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9일 그저 감사하라.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5-08-19 07:02:32    조회 : 268회    댓글: 0

◈ [서울]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2015년 나해 8월19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제1독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임금이신데도, “임금이 우리를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소(1사무 12,12).>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9,6-15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우연한 기회로 예전에 알던 친구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초등학생이었고, 저는 본당 신부였습니다. 지금은 직장에 다니고,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입니다. 영화도 보고, 야구장도 함께 가고, 다음에는 고궁에도 가기로 했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저도 젊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생 때, 대출받은 돈을 갚아 나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피자집, 카페, 호프 집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중학생 때, 신문을 돌려보았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잠시 형님과 포장마차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매점을 운영하였습니다. 나름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낸 것 같습니다. 신학교의 매점 운영은 재미있었습니다. 물건을 사야하기 때문에 매일 외출이 가능했습니다. 신학생들이 주로 찾는 ‘담배, 음료수, 과자, 학용품, 세면도구’와 같은 것들을 팔았습니다. 신학생 때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지금은 교구 신협의 일에 약간의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태권도를 배우던 아이들이 이렇게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랄 줄은 몰랐습니다. 앞으로 15년 후에는 다들, 자기의 자리에서 한 몫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아픔도 있고, 갈등도 있고, 시련이 있겠지만 지금처럼 자신을 사랑하고, 꿈이 있다면 하느님께서 지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며칠 전에 앨범에서 사진을 하나 보았습니다. 저의 서품 기념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속에 있던 초등학생이 사제가 되어서 지금 교구청에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것은 사람의 일이지만 그것을 자라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나라에 가면 3번 놀란다고 합니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 온 것에 놀라고, 아니 저 사람도 왔네 하며 놀라고, 꼭 올 것 같았던 사람이 안 보여서 놀란다고 합니다. ‘천길 물길은 알아도 한길이 안 되는 사람의 마음은 모른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외모와 재물로 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이라는 안경을 쓰고 사람들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신앙은 길이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신앙은 하느님께 대한 충실한 마음으로 평가 받는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수도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하느님을 알았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평가하고, 비난하기 전에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을 먼저 충실하게 이행하여야 합니다. 평가와 비난은 하느님의 몫으로 남겨 두어도 괜찮습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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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그저 감사하라|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8월19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제1독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임금이신데도, “임금이 우리를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소(1사무 12,12).>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9,6-15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어려서는 삼촌이나 누나에게 용돈을 얻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특히 명절이 되면 서울의 일터로 떠난 누나를, 삼촌을 동네 어귀에서 기다렸습니다. 누나를, 삼촌을 기다렸다기보다 용돈을 기다렸습니다. 그 액수가 얼마가 되든지 상관없이 기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학년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용돈을 기대하게 되었고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용돈을 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어느 날 그 기쁨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삼촌께서, 누님이 용돈을 줄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겉으로는 아닌 척 했지만 용돈을 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습니다. 주면 주는 대로 감사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죄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를 포도원 일꾼의 품삯에 관한 비유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아침 아홉 시에 일을 시작한 사람이나 열두 시, 오후 3시에 그리고 다섯 시에 시작한 사람과 똑같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일꾼들은 계약을 맺을 때는 그저 일을 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습니다. 그러나 품삯을 받게 되는 시간이 되자 일찍 일을 시작한 사람은 뒤늦게 시작한 사람보다는 더 많이 받으려니 했지만 그 기대를 채울 수 없었고 그래서 투덜대며 급기야 따지기까지 하였습니다. 상대적으로 비교를 하는 순간 자기의 첫 마음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분명 그는 계약한 만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받지 못한 것처럼 느꼈습니다.

누가 용돈을 주면 주는 대로 감사히 받을 것이지 투덜댈 자격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계약대로 받았으면 족해야지 왜 따집니까? 주인은 분명 정의를 지켰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시기심 때문에 반발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5,45).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느님께서는 모두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푸십니다(로마11,32). 주님께서는 언제나 후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나 선을 베풀고자 하실 뿐입니다. 그리고 그 선은 주님께서 자유로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그분의 자비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품삯을 받기 위해 일을 한 사람과 일 자체를 고마워하며 일을 한 사람과는 분명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중요하지만 어떻게 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듯 하느님나라에서는 결과보다는 동기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상급은 인간이 노력해서 이룬 업적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물은 감사히 기쁘게 받는 것입니다.

“ 하느님은 항상 일하시나 조용히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얼마나 말이 많은가?”(성 아우구스띠노). 포도원에서 일을 할 수 있음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많은 일을 해도 해야 될 일을 안 한 사람은 적게 일한 것이고, 적게 일해도 해야 될 것을 한 사람은 많이 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만 앞서거나 부산함만 피우지 마십시오”(성 요한보스코).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되는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마태20,16). 하느님 아버지는 너그러우시고, 나는 쩨쩨하고 시기질투하며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임을 뉘우칩니다.

인력시장에 가보신 적 있으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이른 새벽부터 일을 하기 위해서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야말로 매일 팔려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날은 누구도 자기를 사가지 않습니다. 종일 기다리다 허한 마음으로 쓰디쓴 하루를 마감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재수가 좋아서 일찍 팔려 나갑니다. 그들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고역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찍 일을 나간 사람이 뒤늦게 일을 한 사람과 똑같은 임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찍부터 일을 한 것이 재수가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마음이 한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주인에게 실망해서 불평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주인이 잘못한 것인가요? 실망과 좌절로 기다림에 지쳐있다 뒤 늦게 일을 한 사람은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주인의 자비가 얼마나 크고 사랑이 많은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기쁜 소식이고 복음입니다. 만일 우리의 업적에 따라 보상이 결정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희망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족함에도 후하게 주시기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거저 주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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