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8일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십니까?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5-08-28 06:55:03    조회 : 369회    댓글: 0

◈ [서울]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2015년 나해 8월28일 금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하느님의 뜻은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4,1-8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13
 
오늘은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님의 서품식이 있는 날입니다. 주교님께서는 주교서품 문장을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으로 정하셨습니다. 이 말은 토마 사도가 예수님께 고백한 말입니다. 이제 세상의 모든 걱정을 버리고, 세상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주님이신 예수님만 믿고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주교님의 다짐처럼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사목을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주교님께 가득하시기를 바라며, 오늘 주교 서품을 받으시는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님을 위해서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명동에서의 생활은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습니다. 명동에서 행사가 있을 때 거리가 가깝다는 편리함이 있습니다. 다른 신부님들은 적어도 1시간 전에는 출발해야 하지만 저는 5분이면 충분합니다. 매일 저녁 ‘거리음식’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을 보는 것은 덤입니다. 가장 좋은 점은 문화체험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책을 가까이 할 수 있고, 뮤지컬도 보고, 영화도 관람합니다. 저녁 먹고 걸어서 5분이면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The beauty inside'를 보았습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특이한 병으로 매일 아침 몸과 얼굴이 바뀌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매일 겉모습이 바뀌지만 그 사람 내면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연인의 이야기입니다. 여 주인공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 겉은 변함이 없지만 속은 늘 변하는 사람보다는 비록 겉은 변하지만 내면은 변함이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겉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분의 내면은 늘 세상의 쾌락을 따라다녔습니다. 성공과 명예 그리고 권력이라는 불꽃을 그리워하였습니다. 그분의 내면은 늘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 쉬기까지 늘 불안하고, 외로웠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의 힘으로 내면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참된 진리를 향해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내면에 ‘사랑, 겸손, 온유, 나눔, 희생, 기도’의 기름을 가득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고백록’은 인류 최초의 자서전이라고 합니다. 가식, 위선, 욕망, 분노, 원망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고,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참된 행복과 기쁨을 맛볼 수 있었던 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혼인잔치’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혼인잔치는 우리가 가야할 하느님 나라를 뜻합니다. 혼인잔치에 오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등잔과 기름이 필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등잔을 환하게 비추어야만 신랑이 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등잔은 있지만 기름이 없던 처녀들은 혼인잔치에 오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가기위해서는, 하느님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도 ‘등잔과 기름’이 필요합니다. 등잔은 바로 우리의 몸입니다. 우리는 모두 몸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건강하고, 어떤 분은 그렇지 못하지만 우리는 모두 몸이 있습니다. 기름은 무엇입니까? 기름은 바로 우리들의 삶입니다. 위선, 교만, 욕심의 기름으로는 하느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어떤 기름을 준비해야만 우리의 몸이 영적으로 환하게 빛을 낼 수 있을까요? 바로 희생, 나눔, 겸손, 친절, 온유와 인내의 기름입니다. 이런 것들을 삶을 통해서 충실하게 준비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환하게 빛이 나기 때문에 하느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우리에게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더러움 속에서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에 감사드리며, 나의 영혼을 밝힐 영적인 기름을 준비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삶이 바로 ‘The beauty inside'의 삶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 [인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우리 역시 해야 합니다.

제1독서 
 <하느님의 뜻은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4,1-8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13

한 하버드 심리학 교수가 1,50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당신의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저 좋아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졸업 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까?’라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시 설문에 응한 학생들 가운데 245명은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답했고 1,255명이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말했지요. 이 연구는 10년 후, 서로 다르게 응답한 학생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나고 결과는 어땠을까요? 그때 돈을 위해 공부하고 일한다고 답변한 1,255명 가운데 정말로 부자가 된 사람은 몇 명이었는지 아십니까? 글쎄 고작 한 명에 불과했답니다. 그렇지만 공부와 일을 좋아한다고 답한 245명 중에는 무려 116명이 평균보다 부자로 살고 있었다고 하네요.

부자가 되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 이것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목표로 삼는 이들은 정작 이 목표에 도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 앞선 실험의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공부 자체, 일 자체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는 목표였던 것들이 저절로 주어지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삶 안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언제까지나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야 내 안에 있는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열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학교 가기 싫어서 아침에 눈 뜨는 것도 힘들어 하는 학생들, 어쩔 수 없이 직장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직장인들, 집안의 살림 역시 지겹고 피하고 싶은 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 성당에 가는 것을 벌 받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면서 최소한의 의무는 지켜야 한다며 가는 신앙인들. 과연 그런 열정 없이 자신의 삶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가정이, 학교가, 직장이, 교회가 과연 기쁨과 행복의 장소가 될 수 있을까? 우선은 열정이 있어야 자기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 행복의 자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열정이 바로 나의 미래를 가장 잘 준비하는 도구가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시면서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을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랑이 왔을 때 밝힐 등의 기름을 잘 준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다섯 처녀는 그런 열정이 없었습니다. 시간 날 때 준비하겠다는 안일한 마음, 정 급하면 남에게 빌려 쓰겠다는 남에게 의지하는 마음, 신랑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포기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우리 역시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의 열정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그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어떠한 준비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진지하게 일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희망이 있다. 나태한 사람에게는 늘 절망만이 있을 뿐이다(토마스 카일라일).  

*****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십니까?

세네카는 ‘우리에게 삶을 허용하는 시간은 매순간 줄어들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시간의 유한성 가운데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겠죠. 정말로 피하고 싶어 하는 죽음이라는 우리 삶의 마지막으로 우리의 존재를 제한하는 것 같지만, 이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즉, 지금 내가 쓰고 있는 1분 1초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그 의미를 깨닫고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은 인생을 결코 짧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부주의함으로 시간을 낭비해서 짧은 인생을 더욱 짧게 만들 뿐인 것입니다.

나의 삶을 길게 만들면 어떨까요? 예수님께서 33년이라는 시간을 이 세상을 보내셨지만, 우리는 이 시간이 결코 짧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조금의 시간도 낭비 없이 33년을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내 삶을 길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단지 숫자상으로 장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대한 충실성으로 남들보다 훨씬 더 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르심을 받고 있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당장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 -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