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9일 참된 행복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5-09-09 07:08:48    조회 : 334회    댓글: 0

◈ [서울]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2015년 나해 9월9일 수요일 [(녹)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제1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여러분 안에 있는 것들을
죽이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11

복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0-26
 
아프리카, 시리아, 이라크에서 대규모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난민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내 몰리고 있습니다. 난민이 발생하는 이유는 심각한 내전으로 살길이 막막하기 때문입니다. 가뭄과 자연재해로 먹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정치적 신념 때문에 탄압을 받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국가인 유럽은 난민들을 받아들이는데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난민들의 종교는 대부분 이슬람이고, 유럽의 종교는 대부분 기독교이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난민들 대부분이 노동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이 상황을 많이 바꾸고 있습니다. 3살 어린이가 바닷가에서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난민을 태운 배가 전복되었고, 어린 아이는 험한 파도를 이기지 못해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유럽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독일은 자국으로 들어오는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영국도 적정 규모의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무쪼록 가난과 추위에 떨고 있는 난민들이, 머물 곳을 찾지 못해서 애태우는 난민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잠시나마 지친 몸을 기댈 수 있는 쉼터가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종교가 다르지만, 언어가 다르지만, 노동력도 별로 없지만 인간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으로 난민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이 비로소 시작될 것입니다.

신학생 때는 사제가 되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보좌신부 때는 본당신부가 되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본당신부 때는 보좌신부가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작은 본당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성당에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20년이 지나서 안식년을 하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어진 순간을 감사드리고, 그 시간에 충실한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하느님나라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아니듯이 행복은 결코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행복 역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우리가 늘 추구하지만 그것으로는 얻을 수 없는 행복의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현실의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마음은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 진리에 이르게 됩니다.”

‘욕심, 욕망, 출세, 성공, 권력, 명예’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 불꽃 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모든 것을 불태우려 합니다. 하지만 그 끝은 ‘허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행복을 이야기 하십니다. 그것은 진흙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연꽃’과 같습니다. 시련 속에서도, 절망 중에서도, 고통의 한 가운데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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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행복과 불행의 선언

2015년 나해 9월9일 수요일 [(녹)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제1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여러분 안에 있는 것들을
죽이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11

복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0-26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 저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육남매나 되었지만, 바로 위의 형님과 네 살 차이나 나서 함께 놀 수 있는 것도 없었고, 형 누나들이 아침 일찍 학교에 가고 나면 집에는 늘 어머니와 저뿐이었지요. 또한 집이 약간 외딴 곳에 있었기 때문에 동네에 제 또래도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벌건 대낮에도 텔레비전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게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요. 당연히 스마트폰도 물론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척 심심할 것만 같은 상황 같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과연 나는 심심했는가?’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면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홁 장난을 하면서 하루 종일 혼자 놀았던 적도 있었고, 혼자서 딱지를 만들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종이를 동그랗게 말아서 혼자 야구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혼자서도 이렇게 잘 놀았기에 신부로 독신을 지키면서도 심심해하지 않고 잘 노나 봅니다).

그 어떤 것을 가지고도 재미있게 놀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혀 심심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과연 지금 현재를 살면서 당시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재미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힘들 것 같습니다. 만약 책도 없는 무인도에 갇혀있다고 상상하면 심심해서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여러 가지 것들에 길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사는 것이 정상이고, 많이 가지고 있어야 편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 많은 것들에 길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떤 작은 것에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하지요. 그만큼 창의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세상에 대한 물음표를 안고 살았기 때문에 접하는 모든 것이 놀이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는 물음표보다는 마침표를 안고 살게끔 합니다. 그러다보니 놀 것이 많이 있어도 놀지 못하고, 어린아이조차 스마트폰에 푹 빠져서 삶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세상의 기준을 내세워서 “이것 이렇다.”라고 단정 지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게 하는 마침표의 삶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는 물음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행복과 불행의 선언을 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의 기준을 내세우는 마침표의 삶을 통해서는 이 선언을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 박해 당하는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습니까? 또한 우리들이 원하고 부러워하는 배부른 사람, 웃는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하니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주님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우리의 기준을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기준을 내세워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준을 내세워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고 사랑으로 다가서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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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모두 예술가로 태어난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된 뒤에도 예술가로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이다(파블로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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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다름을 인정합시다.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2,000년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대략 25,000개의 유전자 서열을 푼 결과를 발표하면서, 모든 인간 존재가 대략 99.9% 동일하며, 인종간의 차이보다는 각각의 인종 안에서 한 개인의 유전적 구성의 다양성이 더 크다고 발표했지요.

저 사람과 나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도 드러났습니다. 우리 모두가 문자 그대로 같은 가족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적대시하고 싸우려는데 급급할까요? 다름을 틀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를 뿐임을 기억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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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9월9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콜로 3,2)
 
여러분은 하늘을 많이 쳐다보시나요?
요즘같이 맑고 깨끗한 가을 하늘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여러분은 땅을 많이 쳐다보시나요?
땅에 자라나는 온갖 풀과 꽃, 벌레들은 생명의 신비를 보여주니
보고 있기만해도 즐겁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 바오로는 하늘을 쳐다보라네요.
땅은 그만 쳐다보고...
 
하늘을 자주 쳐다보는 사람은 희망의 사람입니다.
땅을 쳐다보는 사람은 실망과 좌절로 고개를 떨구는 모습입니다. 
세상이 설혹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며 희망과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하시는가 봅니다.
 
오늘은 하늘을 더 많이 쳐다봅시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그리며 꿈꿔봅시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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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참된 행복|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9월9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 루카 6,20-26)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참된 행복

남보다 머리가 좀 뒤떨어진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머리가 좋지 않다고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고 무시를 당해서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를 하였더니 어느 날 하느님께서 나타나셔서 소원 한 가지를 청하면 꼭 들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젊은이는 얼른 똑똑한 머리를 달라고 청했습니다. 청하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니 머리보다는 돈이 좋을 듯 했습니다. 돈이 많으면 머리 좋은 사람을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청을 바꾸었습니다. 또 청을 바꾸고 생각하니 돈보다는 아리따운 여자와 함께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느님께 청했습니다. 청하고 나니 다시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시 간절히 청했습니다. 세 가지를 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참다못해 말씀하셨습니다. ‘자꾸 이랬다. 저랬다 하지 말고 한마디로 말 하여라.’그래서 젊은이는 큰 소리로 외쳤답니다.‘머리 돈 여자!’하느님께서는 그의 청을 들어 주셨고 그는 지금 많은 어려움 속에 산답니다. ‘머리 돈 여자 !’ 정신없는 여자와 살려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행복은 똑똑한 머리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많은 돈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리따운 여인에게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은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골로3,2). ‘옛 생활을 청산하여 낡은 인간을 벗어 버리고 새 인간으로 갈아입은’사람다운 생활을 하는 데 있습니다(골로3,9-10). 참된 행복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늘을 차지하면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지금 우는 사람들, 미움을 사고 쫓겨나고 모욕을 당하고 누명을 쓴 사람들을 행복하다고 하시고 오히려 부유한 사람들, 배부르고 웃고 칭찬 받는 사람들을 불행하다고 하시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부유한 사람은 부 때문에 위험합니다. 그들은 자기 삶의 확고한 기반을 하느님에게서가 아니라 자신의 부에서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고 하느님에게서 얻으려 하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그래서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말합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알되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며, 이 모든 것을 모르나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이란 하느님에 대한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자신 안에 모신 사람입니다”(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성 베르나르도는 “내 행복은 오직 하느님 곁에 있는 것, 내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일 뿐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행복하다.’, ‘불행하다’를 말하지 말고 “우리 마음에 열성을 기르고 믿는 바에 관심을 일깨우며 천상사물을 갈망하십시오. 어떠한 불행 중이라도 천상 것을 추구하는 이 행복을 스스로 포기하지 마십시오”(성 대그레고리오 교황). 시편의 말씀으로 마무리 합니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시편1,1-3). 하느님 때문에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행복하십시오!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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