운 꿈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름은 달리 불리지만 그것들이 맺고자 하는 열매는 같은 것입니다. ‘무지의 구름, 영성, 생태신학, 깨달음, 열반, 해탈, 자발적 진화, 뮤턴트 이야기,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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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특별한 ‘나’임을 기억하면서

2015년 나해 9월12일 토요일[(녹)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제1독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1서 말씀입니다. 1,15-17

복음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43-49

어떤 아이의 꿈은 목장 주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목장 주인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곧바로 공부를 때려치웠습니다. 오로지 목장 주인이 되기 위해서 동물을 잘 키우는 방법만 연구를 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목장 주인보다는 의사가 더 좋은 것 같았습니다. 의사가 되어야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고3 초에 세웠고, 그는 1년 동안 집중해서 아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의대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고 합니다. 저 역시 이런 말을 들으면 특별한 사람이나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까요?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인 나라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 이야기의 주인공은 통합의학의 권위자인 황성주 박사입니다. 그는 고3때 자신의 꿈을 선택했고, 그 꿈을 향해 집중해서 노력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지 못한다고 단정 짓는 것보다는, 바로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때 요즘의 청년들 세대를 3포 세대라고 불렀습니다. 즉,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고 하지요. 그런데 요즘에는 3포 세대를 넘어서 5포 세대라고 부른다고 하지요.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것은 물론이고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도 포기했다고 붙여진 신조어입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된다며 포기하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었는데, 스스로 특별하지 않다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니까 말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렇다면 지금 내가 힘들고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나쁜 나무여서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좋은 나무로 이 땅에 왔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똑같이 태어나지 않았으며, 다 나름대로 할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이 땅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을 향해서도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라고 꾸짖으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지금의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주님의 일을 하지 않는 것과 똑같은 것이 아닐까요?

특별한 ‘나’임을 기억하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에 온 힘을 기울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 땅에 살아 숨 쉬고 있다면, 지금은 포기해야 할 때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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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가위질하는 것은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꾸중을 듣지 않으면 똑똑한 아이가 될 수 없다. 겨울 추위가 한창 심한 다음에 오는 봄의 푸른 잎은 한층 푸르다. 사람도 역경에 단련된 후에야 비로소 제값을 한다(벤자민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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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기

새벽 묵상 글에 사진을 매일 두 장씩 올립니다. 나의 일상을 사진에 담아 두고 싶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묵상 글만으로는 너무나 밋밋한 것 같아서 제가 찍은 사진을 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많이 깨닫습니다. 즉, 사진을 찍는 그 순간에는 너무나 멋지거나 의미가 있어서 찍었는데, 실제로 찍은 사진을 별 볼 일 없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저의 촬영 실력이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내 마음에서 바라보는 것과 실제 사진기를 통해서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진작가 같습니다. 어딘가를 가면 모든 사람들이 사진작가처럼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지요. 그곳에 대한 설명은 전혀 듣지 않고 그저 사진을 찍는데 바븝니다. 그런데 이렇게 찍고 나면, 다녀온 뒤에 ‘여기가 어디지?’하면서 어리둥절해 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간 장소를 전혀 모르고 찍은 사진은 그저 기계인 사진기로만 찍은 것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찍은 사람들은 설명을 듣고는 그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사진을 찍습니다. 과연 어떤 사진이 더 의미가 있을까요?

마음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알아야 하고, 그 분위기를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실력이 부족해서 별 볼 일 없는 사진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진을 통해서 내 마음에서는 또 다른 사진이 펼쳐질 것입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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